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심판 받은 심판자칼 바르트의 화해론에서 죄의 문제⑶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8.19 18:25
▲ Duccio di Buoninsegna, 「Jesus at Herod's Court」 (c.1310) ⓒWikipedia

 

예수 그리스도, 종으로서의 주님

바르트는 화해론의 첫권의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 종으로서의 주님”이라고 붙였다. 바르트는 칼케돈의 기독론(451년)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 혹은 진정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그의 자격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를 맺고 그의 하나님이 되면서 자신을 우리의 형제가 되게 하고 그렇게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는 그의 순종에서, 그의 자기 희생에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드러난다.

“참된 하나님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어떤 분이신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이기도한 신적인 본성은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인간성, 그의 성육신, 그가 사람으로서 행하고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로부터 그의 신성을 추론해야 한다”(CD Ⅳ/1, 177) 

바르트에 의하면 단지 이 방식에 의해서만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자,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분, 거룩하신 분, 창조주, 주님”이시다(CD Ⅳ/1, 176). 하나님의 신성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약함과 심판에서 우리에게 드러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참된 특징을 식별한다. 그는 자신의 무한한 위엄과 순수한 절대성으로써 우리를 두렵게 하는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굴욕과 십자가의 ‘무력함’에서 우리와 함께 있다. 

여기서 인간의 비참을 자신이 떠맡고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받고 죽고 매장된 참된 하나님이 인식된다. 바르트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단지 그가 피조된 조건의 한계를 떠맡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인간의 비참을 떠맡을 수 있고 사실 떠맡았기 때문에, 그가 이 인간들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자신을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 아래 있게 하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죽음을 기꺼이 원하고 사실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이다”(CD Ⅳ/1, 128이하). 

그러므로 바르트에 의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의 신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아들의 성육신에서 그리고 이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죽도록 순종하신 것에서 우리는 종이 되신 주님을 만난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의 이러한 자기 낮춤의 활동은 인간의 교만을 반영하는 모든 거짓된 신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다(CD Ⅳ/1, 159).

우리 대신 심판받은 심판자

바르트는 이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화해와 구원을 이루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우리 대신에 심판을 받은 심판자”(CD Ⅳ/1, 211-83)라는 표제 아래서 다룬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모든 인간의 죄를 심판하려고 인간이 되셨다. 유일한 참된 심판자로서 겸손과 순종 가운데 오신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는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여기서 드러난 인간의 죄는,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과 그의 이웃의 심판자가 되려고 하는 교만”(CD Ⅳ/1, 231)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기 자신은 정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죄가 있다고 선언하면서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한다(eritis sicut deus).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을 심판자의 자리에 앉힌 것, 이것이 원죄이다. 모든 인간이 이 근본악을 범했고, 따라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대신에 당신의 아들이 심판을 받게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성서, 특히 공관복음서의 수난 설화에서 바르트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려움”(CD Ⅳ/1, 264)이라고 불렀던 것과 만난다. 이것은 범죄자가 심판을 받고 유죄를 선고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들을 심판하러 오신 심판자가 그들을 대신하여 심판을 받는 사건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거리낌이 되는 사실이다(참고, 고전 1:23, 4).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고난의 참된 현실이다. 심판자가 심판을 받는 자가 된다. “일어난 사건의 내용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짊어질 심판을 짊어지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하신 의로운 심판을 이루셨다”는 것이다(CD Ⅳ/1, 222).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였다는 것은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그가 인간의 죄와 죄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비극적인 운명과 저주와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처리하고, 그 대신에 그의 의와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이다. 참으로 우리의 구속과 하나님과의 화해는 마르틴 루터가 표현한 대로 “자리를 뒤바꾸는 즐거운 교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CD Ⅳ/1, 75). 이것이 바르트가 해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의 의미이다.(1)

미주

(1) 바르트의 화해론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에 대해서는, 최 영, 「칼 바르트의 화해론 연구」, 71-130을 참고.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