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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정치학에의 저항과 새로운 희망제주 4.3의 계보학과 탈식민지 정치 ⑷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2.08.19 23:02
▲ 1899년 필리핀 마닐라, 인트라무로스(Walled City) 대성당 앞, 미군과 반란군 포로들 ⓒWikipedia

필리핀-첫 번째 베트남 전쟁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관여한 윌리암 태프트는 필리핀 식민정부에서 초대 총독을 역임하면서 당시 맥킨리 대통령에게 필리핀 사람을 “우리의 어린 황색인종 형제”들 이라고 불렀다. 50년에서 100년 정도는 미국의 후견과 감시 아래 정치제도와 민주제도를 배우고 자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필리핀 사람들은 미 해군이 스페인 함대를 이기고 마닐라를 접수할 당시 독립운동 지도자 호세 리잘(Jose Rizal)이 있었고, 그가 처형된 뒤에도 혁명 운동은 지속되고 있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는 미군의 마닐라 입성을 도와 스페인을 같이 무찔렀다. 그는 1898년 6월에 의해 독립을 선포하고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이 되었다(1899 1월 21일). 이런 정부를 향해 미국은 7만 명의 군대를 보내어 고작 500명 정도 되는 필리핀 부대를 궤멸시켰다. 1902년 미군이 공식적으로 종전을 선언했지만, 타가로그 공화국을 세워서 필리핀 유격부대들이 3년 이상을 저항하고 버틴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다.

미군 4천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 이상의 필리핀 군인들과 주민들이 죽었다. 제1차 베트남 전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최근 연구에선 다양한 저항그룹들에 대한 포괄적 분석이 진행되면서 백사십만 명 정도라고 하니 대학살 수준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학창 시절부터 성품이 매우 호전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893년 경제침체로 인해 해외시장과 무역 독점을 할 수 있는 식민지가 필요했다. 여기에 사회진화론이라는 인종 이론이 거들고, 적자만 생존하고 생존 투쟁하기 위해 해군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유명한 해군 제독이고 역사학자였던 알프레드 마한(Alfred Mahan)은 루즈벨트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부추기고 해군력 증강이야말로 승리하는 길임을 역설했다. 군산복합체란 말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1961년 고별연설에서 사용했지만 이미 루즈벨트 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링컨의 남북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흑인들을 짐 크로우(Jim Crow)법의 굴레에 씌워 린칭나무(the Lynching Tree)의 폭력을 방조한 인종 이데올로기였다. 가열찬 인권운동으로 인해 1965년 폐지가 되었다고 해도, 사회진화론은 여전히 군산복합체와 더불어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미군이 필리핀에서 행한 물고문과 주민 학살 그리고 초토화 작전은 속속들이 밝혀진 사안들이다. 1901년 프랭클린 벨 준장은 반타가스와 라구나 지역에서 초토화 작전을 하면서 포로들과 주민들을 포로수용소에 가두고 잔혹 행위를 했다. 이로 인해 8천 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유격대원들로부터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고 식량 공급 차원에서 행해진 작전이라고 발뺌했다. 오히려 필리핀의 잔혹 행위가 더 심하다고 매스 미디어에 의해 호도되었다. 이 시기에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전쟁에서 적대행위가 미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송두리째 짓밟는다는 비판은 유명하다.

특히, 발랑기가 전투에서 패하자 제이콥 스미스 장군은 열 살 이상 총을 들 수 있는 아이들은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악명높은 명령은 1902년 뉴욕저널(5월 5일)에 삽화로 실리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극악하다. 미군이 점령하기 10년 전 태어난 자들은 모두 다 범죄자란 명목이다. 라이프 잡지의 커버에는 물고문을 행하는 장면이 실렸다. 양심적인 미군 장병들이 잔악한 행위를 편지로 써서 집으로 보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한 병사의 편지에는 필리핀 사람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제주 4.3의 참혹함을 거쳤던 선량한 시민들은 해안을 따라 세워진 이른바 전략촌 또는 강제 이주로 불리는 난민 수용소에서 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하워드 진(Howard Zinn)의 『미국의 민중사』에서 필리핀의 식민지배 이후 동아시아로 펼쳐나가는 미 제국주의의 원형으로 파헤친 것은 탁월한 견해이다. 이 책이 25판이나 찍혀 나가고 미국의 공론장과 시민사회에서 깊은 반성의 울림을 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1902년 5월 5일 뉴욕저널(New York Journal)에 실린 삽화, "Kill every one over ten.", Homer Davenport ⓒWikipedia

신체정치학과 국가 비상사태

2018년 필리핀 영화감독이 만든 “젊은 장군 고요(Goyo)”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전쟁은 인간의 신체를 담보로 한다. 미셀 푸코는 왜 국가가 마음대로 시민의 신체를 길들이고, 감시하고, 살상하는지 그 이유를 담론과 권력의 관계를 통해 계보학적으로 추적했다. 이것을 푸코는 신체정치학으로 부른다. 물론 이것은 한나 아렌트가 히틀러의 파시즘의 정치를 분석하면서 주목한 내용이기도 하다.

