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성숙하라“단단한 음식을 먹는 성도”(히브리서 5:12-6: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8.09 15:56
▲ ‘신앙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서의 명령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혜는 평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많은 수고를 통해 이 평안을 누리고자 하지만,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안타깝게, 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입니다. 진정으로 누려야 할 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을 넘어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평안을 선택하지 못하셨습니까? 괜찮습니다. 다시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도 않은, 참 평안을 저와 성도님들이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지난 두 주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삶의 이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성경 어떤 본문을 읽어봐도 방금 말씀드린 목적을 위해 살아가라고 또는 기도하라고 요청하는 본문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목적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한 자녀들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과 용서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도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이 분명하게 다른 목적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새벽마다, 아침마다 읽고 있는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10:32-39 “32 여러분은 빛을 받은 뒤에, 고난의 싸움을 많이 견디어 낸 그 처음 시절을 되새기십시오. 33 여러분은 때로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또한 자기 소유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일을 기쁘게 당하였습니다. 35 그러므로 여러분의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확신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 36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서,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이제 ‘아주 조금만 있으면, 오실 분이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고난의 싸움’에 관해 말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모욕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고, 때로 자기 소유를 빼앗기지만 ‘영구한 재산’이 있음을 알고 인내하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서지 말라고도 권면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늘 뒤로 물러섭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판이 두려워서, 내가 조금이라도 힘들게 될까 봐, 인간관계가 틀어지게 될까 봐,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벌어보려는 이유 등등으로 우리는 기꺼이 뒤로 물러섭니다. 우리는 언제나 뒤로 물러섭니다. 내 삶을 위해서 기꺼이 뒤로 물러섭니다. 한 발짝도 아니고 열 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믿음의 태도로 하나님께 주신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11:24-27 “24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25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26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27 믿음으로 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냈습니다.”

‘죄의 향락’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이 어떻게 ‘죄의 향락’을 누리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시 사회는 지금보다 더 비인간적인 약육강식의 사회이기는 하였지만, 왕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당연하게 모세가 누릴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죄의 향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죄의 향락이라고 표현했을까요?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삶, 하나님을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나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 조건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 즉, 죄의 향락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죄의 향락’으로부터 멀어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반대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금식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하고, 헌금을 드리고,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학대받는 길’을 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보이는 재물보다, 보이지 않지만,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제 막 교회에 왔든, 수십 년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든 상관없이 이러한 ‘죄의 향락’을 누리고자 하는 잘못된 믿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12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물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서 사는 이는 아직 어린아이이므로, 올바른 가르침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물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간으로 보면, 교사가 되어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 배워야 할 처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나이는 이미 성인임에도, 여전히 아기들이 먹는 모유 또는 분유를 먹고 있다고 꾸짖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교회를 다니고, 믿음 생활을 했다면 단단한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사람,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다음에 지시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고전11:17)라고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책망의 내용을 쓴 이유는,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고전11:21-22)

당시 가난한 성도들은 교회에 일찍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부유한 성도들은 교회에서 저녁을 먼저 먹고, 취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공동체 안에 서로를 향한 이해와 배려, 사랑이 부족함을 이 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셨는지,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 아는 성숙한 성도라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성도라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나의 삶’이 우선인 이들은 ‘죄의 향락’을 누리고자 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야 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아닙니다, 어린아이보다도 못 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바울이 어떻게 책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세련된 지각을 가진 성도는 순간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실천합니다.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선택합니다. 나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놓고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2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와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관련해서, 또 다시 기초를 놓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고 요청합니다. 또 다시 기초를 놓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요청합니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끊어야 합니다. 무엇을 끊어야 할까요? 모유 또는 분유를 그리고 이유식을 먼저는 끊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1-22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해서 듣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끊어내지 않고서는 성숙한 단계로 조금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 주간 히브리서 본문을 묵상하고 또 성도님들께 문자를 보내면서 가장 많이 쓴 문장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모험이고, 도전입니다!”라는 문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부족함과 필요를 채우시는지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지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먹던 것들을 끊어내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싶으면서 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면서 여기에 더해 하나님의 은혜까지 경험하고 싶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죄의 향락’을 누리고자 하는 옛사람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똑같이 살아가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목적과 다른 이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죄의 향락’을 누리며 나의 안위를 위한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선택할 때, 믿음으로 신앙의 모험을 떠난 이들이 결국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도움, 복을 누리고 영원한 상을 누린 것처럼 우리도 이 상을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