▲ 성령의 충만한 삶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Getty Image

성령에 대해서 말하기 쉽지 않은 것은 지금이나 바울 시대나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한 오해와 부작용도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 역시 환상, 황홀경, 방언 같은 신비적 경험을 모르지 않았고, 성령이 그런 기적적인 현상 속에 나타난다는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등에서 보듯이 바울은 그와 같은 성령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더욱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거나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기를 거부했습니다.

바울에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자동적이고 자연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그가 말하듯이 육체의 욕망을 거슬러 성령을 따라 살라는 명령의 수행이며, 매일매일 우리의 삶에서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체” 또는 “육”이란 단지 인간의 신체나 육체적 욕망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감각적이고 측정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가리킵니다. 물질적인 것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어떤 대가와 성과를 얻기 위해 추구되는 모든 활동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적인 종교적 권위나 앞에서 말한 성령 현상의 자랑도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삶의 안정성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육체적 관심에 전적으로 지배를 당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충돌하게 됩니다. 그리고 권력의 불균등에 따라 타인에 대한 차별과 수단화와 배제와 착취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는 오늘날 효율과 경쟁이라는 말로 합리화, 제도화되고, 그 위에서 가능해진 성장과 독점과 지배는 절대적인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육은 성령과 대립하는 개념일 정도로 우리를 지배하고 속박하는 힘으로 경험됩니다.

육에 속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이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인 이유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들, 곧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육의 힘에 지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육의 세력과 타협하거나, 육의 지배 아래 있는 이웃과 창조 세계의 고난을 못 본 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며, 다가오는 생명과 해방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는 멀어 보일 수 있지만, 성령은 우리가 육의 세력에 저항하도록 함께하시며, 새로운 피조물로 완성되어 가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바울 시대나 오늘날에나 생각하듯 받아서 소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의 가능성이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인간다운 사회에 대한 희망입니다. 나아가 사람과 자연과 하나님이 온전히 화해하는 창조 질서의 회복에 대한 희망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있어 성령의 인도를 따른다면, 우리의 삶은 그 희망으로 살며 그 가능성을 실현해 가는 삶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현실이, 또한 삶의 염려에 사로잡혀 욕심을 완전히 떨쳐 낼 수 없는 우리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성령은 그 장벽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 너머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도우심은 우리의 결단과 우리의 노력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노력을 기대하시며,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의 그런 책임적인 행동을 온전하게 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성령 안에 있어 성령으로 행하며 선한 열매를 맺으라는 바울의 호소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더욱 절박하게 들려옵니다. 창조 질서의 회복은 자꾸만 멀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는 평화와 공존이 아니라 분리와 착취와 적대 관계로 자꾸만 고착되어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화해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속에서 육의 세력은 절대 무너질 수 없을 것 같이 점점 더 큰 권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거짓과 불의와 짝하는 자들이 공정과 정의를 말하고 인간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자들이 국민의 뜻을 운운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생태 위기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생태적이고 착취적인 삶의 방식을 가속화시킵니다.

우리는 시장주의에 따라 땅의 소유권이 인간에게 있다고 당연하게 말하지만, 성서는 땅의 소유권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불의한 일로 땅을 더렵히면 거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땅에서 쫓아내고 땅을 영원히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땅과 하나님이 함께 고난 받으며 우리를 참아 주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그 인내가 끝에 달하면 땅이 결국 우리를 토해 내는 데 이르지 않을까요. 오늘날 생태 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환경 파괴의 결과일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우리의 신앙에 대한 심판이 아닐지요.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말하면서도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고, 그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하나님의 무력함을 탓하기보다, 다시금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인내하고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지켜 나가기로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땅과 사람을 소유하고 노예화하고 억압하는 육의 지배를 거부하고, 생명을 살리는 야훼의 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더불어 인내하고 정의와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우리의 삶의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우리의 삶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미래에는 반목과 차별과 전쟁 대신 공존과 평등과 평화와 사랑이 일상이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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