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섬김과 거룩한 삶!(렘 15:5-9 벧전 1:13-21 마 23:1-12)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8월2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8.18 22:51

1. 교회사에 나타난 3가지 교회 공동체 모델

지난 성령강림 후 열째주일까지 우리는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성령강림주일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타적 공동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선교하는 공동체이자 돌봄 공동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있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였습니다. 또한 거룩한 성(聖)에서 세상인 속(俗)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공의롭고 성실한 공동체이며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영생을 취하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랑과 믿음의 교제로 선을 행하는 공동체로 마침내 믿음으로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여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대동세상은 사랑과 정의, 그리고 경건 공동체가 되어야만 만들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CCL교회력(최병학 목사의 삼위일체 교회력) 가해 마태복음 중심 세본문 말씀의 전체 주제인 ‘생명의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돌보심을 통해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생명 존중으로 가득 차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어떠했을까요?

▲ 3가지 교회모델인 방주모델, 하나님의 학교 모델(성경공부), 선교와 봉사모델

한신대 명예 교수인 김경재 교수는 2,000년 교회사 안에 나타난 3가지 교회상(像)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노아 방주 모델’, ‘하나님의 학교 모델’, ‘선교와 봉사 모델’입니다. 첫째 노아 방주 모델에 관해 김경재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홍수의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죄악 된 세상에서 노아와 그 가족이 하나님이 마련하라 하셨던 방주 속에 들어가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사의 지속을 가능케 했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합니다. (…) 세속의 물결이 너무나 타락해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거룩하게 지키고 영혼 구원을 얻기 위해 ‘노아 방주 모델’ 교회관을 선호합니다. 초대교회와 중세기 교회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혁할 엄두는 내지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학교 모델은 “종교개혁 이후 근세에 주도적인 교회관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구원의 진리를 듣고 배우고 훈련받는 곳이라는 생각이 기초를 이룹니다. 성경 공부가 주류를 이룹니다. (…) 약점이 있었습니다.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삶의 신앙, 생활신앙 훈련이 부족했고, 마침내 1, 2차 대전을 비롯해 특히 독일 제3 제국 히틀러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할 때도 아무런 저항운동도 못 했던 것입니다.”

셋째 선교와 봉사 모델은 “교회란 하나님 선교의 전진 캠프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주막집이라는 모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세계교회 지도자들은 암스테르담에 모여서 회개하고 우리를 성찰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조직된 것이 세계교회협의회(WCC)입니다. 그곳에 모인 세계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당 밖의 세계현실을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의 학교’인 교회 밖 세상에는 빈곤, 질병, 인권억압, 빈부격차, 이념 갈등 등등으로 신음하고 고난을 겪는 수많은 사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8월 31일부터 제11차 WCC 총회(2022.08.31.~09.08)가 독일 카를스루에서 열립니다.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고후 5:14)”입니다. 늘 항상 WCC총회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주요 도전들을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선교적 과제를 정립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번 총회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 구조적인 경제 양극화와 빈부격차, 인종주의와 성차별, 또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등에 관해 세계교회가 세상을 향한 공동증언을 모색할 것입니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도 다룰 것입니다. 특히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 문제,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져 경제난도 부추기도 있습니다. 따라서 신냉전 극복을 위한 대안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화해와 일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화해와 일치를 위해, 한반도 종전선언 캠페인을 WCC기간 동안 실시합니다.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세계교회에 연대를 호소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를 이루고, 일치를 이룰 수 있을까요? 9년 전 부산총회를 기억합니다. “집단적으로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과정신학자 존 캅의 이 말은 1970년대에 생태계 위기를 걱정하며 외친 말이었지만, 9년 전 부산 상황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따라서 윌리엄 템플 주교의 다음의 말은, 그럼에도 가야 할 화해와 일치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도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갑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뜻과 나라의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의가 사방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충실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그 증거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신실한 봉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해가심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와 봉사 모델은 노아 방주도 좋고 하나님의 학교 모델도 좋지만, 교회가 그동안 너무나 그리스도인들만의 잔치에 몰입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윤리, 사회구원을 강조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섬김과 봉사의 선교(Diakonia mission)’에 열심이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현재까지 약 60~70년 동안 진보적 교회들의 교회상이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공동체 모델

