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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생단 투쟁의 원인과 교훈북간도, 동만특위의 반민생단 투쟁 (9)
이이소 | 승인 2022.08.19 18:55
▲ 동북항일연군의 저우바오중(周保中)이 48년 북한을 방문해 찍은 사진. 왼쪽부터 김일성, 그의 부인 김정숙, 저우바오중의 부인 왕이즈, 저우바오중. 앞줄의 두 아이는 김정일과 저우바오중의 딸 저우웨이. ⓒ한겨례

반민생단 투쟁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500여 명의 사람을 총살하고 수천 명의 사람을 숙청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변절과 투항의 길로 몰아세운 반민생단 투쟁은 비극적이다 못해 희극적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배후에 복잡한 원인이 있다.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와 ⌜연변조선족사 상권⌟은 정치, 사상 면에서 미성숙한 동만당 조직, 당내 복잡한 좌경사상의 영향, 적들의 음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미숙한 경험과 지식, 강요된 공술을 사실로 확신하는 허위, 중공만주성위의 부적절한 대응을 투쟁의 원인으로 파악하였다.(41)

⌜중국조선족통사 중⌟은 위의 5가지 원인에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복잡한 동만사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관념”과 “당의 민족정책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편차”를 추가하고 있다.(42) 이렇게 연변사가들이 분석한 원인이 투쟁의 원인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3년 반이나 지속된 사건의 핵심 원인은 당내 민족 차별과 권력투쟁이었다.

반민생단투쟁이 북만특위나 남만특위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청조(淸朝)가 봉금령을 해제하고 이민실변정책으로 두만강 이북에 허락한 조선인 집거지역이 있었던 동만특위에서만 일어났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첫째, 중공동만특위는 조선인의 조직이었으나 극소수의 한족(漢族)이 간부로 임명되는 모순에서 시작된 권력투쟁이 “송영감사건”을 빌미로 하여 표출되었다.

동만주지역의 당원이 전 동북지구 중공당원 총수의 54.1%를 차지하였고 그 가운데서 조선인당원이 96.5%나 되었다. 특별히 동만특위의 조선인 당원 중 현 이상의 간부가 18명, 구 이상의 간부가 41명인데 그중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에서 전투를 지휘한 경험의 군사간부가 9명이나 되었다. 뿐만 아니라 5개 현 및 산하 각 구에 농민협회의 회원 수가 무려 2만 5,000여 명에 달하였다. 

당시 중국인들이 세운 중공당동만특위는 와해되어 있었으나 코민테른의 “1국1당” 원칙으로 조선인들을 당원으로 받으면서 회생했을 뿐만 아니라 급성장하였다. 이에 따른 계급적 갈등과 충돌이 반민생단투쟁으로 폭발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공중앙과 만주성위에서 “1.26”서한을 통해서 노선의 변화와 투쟁의 위험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간부들이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해석하며 투쟁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둘째, 한족(漢族) 지도부와 당원들이 가지고 있는 조선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차별의식이다. 조선인들이 불법으로 만주에 들어와서 수전을 개발하고 러시아의 만주 침략을 막는 것에 일조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1907년부터 조선인의 뒤를 따라서 들어온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경제적 약탈로 말미암아 중국인들은 조선인을 일본의 첩자, 앞잡이로 혐오하였다.

특별히 중국인들은 민생단이 내건 “조선인자치”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그들은 일제에 편승하여 자치를 추구하는 조선인들을 증오하고 불신하고 배타하며 학대하였다. 당시 조선인들은 중국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으며 배타를 당하였다. 이런 중국인들의 민족적 정서가 조선공산당원들이 유격대 근거지에서 자치기구인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였을 때 한족지도부의 불신과 의심으로 나타났으며 투쟁을 가속화시키는 복잡한 배후 원인이 되었다. 

