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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비우는 성도”(출애굽기 31:12-17)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8.16 02:23
▲ 「Christ healing the man with a withered hand」 (Byzantine mosaic)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히브리서 본문으로 아침마다 ‘오늘의 예배’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금요일 히브리서의 마지막 본문을 보내드리면서 이런 질문과 당부를 성도님들께 문자로 남겨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의 목적이 변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계십니까?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누려야 할지 더 치열하게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성도는 삶이 변해갑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삶이 조금 변한 것도 아니고 극적으로, 완전히 변한 믿음의 선조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저와 같은 목사를 포함해 많은 성도의 삶을 보면 몇 십 년을 신앙 생활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중에 읽게 된 기사를 성도님들과 공유합니다.

‘낮은담교회를 담임하는 김관성 목사는 자신의 부임 첫 주일예배 설교 때 새벽기도, QT, 성경통독 등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져 종교화된 신앙에 재동을 거는 메시지를 전했다.

주일예배 참석, 새벽기도, QT 등을 신앙의 지표로 삼으면서도 정작 삶은 변화되지 않는 신자들의 실태를 놓고 뼈아픈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제가 수도권에 올라가 목회를 하면서 한 사람의 목사로서 또 목사 양심으로서 분명히 이야기를 해보자면 교인들 한 열 명 중에 예수 믿고 있는 사람들은 많게 보면 두세 명 정도 되어 진다. 나머지는 신자가 아니다.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새벽기도 나오는 권사들이 새벽기도를 20년, 30년 하는데도 사람이 따뜻해 지거나, 온유해 지거나, 사람들을 이해하는 깊이들이 자라지 않고 오히려 더 사나워지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이런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왜 그런가? 애당초 예수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종교 생활에 충실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 목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와 함께 죽겠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어도 변하지 않는 성도, 어쩌면 오히려 더 상태가 좋아지지 않은 성도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이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안식일’과 이 안식일을 대하는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통해 우리가 성숙해지기 위해,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31:12-17 “1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라. 이것이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세워진 표징이 되어,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한 이가 나 주임을 알게 할 것이다. 14 안식일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므로,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 날을 더럽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 날에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겨레로부터 제거될 것이다. 15 엿새 동안은 일을 하고, 이렛날은 나 주에게 바친 거룩한 날이므로, 완전히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16 이스라엘 자손은 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아,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한다. 17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니, 이는,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 본문을 읽으면, 안식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하지 말고, 완전히 쉬어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장 주목해야 할 구절은 17절입니다.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관해 신명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신명기 5:12-15 “12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것이다. 13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4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나,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뿐만 아니라, 너희의 소나 나귀나, 그밖에 모든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 15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신명기 본문에서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너만 쉬지 말고, 모두가 함께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똑같이 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덧붙여서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말하며 왜 종살이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할까요? 쉴 수 없고, 고통 가운데 살 수밖에 없었던 종살이에서 벗어나 참 쉼을 허락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신명기가 말하는 안식은 쉼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안식일의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고통 가운데 쉬지 못하는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함께 쉴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더 하나님이 부여하신 안식일의 의미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9-14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서,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 10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13 그런 다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14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예수를 없앨 모의를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관점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할 안식일을 예수가 더럽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온 말씀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를 실행하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틀렸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모두가 쉼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안식일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와 바리새파의 태도가 다릅니다. 예수님은 옳게 해석하셨고, 바리새파는 틀렸습니다. 이런 태도의 차이가 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도 같은 이유로 예수님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제가 이런 차이를 설명할 때 들려 드리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마실 수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24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이 둘의 어머니는 잘못된 것을 구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분개함으로 앞선 제자들과 다르지 않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모두를 깨닫게 하시려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삶으로 보여주셨지만, 제자들은 종이 되려 하기보다는 세상 속에서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이런 욕망이 가득 찼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방향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에만 집중한 결과 예수님에게 잘못된 요구를 하고 말았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정도 되면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 규정을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이익을 취하는데 적용했습니다. 그들의 욕망이 안식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제자들의 욕망이 잘못된 요구를 불러왔습니다. 우리들의 욕망이 우리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 바리새파, 우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7:21-23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했다는 점입니다. 자기 자신을 비워 하나님의 뜻을 채워나갔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비우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기도 힘들고, 만약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을지라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비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뜻을 비워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야 합니다.

얼마 전에 방석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이 방석이 작다고 하시는 거에요. 저는 두께도 색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는데, 목사가 방석을 쓰지를 않아서 사정을 몰라 이런 방석을 구매했다고 하시는 거에요.

내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사용해야 할 성도님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와 같습니다. 나에게 집중할수록,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나 좋을 대로 신앙생활 하니까 삶의 아무런 변화도 없고, 은혜도 없습니다. 나를 비워, 하나님의 뜻을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함으로 나의 변화, 삶의 변화, 은혜를 경험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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