그러나 이 3가지 교회사에 나타난 교회 공동체 모델보다 근본적인 모델이 있습니다. 김경재 교수는 이것을 “신비하고 놀라운 교회에 대한 정의”라고 하는데, 성서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 1:22-23)’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모델은 “교회란 예수의 영적 DNA를 받은 새로운 피조물들의 유기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 생명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행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모든 새로운 피조물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유기체로서 새 인류의 새싹 속에 새겨진 영적 DNA의 4가지 염기서열의 이름은 ‘정의, 평화, 생명, 사랑’입니다. 우리는 지난 성령강김절기 동안 이를 살펴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는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 교세를 확장하는 좁은 시각이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혁시키고야 말겠다는 예수의 우주적 정치에 온몸과 맘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경재 교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구촌을 넘어서 전체 우주, 하나님의 피조세계 전체,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 물질계와 정신계와 영계, 하늘과 땅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 한국기독교 장로회 교단의 큰 어른이신 장공 김재준 목사 역시 교회에 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교회란 땅 위에 서 있는 하늘 기관이기에 역사 속에 있지만, 역사에 속한 종교 기관이 아니다. 교회란 인간들이 주체가 되어서 형성해가는 ‘종교 주식회사’이거나, ‘종교적 결사단체’가 아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를 몸소 형성해가고 계시는 성령 가운데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종교와 영성을 부정하는 물질 환원주의적 과학적 세계관’이 핑배합니다. 또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독단과 독선적 종교적 근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나아가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비인간화된 세계현실’ 속에서 눈을 들어 주변 환경을 보면, ‘생태환경위기와 기후붕괴’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생명을 지키고 살려내는 일이 바로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의 본질이며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3.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오늘 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부터 다음 주 성령강림절기 마지막 주인 열둘째주일 말씀까지는 이제 공동체가 아니라, 개개인에 집중합니다. 특별히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지난주 말씀에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가 사랑과 정의, 그리고 경건 공동체라고 했는데, 이번 주 말씀은 경건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과 거룩한 삶입니다. 그리고 다음주는 사랑에 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뜨거운 성령강림절기가 사랑으로 그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사랑을 실천하는 모임이 되어야 하며 교인들은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님을 닮아 사랑을 베푸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섬김의 삶과 거룩한 삶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소개합니다. 복음서 말씀은 섬김의 삶을,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거룩한 삶을 권면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말씀은 이렇게 섬김과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3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위선자들, 곧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을 정면으로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본받지 말도록 훈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일곱 가지 외식하는 죄악을 지적하면서 책망하십니다(마 23:13-36). 결국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에서 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 바리새인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 23:1-7)

예수님께서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않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책망합니다. 이들은 모두 대접받기를 좋아하며 선생이라 칭함 받기를 좋아합니다. 모세의 자리, 곧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생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제자이자, 형제자매입니다. 형제자매는 높고 낮은 신분 차이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 23:9-10).” 이렇게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한 분이신 지도자이자 선생이신 예수님을 믿고 형제간에는 서로 사랑하며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라는 말씀처럼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거룩한 삶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보낸 편지에 그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4.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3-15)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지중해 전역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들은 현재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업은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6-19)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으니,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깨뜨릴 수 없는 소망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소망으로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0-21)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차별 없이 그가 행한 일과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최종적인 해명을 하도록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섬김의 삶과 거룩한 삶을 살지 않은 이들을 소개합니다. 바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선민 이스라엘, 곧 예루살렘을 버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5.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렘 15:5-6)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남유다 제19대 왕인 여호야긴 왕(B.C. 608-597) 때, 유다 땅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끊임이 없었습니다(렘 14:12). 사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징계의 수단인 칼은 전쟁을 상징하고 기근은 굶주림에 대한 고통을 상징하고 전염병은 질병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유다 백성의 구원을 위해 절규하며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렘 14:19)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예레미야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냉엄하게 응답하십니다. 네 가지 벌로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렘 15:3)”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남은 자까지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15:7-9)

이렇게 하나님의 분노는 섬김의 삶을 살지 않고, 거룩한 삶으로 본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심판의 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과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단지 종교 교세 확장이나 교회 부흥과 같은 낮은 차원이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를 하나님 나라로 변혁시키는 참된 교회가 되기를, 또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