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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수용’만이 답일까?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 그리고 대책 (2)
이정훈 | 승인 2022.08.25 07:05
▲ 경기도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해밀. 총 30명이 거주할 수 있다. ⓒ해밀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는 게 편하지 않아요? 왜 굳이?” 

먼저 필자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하는 부분에 대해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필자는 2019년 7월부터 시행된 장애등급제 개편으로 인한 ‘장애 정도’에 의하면 ‘중증 장애인’에 속한다. 그 이전 법령에 따르면 ‘2급 지체 장애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필자가, 그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 전이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시던 한 이웃 아주머니께서 “집도 어려운데 보호시설에 보내. 그게 편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애를 왜 그런 데 보내” 하셨다.

1970년대 말 즈음이었으니 모두가 가난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했고, 장애인은 으레 그런 곳에서 자라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이것을 완강하게 거부하셨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필자를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셨다.

장애로 인한 것인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는지 모를 일이지만, 워낙 천성이 게을러 어디 나가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했는데, 국민학교 입학 전까지, 입학 이후에는 목발로 보행했던 터라 어머니께서 업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어머니께서 업고 다니지 않으신 곳이 없을 정도로 필자를 속된 말로 끌고 다니셨다.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의 심정이 필자의 어머니와 같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장애를 가졌다고 해도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며 생이별을 원하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손으로 장애 자녀를 장애인 거주시설로 보내는 부모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장애인 거주시설이란?

장애인 거주시설이란 무엇일까. ‘장애인복지법’ 제58조 1항 1호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이란 거주공간을 활용하여 일반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일정 기간 동안 거주․요양․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하는 시설”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1년 7월에 발간한 ‘2021년 장애인 복지시설 일람표’에 따르면 정식으로 등록된 장애인 거주시설은 1,539개소이고,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은 29,086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여기서 잠시,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1년 4월10일 발표한 2020년 등록장애인의 장애유형․장애정도․연령 등 주요 지표별 『2020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인구대비 5.1%를 차지하고 있다. 15개 장애유형 중 지체장애 비율은 45.8%로 높게 나타났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반면, 발달장애(지적, 자폐성)는 증가 추세에 있는데 2010년 7.0%에서 2020년에는 9.4%로 증가했다. 장애정도를 살펴보면 심한(중증) 장애인은 98만 명으로 37.4%, 심하지 않은(경증) 장애인은 165만 명으로 62.6%로 나타났다.

이렇게 두고 본다면 0.011%의 장애인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높은 비율로 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수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가, 장애인 거주시설은 5가지 유형이 있다. ①장애유형별 거주시설 ②중증장애인 거주시설 ③장애 영․유아 거주시설 ④장애인 단기 거주시설 ⑤장애인 공동생활 가정 등이다. ‘장애유형별 거주시설’은 장애유형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시설이며 장애유형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장애인을 거주하게 함으로써 장애유형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및 언어장애, 지적자폐성 장애의 유형에 따라 장애유형별 거주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은 장애 정도를 기준으로 설치하는 거주시설인데 장애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항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주거지원, 일상생활 지원, 지역사회 생활지원, 그리고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이 시설에 입소하는 중증장애인은 과거 기준으로 보면 1급과 2급 장애인인데 이들에 대한 서비스의 강도가 높기 때문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물적, 인적 인프라가 다른 거주시설에 비해 더 많이 소요되므로 시설 유형을 별도로 구분해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장애 영․유아 거주시설’은 연령을 기준으로 설치하는데 입소일 기준으로 6세 미만의 영․유아가 이용할 수 있다. 입소한 영․유아는 이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거주할 수 있다. 이 시설은 장애 영․유아를 보호하고 장애 영․유아에게 필요한 주거지원, 일상생활 지원, 지역사회 생활지원 그리고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 단기 거주시설’은 입소기간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시설이다. 그 기준은 1개월이다. 장애인 보호자의 일시적 부재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단기간의 주거서비스,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 지역사회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장기적인 시설이용이 필요하지 않은 장애인이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이지만 실제로는 상당수의 시설이 단기가 아닌 장기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은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수를 기준으로 구분하는데 10인 미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최대 9인까지 공동생활 가정에서 거주할 수 있다. 장애인이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전문 인력의 지도를 받으면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지역사회 내의 소규모 거주시설이다. 상처를 입은 상태의 중증장애인과 6세 미만의 장애영유아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 사람들은 가능한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과 장애 영․유아 거주시설에 입소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 거주시설을 이용하게 될 때 이용료는 얼마나 될까. 장애인 거주시설은 ①소득수준별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경우와 ②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등록’장애인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나 수급권자가 아닌 경우라도 ‘등록’장애인으로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등록’장애인이면 아무런 비용부담 없이 가능하다. 단, 부양의무자 및 부양능력 유무는 관할 시장, 군수, 구청장이 판단하게 되어 있다.

또한 실비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소득조건에 관계없이 ‘등록’ 장애인이면 가능하다. 여기에 장애인 거주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닌데, 실비로 시설을 이용하는데 있어 국가의 별도 지원도 존재한다. 장애인 거주시설 중 실비거주시설의 경우 ‘기준 중위소득’ 이하인 장애인의 경우에는 국가에서 월 입소이용료 가운데 290,000원을 지원하고 있다. 월간 시설 이용료 668,000원 중 290,000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장애인 거주시설 현황 ⓒ보건복지부

부모와 자녀에게 서로 윈-윈일까?

이런 자료들을 앞에 두고 보면 어떤 장애 유형을 가지고 있든 간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속된 말로 널리고 널렸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중증 장애인이라면, 그 장애 구성원을 장애인 거주시설로 보내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지출하게 되니 가정경제가 무너지거나, 특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중증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일도 없다. 또 속된 말이지만 국가가 다 알아서 해주는 격이다.

장애 자녀를 둔 가정을 곁에서 바라보는 이웃의 입장에서는 장애 자녀를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시키고 가정을 살리는 것이 일견 맞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도 이 방법이 옳은 것 같고 정당하기까지 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는 게 편하지 않아요? 왜 굳이?’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되면 장애 자녀를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시키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부모들은 어리석게 보일 부분이다. 그렇게 할 바에야 속된 말로 그냥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윈-원(Win-Win)’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럴까, 정말 장애 자녀를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는 것이 장애 자녀를 둔 부모와 장애 자녀 서로에게 윈-윈 하는 것이고 참사를 막는 길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내 일도 아닌데 왜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왜 대답해야 할까, 대답할 의무가 있기나 할까, 내 일도 아닌데 말이다. 장애 자녀와 그 가족의 참사를 막는 길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감이 생긴다면 그때부터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대답할 의무를 느끼지 못한다면 참사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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