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드러낸다.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죄의 깊은 차원이 드러난다. 심판자인 동시에 심판을 당한 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의 죄의 심각한 차원들이 알려진다는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요 1:29)만이 “죄의 짐”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1)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바라보아야 하는 거울, 최고의 객관적인 지식의 원천”(CD Ⅳ/1, 240)이다.

바르트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적인 죽음으로부터 이 문제를 다루면서, 죄의 교리로부터 시작했던 전통적인 교의학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뒤바꾼다. 그들은,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먼저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에 의하면 이런 방법에 의해서는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의 자기 이해는 언제나 부정확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그릇됨에 대한 지식에서조차 그릇되다”(CD Ⅳ/1, 361). 또한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성서의 역사에 계시된 율법에만 의지하여 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우선, 바르트는 율법은 하나님의 개념과 그의 율법의 개념의 부당한 분리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창조주의 순전한 신성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추상적인 개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 하나님의 추상적인 요구는 성서와 무관하다.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행동에서 한 분이시다. 그리고 이 한 분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사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관계에서도 그는 이 하나님이지 다른 어떤 이가 아니다. 하나님을 분리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추상적인 하나님과 그의 추상적인 율법은 인간이 임의로 고안해낸 것에 불과하다(CD Ⅳ/1, 362-63)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사역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간과하는 죄 인식의 사상을 거절한 것은 소위 ‘자연신학’을 철저하게 반대했던 그의 시종일관한 논리적인 발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2) 바르트에게 있어서 제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학적 방법, 곧 “그리스도론적 방법”의 문제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바르트의 죄 인식론의 기초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거기 계시고, 살아 계시고 말씀하시고 증거하시고 확신시키신다”는 사실이다(CD Ⅳ/1, 389).

바르트는 이렇게 전통적인 교의학의 문제를 지적하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의 인식의 거울이 되는지를 네 가지 점에서 검토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은 순수하고 성숙하고 명백한 형태를 가진 인간의 죄와 관련이 있는 곳에 그 자리를 갖고 있다. 죄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고 “이웃에 대한 적의”인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잘못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CD Ⅳ/1, 398).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위하여 행하신 일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그때에 인간은 정말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요(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적으로 형제를 살해한 자”이며(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형제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자기를 파괴하는 자”(예수 그리스도는 그에 의해서 만물이 피조된 말씀이기 때문에)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CD Ⅳ/1, 399).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죄된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는 또한 “심판자”이기도 하다.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가증스러운 모습이 드러난다(마 3:11, 12, 4:7 참고). 왜냐하면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자신에 적대적인 죄는 명백한 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선한 것에 대한 무관심이나 반대가 아니라 반박할 수 없이 그리스도에 의해 드러난 것으로서 실제로 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우리가 만약 단순히 인간의 실존만을 고려한다면, 죄의 실체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악은 언제나 선과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눈에 띄게 이웃 사람들의 적이 아니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단지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볼 때만, 죄가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 전체적 현실성 가운데 드러난다(CD Ⅳ/1, 399-403).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에서 죄는 “인간적 존재와 행위”의 “진리”로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죄인들과 공개적인 교제에 들어가셨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변호하셨기 때문인데,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과, 어떤 사람도 그 자신을 혹은 다른 사람들을 죄가 더 많거나 더 적다고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전체 인간이 그 중심에서 죄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마치 주어와 술어의 관계처럼 죄인과 죄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CD Ⅳ/1, 403-407).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의미와 범위”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무한히 우월하시고 그렇게 죄는 그 한계를 갖는다.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창조주로서 죄에 대항하여 등장하실 때, 죄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부조리한 것으로서, 즉 진정한 잠재능력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죄는 단지 “불법”으로 드러난다(요일 3:4).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죄를 상대화하고 도식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그에 대해 자기의 아들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CD Ⅳ/1, 407-413).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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