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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구별거룩한 쉼의 날(출애굽기 31:13-1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8.14 01:35
▲ 안식일이 제정되기 이전에 고대 이스라엘에서 보름에 한 번씩 쉬는 날은 소작농, 이방인 그리고 가축들이 쉴 수 있는 날이었다. ⓒGetty Image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성령강림 후 열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에 지정되어 있는 본문들의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율법 준수입니다. 율법 중에서도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면, 안식일과 관련이 있는 본문들입니다.

기독교가 전세계에 끼친 영향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일요일은 쉬는 날이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고,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일요일에는 쉽니다.

안식일, 그리고 ‘멈춤’, ‘휴식’을 뜻하는 히브리어 사바트(שׁבת)의 어원은 휴식과 관계없는 단어로 보이지만, 성경이 기록될 때에는 ‘멈춤’을 의미하며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쉼을 뜻하는 ‘안식일(安息日)’로 번역합니다.

어린 시절에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고 이야기 하면, 교회에서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쉬는 날이지만, 우리에겐 쉬는 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안식일은 기본적으로 쉬는 날이라고 말해도 무관할 듯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 속에서 당시 바리새인들이 심하게 말하면, 강박적으로 안식일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문제로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일관됩니다. 안식일에는 무조건 쉬는 것이 율법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안식일에 선한 행위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충돌하게 됩니다.

안식일에 관한 말씀들을 읽다보면, 지금 시대에 주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주일을 맞아야 하는지, 또 지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는 안식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안식일이라는 체계가 정착되던 시기에 안식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 우리에게 안식일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안식일의 기원

본래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양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음력을 사용했습니다.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축제나 절기는 달의 운행에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초하루와 보름을 절기로 삼아왔습니다.

예언서를 보면, ‘월삭과 안식일’이 함께 묶여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사1:13, 호2:11). 월삭은 음력 초하루를 뜻하는 날이고 안식일이 이와 함께 묶여있다면, 이는 보름달이 뜨는 날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보름날을 의미했을 것이고,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절기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면서 바벨론의 양력을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7일 주기의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안식일도 여기에서 기원했다고 말합니다. 이 해석은 아마도 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만한 해석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오경에는 세 가지의 주요 법전이 있습니다. 계약법전(출20:22-23:33), 성결법전(레17-26장), 신명기법전(신12-26장),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이 중에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법전이 계약법전인데, 계약법전 안에도 일곱째 날과 일곱째 해의 휴식에 관한 법이 나타납니다. 우리 성경에는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이라는 소제목을 달아놓았지만, 본문에는 ‘안식년’과 ‘안식일’이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라는 표현은 계약법전 이외의 본문들, 더 후대에 만들어진 본문들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계약법전, 정확히 말해 출애굽기 23장 10-13절에 나타난 일곱째 날에 관한 규정이 안식일 법이 아니라고 본다면, 이 법은 노동자와 짐승, 더 나아가 나그네를 위한 휴식법입니다. 종교적 제의와 상관없이 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쉼의 법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휴식법도 아니었습니다.

7이라는 숫자가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아마도 보름의 절반이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고대 근동 지역에서 7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의미 있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7일째를 쉼의 날로 지정하는 법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 이스라엘에는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에 지켜지던 종교 절기인 월삭과 안식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별개로 가혹한 노동에 지친 이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곱째 날의 휴식법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절기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를 겪은 이후 이들은 새로운 신앙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7일 주기의 안식일을 형성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 이야기 속에서 그 단서를 보게 됩니다.

이들은 더 이상 달의 운행에 따른 절기를 지키지 않게 됩니다. 해와 달과 별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또 음력에 따른 절기는 농경사회에서 풍작을 기원하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포로기를 겪은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규칙은 풍작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섭리는 해방과 쉼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휴식법과 안식일을 융합시킵니다. 이들이 단순히 바벨론의 역법을 배웠기 때문에 7일 주기의 안식일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 안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휴식법과 안식일 법을 중첩시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안식일은 6일간의 노동으로 지친 이들, 세상 속에서 지친 모든 이들을 위한 휴식의 날입니다. 쉼의 날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바리새인들의 강박적인 쉼의 강요가 본래 일곱째 날의 안식일이 만들어진 취지에 부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복되고 거룩한 날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 다음에 나오는 17절은 안식일의 기원을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로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 쉬셨기 때문에 이날은 안식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창세기 2장 1-3절에 나타납니다.

창세기 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복되고 거룩한 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의 가사를 보면, 주일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오시는 성도님들의 마음 한켠에도 이런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은 특별한 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는 날, 축복받는 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주일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 3절에 나타난 ‘복되게 하사(바라크 ברך)’가 잘못된 단어라고 말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성경이 필사되는 과정에서 이 단어가 변형되었다는 해석입니다.

이에 대한 이유가 세 가지 정도 제시되어 있는데, (1) 성경에서 제사장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왔지, 축복하지 않았다는 점, (2) 안식일은 기본적으로 시간 개념인데, 성경에는 무생물을 향한 축복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3) 축복이 선포될 경우, 그 대상이 되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번영하게 만드시는데, 일곱째 날의 번영은 의미가 없다는 점,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이 해석에서 제안하는 본래 단어는 ‘축복하다’를 뜻하는 바라크(ברך)가 아니라 ‘구분하다’를 뜻하는 ‘바달(בדל)’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만드셨다라고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하셨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안식일이 ‘복되고 거룩한 날’이라는 것이나 ‘구별되어 거룩한 날’이라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복 받는 날, 복으로 충만한 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신 거룩한 날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거룩해야만 하는 날입니다. 지난 6일간 세상 속에 살아오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행동들, 악한 행동을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날 하루만큼은 어떠한 악도 행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내야만 하는 날이 됩니다.

거룩한 휴식

모든 악에서 벗어나서 거룩함을 유지하는 날, 그리고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날, 이 둘은 양립하지 못해 보입니다. 맘 편히 푹 쉴 수 있는 날이 아니라 내가 무슨 잘못을 할지 몰라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얼마나 악에 노출되어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악을 행하지 않고 그저 가족들과 또는 홀로 휴식을 취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간에 지정된 본문 중에 갈라디아서 5장도 있는데,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말합니다. 즉 율법의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사랑이며,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진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표현하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저 기쁨을 나누고, 그저 사랑을 나누면서 쉬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의 감정과 행동은 악함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해야만 하는 안식일에조차도 내 마음에 쌓인 악을 억누르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낼 때가 많습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쉬는 것과는 다르게 거룩하게 쉬는 날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그런 거창한 표현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그저 사랑하면서 보내는 날입니다. 사랑하며 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우리의 안식일이 사랑으로 가득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6일간 받아왔던 악한 모든 것을 떨쳐내고 사랑만을 주고받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참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안식일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면, 서로를 향한 악이 없는 날이라면, 그날은 분명 복된 날일 것입니다. 세상의 쉼은 주지 못하는 참된 휴식을 주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휴식을 누리시는 매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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