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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원수가 되지 말라원수를 사랑하는 일(로마서 12:14-1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8.07 14:02
▲ 원수를 사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 내가 원수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낟. ⓒGetty Image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 후 아홉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간 성서일과에 따른 본문은 전체적으로 원수 사랑에 관한 본문입니다. 레위기 19장, 누가복음 6장, 로마서 12장의 말씀입니다.

꽤 오래전에 누가복음 본문으로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원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을 물리쳐주시길 간구하는 말씀도 나타나고, 간구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시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대적을 물리쳐 달라고 간구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둘 사이의 모순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그 말씀을 따라 행하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오늘 로마서의 본문으로 말씀을 전해드리려는 이유는 사도 바울 역시도 이런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우리는 원수에게 미움을 표출하지 말고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도록 맡기라는 이야기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며 보복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하신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 이야기를 추가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나에게 악을 행하는 대상에게 오히려 선을 행함으로 그 사람의 마음에 짐을 쌓아놓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원수의 마음에 짐을 만드는 행위가 아무리 선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에는 상대를 향한 보복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떠하건 간에 행위만 선하면 된다는 방식이 과연 옳은 방식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예수님 말씀에 대해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도 맞으라는 이야기,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주라는 이야기,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는 마태복음 5장에 나타난 말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다 내어주라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당시 로마법과 유대인 법에 따라서 보자면, 오히려 상대방을 농락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오른뺨을 때릴 때는 왼손으로 때리게 되는데, 이는 주인이 노예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때 고개를 돌려 왼뺨을 들이미는 행동은 자신을 노예 취급하지 말라는 반발 행위입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짐을 들고 5리를 동행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로마법상 5리 이상을 갈 경우 로마 군인은 처벌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 법에서 하루가 지날 때, 내게 담보를 맡긴 사람이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면, 그 옷을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속옷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줘버린다면, 그날 밤에 그 사람은 다시 옷을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역시도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능적 보복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대방을 향한 보복이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또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오늘은 이런 원수 사랑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본문을 읽었지만, 레위기와 누가복음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라고 말하는지를 생각해보고, 로마서의 이야기로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원수는 누구인가

원수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성경은 어떤 존재를 원수라고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모든 성경에 나타난 원수가 똑같은 존재를 일컫는다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만, 본문마다 원수에 대해 약간씩 다른 늬앙스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본문보다는 처음에 말씀드렸던 레위기, 누가복음, 로마서의 본문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레위기 19장 18절의 원어에는 원수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 모두 원수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다만 ‘보복하지 말아라’라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꼭 원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레위기 19장의 흐름 속에서 보복이 금지된 존재는 형제, 이웃, 동포입니다. 레위기 19장 9-10절은 떨어진 이삭을 남겨놓으라는 규정입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한 규정입니다.

11-16절에는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17절 이후에 형제, 이웃, 동포를 사랑하라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다양한 법 규정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유사 항목끼리 엮인 것일 수도 있지만, 17-18절에서 미워하지 말라고 규정되는 존재들은 마치 11-16절에 나타난 악을 행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레위기에 나타난 원수는 우리를 속이고 빼앗고, 착취하며 비방하는 이들,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이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무척이나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 나타난 사람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뺨을 때리고 옷을 빼앗는 사람,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빌려갔지만 갚기는 주저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 사람들도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로마서의 분위기는 이와는 다릅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는 원수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나타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단어가 디오코(διωκω)인데, ‘핍박한다’는 뜻도 있고, ‘뒤쫓다’, ‘추구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사용합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서는 ‘핍박하는’으로 사용했지만, 바로 앞의 13절에서는 ‘손 대접하기를 추구하라’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이때 핍박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서신도 함께 살펴보았을 때, 사도 바울은 보통 교회를 ‘핍박한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로마서에서 원수로 등장하는 이들은 교회를 괴롭히던 이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박해가 아닐지는 몰라도, 교회에 어려움을 끼치는 이들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위해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으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얼마 전에 TV를 보다가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때로 배신하기도 해서 속상하다는 어떤 사람에게, 원래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되는 거라고 상담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원수 될 일도 없지만, 믿었던 사람, 가까운 사람들이 원수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원수들도 어찌 보면 멀리 있는 적대적 세력을 뜻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가까이에서 봐왔던 사람들, 어쩌면 때로는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던 그런 사람들이 지금 내 원수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법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만 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그들 앞에서 선한 척 연기할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 마음까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약간은 맥락이 다른 예시입니다만,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푸틴을 용서하고 마음 깊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러시아 사람을 제외하면 없을 것입니다. 대만을 향해서 중국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원수 사랑에 대해서 성경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 앞서 살펴본 본문들을 통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레위기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는 목록 뒤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규정을 넣고 있는 점을 본다면, 레위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해 보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 이전에 내가 남에게 원수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원수가 되지 않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원수로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고, 무엇 때문에 나를 원수처럼 여기는지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원수가 되지 않는 방법은 쉬운 방법이 없습니다.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단속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때로 나는 잘해준다고 한 일인데 상대방이 그걸 더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저를 더 싫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나 자신만 단속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지만, 우리를 용서하신 자비의 하나님을 떠올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자비로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피는 일이 어렵다면 그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끼치기를 원하며 노력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는 그럼에도 원수가 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기에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되도록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전에 너희가 속한 공동체, 즉 교회가 화목한 공간이 되도록 힘쓰라고 말합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라는 공간은 어쩌면 존재 의의를 잃었습니다. 교회라는 공간은 사라지고 온라인 공간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라는 공간의 존재 의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원수를 만나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의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수가 될 일도, 원수를 만날 일도 없는 공간이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오직 평안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다친 마음을 이곳에서 회복하게 됩니다.

원수가 어떤 존재이건 나에게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히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 할 순 있지만,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누군가의 원수가 되지 않기를 위해 살아가시고, 그 일도 힘들게 느껴지신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느끼기도 어렵다면, 교회에서 그 자비와 화목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도 다시금 힘을 얻어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는 성도님 되실 줄 믿습니다. 또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있을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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