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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은 없다신앙 안에서 대비하는 삶(이사야 57:14-16)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8.21 04:43
▲ Maarten van Heemskerck, 「Prophet Isaiah predicts the return of the Jews from exile」 (c.1560-65) ⓒWikimedia

 

14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예방과 대처

성령강림후 열한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평소 신앙은 어때야 할지, 또 우리의 삶은 어떤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보통 학교에서 컴퓨터를 처음 가르칠 때, 키보드 타이핑 연습부터 시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한글과 컴퓨터에서 제공하는 한컴타자연습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최근에 제공되는 한컴타자 장문 연습에는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예전에는 전국시대 명의였던 편작의 이야기가 들어있었습니다.

편작은 삼형제의 막내이면서 신이 내린 명의라는 칭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왕이 그에게 형제 중 막내가 가장 뛰어날 수 있던 방법을 물어봅니다. 이 질문에 편작은 자신보다 형들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둘째 형은 잔병만 치료하는 의사로 알려졌지만, 사실 마을 사람들이 큰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다스리는 사람이고, 큰형은 아무런 치료도 못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마을 사람들이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편작은 병에 대처하는 의사이지만, 그의 큰형은 병을 예방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형은 작은 병에 대처하며 더 큰 병을 예방하는 사람입니다. 예방과 대처는 우리 삶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예방하며 살아갑니다. 또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것에 대처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선포도 잘 생각해보면 예방과 대처로 나뉩니다. 하나님의 심판 또는 큰 환난이 닥쳐왔을 때,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선포합니다. 그 환난에 의해 어려움을 당한 후에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선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환난을 당하지 않기 위한 예방법을 말합니다.

예언자들의 목소리는 예방과 대처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환난을 예방, 대비하라고 외쳤지만, 그 목소리가 닿지 않았기에 환난이 일어났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선포하고, 환난이 끝난 후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예방하라고 말합니다.

보통 이사야서에는 세 명의 이사야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1-39장은 제1이사야, 40-55장은 제2이사야, 56-66장은 제3이사야가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제1이사야는 열왕기에도 등장하는 히스기야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제2, 제3이사야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2이사야는 바벨론 포로 시대의 예언자이고, 제3이사야는 포로 귀환 이후의 예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제1이사야의 선포는 대략 다가올 심판에 대비하라는 선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심판받지 않을 예방법을 전합니다. 제2이사야는 포로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위한 대처법을 선포합니다. 제3이사야는 귀환 이후 다시금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예방법과 귀환 후 삶에 대한 대처법의 선포일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을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또 세 이사야가 처한 상황을 단순하게 포로기 전/당시/후로 나누어서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 안에서도 세부적인 상황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우리의 신앙은 닥쳐올 삶의 시련을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시련이 닥쳐왔을 때 하나님 뜻 안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던지, 환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 이 상황에 대처하는 일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지켜야 할 일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예방법이고 대처법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에서 이사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사야 뿐만 아니라 호세아와 같은 예언자들도 이미 이런 이야기를 선포하였는데, 우리가 돌이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되돌리신다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행위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중요하게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게 길을 닦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이사야 40장 3-4절에 나타난 길을 평탄히 하라는 말씀과 비슷해 보이지만, 길을 걷는 대상이 다릅니다. 이사야 40장은 하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선포와 닿아있습니다.

하지만 제3이사야에 나타난 길은 하나님께서 걸으실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올 길입니다(사57:14, 58:12, 62:10).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되돌리시기 위해 닦으시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의 18-19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고치시기 위해 닦으시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친히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 직후에 나오는 본문 17절을 보면, 이 백성들은 여전히 탐심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들은 여전히 악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죄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금 되돌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전히 죄에 빠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우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믿고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20-21절을 보면,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평강이 없다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앞서 여전히 탐심의 죄악에 빠져있던 이들은 하나님께서 고치고 회복시키셨지만, 이 본문에 나타난 악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차이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구원에도 관심을 갖고 있던 제3이사야의 성격으로 본다면, 이런 구분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어떤 죄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가는 1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통회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다카(דכא)’로 본래 ‘산산히 부서짐’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마음이 겸손하다고 할 때는 낮아짐을 뜻하는 ‘샤팔(שׁפל)’이 쓰였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죄악으로 찬 마음이 부셔지고 낮아진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를 깨달아 죄악에 찬 마음이 부서진 사람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는 사람,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되돌리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여전히 악에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할 악인이 됩니다.

대처보다 대비하는 신앙

지난 주중에 갑자기 허리 디스크가 와서 상당히 힘든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전에 디스크를 한 번 경험해봐서 그런지, 디스크가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예전보다 빠르게 통증이 완화될 수 있었습니다.

대처법을 알았기 때문에 빠르게 완화시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통증이 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디스크가 왔을 때는 한동안 디스크 방지를 위한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통증이 없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점점 나태해져서 운동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몸의 건강에 대해서도 이렇게 나태해지는데, 우리 신앙은 어떻겠습니까?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도우시고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키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큰 어려움이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순간에 하나님을 잊습니다. 나태함에 빠져 다시 탐심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렌토르프(Rolf Rendtorff)는 제1이사야는 정의와 구원, 제2이사야는 공의와 구원, 제3이사야는 정의와 공의와 구원을 선포한다고 말합니다. 제3이사야가 앞선 이사야의 개념을 모두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한 차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심판이나 어려움에 대처하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며 예방하는 신앙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의 선포를 합쳐놓았다고 봅니다.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비, 예방도 잘하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대비하고 예방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쉬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삶에 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부서져 하나님께 돌아서게 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사야가 선포한 악인의 범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환난과 어려움에 대비하는 삶, 이를 예방하는 삶은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기도하고 간구하며 대처하는 신앙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도우십니다. 신앙 속에서 환난을 예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또 우리가 환난을 당했을 때, 당신의 도움의 손길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고 다시금 하나님을 돌아본다면, 그 손을 붙잡고 구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실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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