셋째, 반민생단투쟁으로 권력투쟁을 주도한 동만특위 간부들의 자기기만의 허위위식과 조장된 위기의식과 공포감이다. 동만특위 간부들은 권력투쟁으로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투쟁을 멈추는 순간 투쟁의 대상이 되므로 앞잡이로 사용하였던 사람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투쟁이 불가능한 상태, 당의 마비상태까지 투쟁을 이끌어갔다. 위증민은 절묘한 시간에 해결자로 나타나 투쟁을 종료시키며 투쟁을 이끌어 갔던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항일연군 제1로군 약사❯에 의하면 민생단분자로 몰려 사형당한 사람이 500여 명(43)이나 되며 그 가운데서 현급 이상의 간부가 40여 명이나 된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실제적 증거가 있는 민생단분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반민생단투쟁으로 동만지구 당조직은 막대한 손실을 입어 1936년에 와서는 중공동만특위는 이름뿐이고 산하에 현위가 없어졌으며 단지 남, 북 두 개 특별사업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는 4개 구 당위, 12개 당지부에 248명의 당원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20세기 30년대 초 전 동북에서 중국공산당 조직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던 동만지역 당 조직은 마비상태에 빠져 동북혁명군 제2군에는 정치 간부와 군사간부가 모자라는 위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투쟁을 견지했던 악마적인 세력은 한족(漢族)이라는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비판을 받지 않았다. 만약에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조선인이 아니고 한족(漢族)이라면 비판과 재판 없이 사건이 그냥 무마될 수 있었겠는가?

넷째, 조선인들의 파벌의식과 배타성이 투쟁에 크게 작용하였다.

조선인 당원들은 출신이 다양하였다. 다양한 만큼 반민생단투쟁에 일치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앞장서서 투쟁을 하거나 투쟁을 당하는 자가 되었다. 당시 조선인 당원들은 용정만세시위에 참가하였던 민족주의자들, 기독교에서 전향한 사람들, 중산층 지식인들, 조선에서 올라와 조선독립투쟁의 연장으로서 만주총국을 세운 화요파들, M.L파들, 서상파들과 시베리아에서 온 사람들, 상하이와 이르쿠츠크에서 온 사람 등으로 계파가 복잡하였다.

그들은 28년 코민테른이 “1국1당”정책을 확정하고 지시할 때까지 각자 영역을 확보하고 경쟁적으로 시위와 투쟁을 주도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연변에 선전하였다. 그들은 간도공산당 1차, 2차, 3차 사건을 치루면서도 함께 연합하지 않고 각자의 노선을 추구하였다. 그런 그들이 중공당에 가입하려 하자 중공중앙은 단체가입을 허락하지 않고 개인자격의 가입만 허락하였으며 당내에서 특별조직이나 특별관리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어떤 파벌조직도 인정하지 않으며 종파주의와 파벌투쟁을 반대하며 당내의 어떤 조직에서도 어느 한 파벌이 독점하거나 혹은 다른 파를 배척하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하게 만들었다.

중공당에 가입하면서 서약까지 하는 치욕을 경험하였지만 그들의 파벌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조선인들의 취약성을 알고 있는 중공동만특위는 조선인들의 갈등과 대립을 이용하여 서로 밀고하며 죽이도록 부추겨 반민생단투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을 수 있었다.

다섯째, “1국1당”의 중앙집권적 체제 속에 생래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지도부와 다른 생각과 사상에 대한 거부와 불관용, 의심과 불신 그리고 배타성 또한 투쟁의 숨어있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지도부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꽃다운 청년들이, 혁명의 인재들이, 항일투쟁의 용사들이 죽어갔는가!

그러나 가장 큰 반민생단투쟁의 원인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일본제국주의의 음모, 이간질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동만특위의 지도자들과 조선인 간부들이 적들의 공작, 이간질을 파악하였다면 그리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화를 나누었으면 반민생단투쟁의 억울한 죽음은 역사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이름의 반민생단투쟁이 권력투쟁과 권력유지와 불신조장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반민생단투쟁이 우리 후손들에게 뼈아픈 깨달음이 되길 바랄 뿐이다.