국가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돌입하면 공권력은 국민의 신체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고 죽고 살릴 수 있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히틀러의 파시즘에서 자행되던 유대인 학살이나 일제 강점기에서 행해졌던 위안부나 강제 징용이다. 신체정치학에서 나타나는 초토화 작전이나 부락민들을 게릴라 대원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전략은 “재집중” 군사 캠페인 진행된다. 광범위한 고문과 질병 그리고 대량기아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는다. 이러한 군사작전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시민들과 부녀자 그리고 어린아이들이다. 이러한 살해의 정치가 필리핀과 제주 4.3에서 여과없이 행해졌다.

이렇게 본다면 1949년 1월 제주 근해에 소련의 잠수함이 출몰하고 200명의 무장 대원들에게 공격 신호를 했다는 기이한 보도가 「뉴욕타임즈」에 실렸는데, 후기 수정주의 입장에 서 있는 정치학자들은 이데올로기 호출 전략으로 비판한다.

결국 한국동란은 제주 4.3에서 시작했고, 50년 전면전으로 치닫고 54년에 제주의 시민 항쟁은 무수한 희생자를 낳고 종결된다. 제주 4.3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통일임시정부를 향한 최초의 시민운동이었다. 전후 냉전 이데올로기와 조국의 통일정부를 향한 틈바구니에서 제주도민들은 속죄양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들의 유효한 역사는 연대 정치라는 생생한 현재로 시작될 필요가 있다.

회복케 하는 정의를 향한 걸음

이제 글을 마친다. 한국 근대사는 제주의 삶을 파괴하고 유린했다.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4.3을 피해 두 살배기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오사카로 밀항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하지만, 어린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갔을까? 나에게 두려움이 몰려오고 나는 혼자 걷는다.” 울부짖는 젊은 엄마에 맞춰 흐르는 노래의 가사이다.

1947년 3.1절에서 보여준 정의감과 민족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제주 사람의 생활세계에 녹아있는 문화적 특징이다. 역사가 우리를 파괴했지만 혼자서 걸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용서란 회복하게 하는 정의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4.3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었던 나의 이종사촌은 연좌제로 인해 어려운 삶을 살았다. 용서할 수 있을까?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정책을 피해 프랑스-스페인 국경 지역을 넘어 해안 도시 포르트보(Portbou)에서 스페인 프랑코 정부에 의해 통과비자가 거절되고 프랑스로 되돌아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대신 호텔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명한 역사철학 테제에는 “문명은 동시에 야만의 문서”라는 글귀가 있다.

그러나 순전한 희생자들에게만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열린다고 쓴다. 이제 야만의 시대를 살아온 제주 사람들에게 열리는 새로움의 시대를 기대한다. 그것은 생활세계를 살려내고 회복하게 하는 정의로움을 향해 걸어가는 가는 것이다.

유효한 역사란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온다. 계보학이란 거리낌 없이 앞을 향해 질주하는 지배와 권력의 역사에 ‘아니오’를 말한다. 이것을 항해 취하는 파레시아의 태도는 지금까지 묻힌 역사를 생생한 현재(vivid present)로 드러낸다.

탈식민지 시대에 시민 사회운동의 상징으로 3.1과 4.3은 이제 우리에게 생생한 현재가 되며 미국의 학계에서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우뚝 서게 된다. 4.3의 생생한 현재는 이승만 정부수립 이후 나타난 모든 폭력과 부정의 그리고 국가법에 대한 내재적 비판의 원류로 남아 있다. 그것은 임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좌우의 연대 정치를 통해 일어난 최초의 시민운동이자 마지막이었다. 절대 희생자는 파레시아를 통해 말한다. 제주의 4월은 유채꽃의 눈부심과 아픔이 공존하지만 새로운 희망이 만개할 것이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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