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에큐메니칼소식 교회
내가 붙든 삶의 화두 '가난한 자의 하나님'
박철 | 승인 2005.09.27 00:00

2003년 10월 초, 한진중공업 김주익 씨가 크레인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그가 남긴 유서를 신문에 읽고 지금 내 자신이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나는 가끔 그의 유서를 서랍에서 꺼내 읽으며 목회 초년병 시절, 강원도 정선에서 가졌던, '가난한 자의 하나님', '지금 고통당하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화두에 몰입한다.

여보... 시킨 고생 모자라 더 큰 고생 남기고 가게 되어 미안해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십 몇 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 온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준엽 혜민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십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고 김주익 씨가 남긴 유서-

   

나사렛 예수가 선포하신 '행복 선언'은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복되어라, 지금 굶주린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누가 6,20)라고 선포되고 있으니 그 누가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을 것인가?

생계에 흔들리는 가난한 이들은 교회에서도 밀려난 사람

사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부자들이 오히려 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많이 지니고 있지 아니한가. 그들은 자선금을 듬뿍 낼 수도 있고, 온갖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 세미나에 참석은 물론 원한다면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도 가난한 이들보다 더 쉽게 더 많이 할 수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생계에 흔들리는 가난한 이들은 주일 예배는 물론 교회의 모임이나 봉사 활동은 엄두도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때때로는 어쩔 수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며 살아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남보다 더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교회 안에서마저도 소외되어 대접받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이 복되다 하고 부자들은 구원받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하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마가 10.23-27)

어떤 이는 예수가 말씀하신 부(富)를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더 역점을 두어 말하지만, 이러한 설교는 때때로 부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과 돈'(마태 6.24), 즉 '압바와 맘몬' 사이의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대립을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고 부자 청년이 찾아왔을 때 예수는 "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즉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9,21).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외적으로 아무런 흠잡을 데 없이 성실하고 건실한 부자 청년(마가 10,17 이하 참조)에게 우선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선하신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교정시키셨다. 예수는 우월감과 자기정당성의 확신에 차 있는 그 젊은이가 자기 환상을 깨고 초월적이고 지고(至高)한 선을 향해 마음의 눈을 뜰 것을 종용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마태 19,21)는 예수의 말씀은 이 부자 청년에게는 틀림없이 가혹한 요구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과 재산에 얽매인, 끝없는 인간의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예수와 같은 운명을 나눌 것을 제자가 되는 첫째 조건으로 예수는 요구하고 있다.

'맘몬'이란 확실히 '돈' 이상의 존재임엔 틀림이 없다. 맘몬이란 인간의 내면에 무섭게 살아 있는 교활한 세력이요, 그것과 결탁한다면 세상의 온갖 행복, 즉 세상에서의 성공과 안전을 보장받으리라는 '악의 신비'에 자리 잡힌 어둠의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유혹 기사에서 나타났던 돈과 명예, 그리고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일체의 소유욕, 그것은 지식과 지위, 권력, 재능, 그 모든 물질적 정신적 소유의 세계를 일컫는 것일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허상을 신봉케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하는 '인간의 우상'을 맘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은 하늘나라를 향한 '새로운 인간상'으로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약함과 실패, 끝없는 자기비하의 길로 '야훼의 종'의 길을 선택하는 것임을 예수는 말씀하고 계신다. 부(富)는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많은 이웃이 고통당하고 굶주릴 때, 그들을 외면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축적한다면 죄가 된다.

"만일 누가 가난하다면 다른 누군가가 더 차지했거나 물려받았기 때문이고, 더 가진 이의 몫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전까지는 도둑질한 물건으로 남는다."고 교회의 교부들은 한결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만큼 하나님과 이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그 책임이란 진정한 포기와 나눔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포기와 나눔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

세상의 가난한 이들의 그 '강요된 가난'이 인류의 죄라고 한다면 이러한 복음적인 '선택한 가난'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수많은 성인 들이 걸었던 길이 바로 이러한 가난이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가난은 가난으로써만이 치유될 수 있다 "고 말한 우리 시대의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의 말은 그 핵심을 극명하게 드러낸 말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행복과 '백 배의 축복'(마가 10,30)이 이러한 가난에 있음은 그 포기와 나눔의 정도에 따라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신적 기쁨과 평화의 정도가 다르다고 예수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누가 이 길을 그리 쉽게 자기 힘으로 갈 수 있을까. 오직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절대 사랑에 신뢰하는 길, 하나님의 뜻만을 찾았던 그 '나사렛 예수의 길'만이 우리에게 그 은총의 힘을 내려 주시리라 믿는다.

근심하는 빛으로 예수를 등지고 떠났던 부자 청년, 가진 것이 많아서 버리고 떠나기가 더 어려웠던 그 청년의 뒷모습에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 재화와 정신적 소유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축복과 성사(聖事)'가 되는 날을 기다려 깊어 가는 가을, 마른 나뭇가지에 앉은 새처럼 나는 오늘 이 아침 언제가 도래할 새 하늘, 새 땅을 그려 본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우리 기도를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 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김흥겸. <민중의아버지>-

박철  pakchol@empa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