반민생단투쟁이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반민생단투쟁을 “반민생단참변”으로 생각한다. 경신참변보다 희생자의 숫자가 적지만 자유시참변보다는 몇 배나 더 많다. 경신참변에 죽임당한 북간도의 조선사람들은 대적(大敵)인 일제의 총칼과 불에 죽고, 몽둥이에 맞아 죽고, 자유시참변에 희생당한 만주의 독립군은 코민테른에서 나온 러시아 군인과 서로 다른 편에 속해 있던 독립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러나 반민생단참변에 죽은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인 항일투사들은 같은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사의 일방적인 잔인한 고문과 총칼에 죽었다. 그동안 반민생단참변을 묵상하며 항일 독립운동의 길을 같이 가는 자들이 더구나 사상적으로 동일한 사람들의 단체에서 단계와 절차도 밟지 않고 사람들을 마구 죽여 버린 엄청난 비극, 부조리와 모순을 민족의 제단에서, 독립운동의 제단에서 어떻게 이해하며 화해시키며 승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며 많이 울었다.

억울하게 죽은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빌며 수시로 그분들을 추모한다. 민족주의계 독립운동가들과 다름없었던 그들의 순수한 나라와 민족 사랑을 기억하며 그들의 죽음이 주는 교훈을 새겨 본다. 

첫째, 그 어떤 사회주의자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기 민족과 나라의 입장에서 공산주의 혁명투쟁을 할 뿐이다. 그들은 중국의 혁명이 조선의 혁명이라고 말하면서 중공동만특위에 참여한 조선인들을 배려한다며 동만특위 내에 “조선국내공작위원회”를 설치하였지만 그것은 명목에 불과하였다.

중국 지도자는 중국에 유익하도록 투쟁 일정을 조정할 뿐 결코 소수민족을 배려하지 않는다. 중국혁명이 완성되면 조선독립은 절로 된다고 주장하며 중국 혁명에 동참을 적극 권하였던 중공공산당의 민족이기주의와 국가이기주의 앞에서 조선인 개인은 참으로 무력하다.

둘째, “1국1당”원칙은 생래적으로 지도자에게 중앙집권적 권력과 독재 특권을 허락하므로 민주주의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인권의 차원에서 볼 때 참으로 위험하다. 1국 1당의 제도는 소수민족과 약자를 유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쉽다. 우리는 반민생단투쟁에서 이 사실을 원 없이 체험하였다.

셋째, 엄중한 형벌로 표현되는 고문은 불의하고 악한 독재 권력가들의 표상인데 인민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는 중공동만특위가 고문으로 조선인들의 허위 자백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그 단체가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제국주의를 모방한 것이다. 고문은 그 자체로서 봉건적이며 반혁명적이며 인간성의 파괴이다.

넷째, 동만특위 내의 조선인들을 선입관으로 불신, 차별하는 한족(漢族) 지도자에게 조선인들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하향식 당 구조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차별과 배타를 조장하고 생명과 인권을 외면하는 혁명은 반드시 무너진다.

다섯째, 3년 6개월 동안 조선인 청년 독립운동가 500여 명이 무고하게 학살당하고 있는데 중공만주성위와 동북지구의 북만특위, 남만특위의 조선인들은 무엇하고 있었는가? 이 문제를 민족차별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현재까지 나온 글에서는 전혀 없었다.

같은 독립운동의 길에서 같은 사상으로 하나가 되어 독립의 날을 꿈꾸었던 동지들의 굳은 맹세는 감상에 불과하였는가? 권력의 위세에 눌렸는가? 그들이 민생단 첩자로 몰려 총살당한 자들을 진짜 첩자로 생각하였는가? 그들의 침묵이 마음 아프다.

청년들의 뜨거운 심장과 맑은 눈동자를 생각한다. 조국을 찾겠노라 말 달리던 그들이 낯선 북간도, 동만의 하늘 아래서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죽어가며 몸으로 드린 기도를 묵상한다. “반민생단참변”으로 얼어붙은 그들의 이름과 죽음이 우리의 미래를 여는 밑거름, 교훈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미주

(41) 양소전, 차철구 외 3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411, 412쪽, 연변인민출판사, 2009
      김영만, 리송영 외 11인 저 ⌜연변조선족사 상권⌟, 315, 316쪽, 연변인민출판사, 2011
(42) 김춘선, 김철수 외 10인, ⌜중국조선족통사 중권⌟,158~160쪽, 연변인민출판사, 2009
(43) 어떤 책들은 희생자를 1,000여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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