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광기의 시대에 싹튼 하나님 나라긴급구호와 사랑의 쌀로 행복하다 ⑴
이이소 | 승인 2022.08.26 20:45
▲ 나눔에서 기적이 시작된다 ⓒPublicdomainpictures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 넘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의 재확산,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중국의 대립각, 펠로시의 한국 방문 여파, 새 정권의 순탄치 못한 행보와 북한과의 대립각,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만연 그리고 변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구태와 진보와 보수 도식에 갇혀버린 국민들의 자기 이념 절대화, 역시 같은 함정에 빠져있는 언론의 보도들이 숨넘어갈 듯하다. 

이와 반대로 다누리호가 달로 향하는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달로 가는 1차 관문을 통과하였다는 사실에 온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우주경제시대의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섰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크리스천으로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가 나의 화두이고 내 삶의 과제이다. 한국 크리스천으로 이런 시대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내야 하는 사명이 나에게 있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 교류하며 서로가 자유로우며 서로 평화롭고 살맛이 넘치는 세상,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이루어야 할, 바라보아야 할 꿈과 희망이 나의 DNA 속에 있다. 

예수께서 살았던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1세기의 팔레스틴도 이렇게 희망과 절망이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당시 유대에는 교권을 장악한 예루살렘 중심의 사두개인들,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이념과 신학을 주도하는 바리새인들, 반로마와 반헤롯을 주장하는 열혈당원들, 친로마, 친헤롯을 지지하는 헤롯당과 관료들 그리고 의와 거룩한 삶을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떠난 금욕주의, 에세네파가 있었다.

예수님은 시대의 광기 속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신학, 사상, 이념과 다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예수의 선포와 치유는 그들의 조직과 존재의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창조의 새 역사였다. 그러나 양대 세력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위험한 사람, 위험한 정신을 제거하기로 음모를 꾸미고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적을, 아들인 증거를, 아들다운 위대한 구원의 로드맵을 제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때 주님께서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씨가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 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갔다.”(마 16:2–4)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통치로 고난당하는 동족 유대인들을 자기들이 소속된 집단의 교권 수호와 조직을 위한 친위대, 지원자, 지지자로 전락시키고 있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요나의 기적 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선포하였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낸 것 같이 나도 너희들에게 죽임을 당하여 3일간 무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 백성을 구한 것 같이 나도 부활하여 천하 만백성을 구원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요구하는 메시아로서 로드맵이 없다. 조직과 참모와 행동대원도 없다. 오직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줄 것은 나 스스로를 제물 삼아 이웃을 사랑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너희가 사유화하고 있는 교권과 신학, 이념의 세뇌로 이어지는 땅의 종교를 위한 기적은 없다. 기적은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구원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다.
 
예수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과학적으로 진보하고 발전한 이 시대는 신을 부정하며 인류의 집단 지성으로 새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 함께 번영하는 세상을 이룰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인류의 정신은 퇴보하였고 인간은 감각과 부와 권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인종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그런 일을 하겠다는 크고 작은 정치 경제의 영웅들이 있어서 세상은 문자 그대로 끝없는 경쟁과 소비와 소유와 향락을 탐닉하며 종말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 속도와 방향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다. 브레이크를 밟는 다는 것은 자기희생, 자기 죽음, 자기부정(自己否定)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이런 시대의 흐름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맞설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자기의 행복과 안일 그리고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시대의 십자가를 지며 피조물에 불과한 물질과 권력과 영광과 명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삶 전체를 걸고, 생명을 걸고 우주적인 어둠의 세력과 싸울 수 있는 영적 안목, 통찰력이 육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흐릿하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숫자나 크기로 생각하면 참으로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 영적 암흑의 시대에도 예수님처럼 자기를 나누며 비우며 섬기는 작은 사람들이 있다. 보잘 것 없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바치는 자들이 있다. 가루 서 말을 부풀리고자 자기를 내려놓는 누룩들이 있다.

그들은 교권이나 신학, 예언과 정의를 모르지만, 자신을 제물 삼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바보처럼 이용당하는 자 같으나 그들은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자들이다. 오랫동안 선교지에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전 재산인 옥합을 아낌없이 깨트리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이어질 글은 크리스천으로서 물질이 신(神)이 된 사회에서 크리스천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가르쳐 준 모든 분들에 대한 헌사(獻詞)이다. 스스로 가난하고 불행한 이웃의 식탁에서 종 되고, 밥 되는 삶, 땅에서 하늘과 통하는 기적의 삶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이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