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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하는 예언신앙의 돌진(사 53:1-12)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8.30 03:17
▲ Jesus reads from the prophet Isaiah in the synagogue at Nazareth ⓒLUMO project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 이사야서 53:11-12

1.

이사야서 53장은 종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이사야서에 종의 노래가 네 군데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나의 종을 보아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4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는 말씀 기억하시죠? 42장 1-4절입니다.

두 번째는 49장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께서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49장 1-6절입니다. 세 번째는 50장 4-9절입니다. 원수들의 공격에도 참으시는 순종을 말합니다. ‘채찍질을 하고, 수염을 뽑고, 침을 뱉고 모욕을 해도 다 이겨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53장이 마지막 종의 노래입니다. 정확하게는 52장 13절에서 53장 12절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모욕을 받고 멸시와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우리의 죄로 인해서 모든 징벌을 대신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해졌습니다. 앞으로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내주실 텐데, 그 메시아가 이렇게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가 이런 일을 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떠올리며 그 구원에 감사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살아가신 삶의 모습을 보면 이사야의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분명합니다.

2.

오늘은 예수님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예수님이냐면, 과연 예언대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이사야서를 읽는 평범한 청년 예수입니다.

몇 주 전에 예언에 대해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나요?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삶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나눴었죠. 시편 36편의 말씀처럼, ‘주님의 빛을 받아서 환히 열리는 미래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년 예수는 과연 어떤 심정으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읽었을까요?

평범한 다른 유대인들처럼, ‘그래, 하나님께서 분명히 메시아를 보내주실 거야. 그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거야. 정치적으로도 구원하시고, 영적으로도 구원하시고,’ 그러셨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자기가 메시아임을 아시고, ‘그래, 내가 앞으로 할 일을 잘 적어 놨구나.’ 하면서 흐뭇하게 읽으셨을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우면, 우선 우리 마음부터 한번 살펴봅시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과 똑같은 마을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희망도 없는 삶을 그저 꾸역꾸역 살아가는 중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요? 어떤 심정으로 그 예언을 읽고 있을까요?

저는 아마도, 하나님의 메시아가 올 것을 확신하면서 간절하게 기다렸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에이 메시아는 안 와’ 하면서 포기할 때도 끝까지 믿으면서, 그러면서 내 신앙이 투철하고 훌륭하다고 조금 자랑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 될까요? 그것으로 된 걸까요?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그 모습이었을까?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신앙의 모습이 그것이 최선일까? 하는 말입니다. 그런 모습의 신앙인들은 넘쳐났습니다. 간절히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을 계속 읽어갑니다. 61장에 다다릅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셨다.” 수도 없이 읽었던 말씀일 것입니다. 주님의 종, 고난 당하는 종, 메시아가 하는 말로 생각하면서 읽었을 것입니다. ‘그래, 주님께서 메시아에게 주님의 종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마침내 메시아가 결심하고 결단하고 우리에게 오시는구나’ 하고 부푼 마음으로 읽었을 것입니다. 

계속 읽어갑니다. 그러다가 65장에 이릅니다. 함께 찾아 읽어봅시다. 이사야 65장 1절입니다.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내가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아멘. 

기도했는데,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는데, 모두가 전심전력으로 기도했는데 이게 뭡니까? 하나님 말씀이, 백성이 기도하지 않았답니다. 간절히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기다렸는데, 하나님 말씀은 백성이 요청하지 않았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어리둥절하고 있던 그때, 머릿속을 뚫고 지나가는 말씀, 조금 전에 읽었던 그 말씀, 61장의 말씀이 예수님의 머릿속을 뚫고 지나갑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나를 보내셨다.’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었는데, 주님의 영을 받은 그 사람을 메시아, 주님의 종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종이 바로 나라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주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구나, 나에게 주님의 영이 내렸구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구나’ 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저 ‘주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오겠거니’ 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기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통찰을 통해 무너집니다.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구나, 기다리기만 하면, 그저 기다리는 백성밖에 안 되는구나, ‘나 여기 있다. 내가 영을 부어준다’ 하고 계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구나, 나가서 그 영을 받고 기름 부음 받아야 하는구나. 누가? 내가!’ 바로 그때 예수님은 주님의 종으로 새롭게 태어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메시아가 되는 순간입니다. 

3.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주님의 구원의 날을 선포하는 예수님에게, 하늘나라가 드디어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예수님에게, ‘당신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는 사람들에게 내놓는 대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뭐냐고? 내가 누구냐고? 이사야의 예언을 봐라.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렸다. 그가 바로 나다.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셨다. 그가 바로 나다.

주님께서 이 땅에 보내셨다. 그가 바로 나다. 너희들은 그저 예언을 기다리기만 하고, 이루어지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기만 했지? 나는 그 말씀에 응답하고 그 말씀을 내 삶으로 이루겠다고 결심하고 결단하고 주님의 손을 잡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오히려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떨쳐 일어났다. 그게 나다. 그래서 오늘 비로소 나를 통해 말씀이 이루어졌다.”

예언은 ‘이루어지겠지’ 하고 그저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예언은, 특별히 하나님의 예언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똑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을 통해서, 만들어져가는 겁니다.

마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 한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하루는 두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오늘 포도원에 할 일이 있는데 가서 그 일 좀 해라.” 그랬더니 두 아들의 대답이 전혀 다릅니다. 큰 아들은 싫다고 말하고서는 나중에 가서 그 일을 합니다. 작은 아들은 ‘예, 알겠습니다’ 하고 철석같이 말하고는 안 갑니다.

기억나시나요? 두 아들 중에 누가 옳습니까? 누구 하나 완전히 잘 한 사람은 없죠? 큰아들은 일은 했지만, 싫다고 거절하고 거역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순종하고 대답도 잘 했지만, 결국에는 안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아들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아들이 차라리 낫습니까? 대답도 순종하면서 잘하고, 대답한 대로 일도 잘 하고 그랬으면 좋겠지요? 그건 헛된 꿈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누가 옳으냐? 누가 그 중에 나은가?’를 생각하는데요. 예수님의 질문은 전혀 다릅니다. 한 번 찾아볼까요? 오늘 많이 찾네요. 마태복음 21장 31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누가 옳으냐? 개 중 누가 착하냐?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그게 아닙니다. 누가 착하면 뭐하고 나쁘면 뭐 합니까? 아무리 착해 봐야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고, 아무리 악한들 하나님이 다 용서하시는데요.

“누가 했느냐!” 하나님의 뜻은 ‘그대로 하느냐? 안 하느냐?’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느냐?”

예수님의 관심사는 하는 겁니다. 행동, 실천! 기다리고 고대하고 소망하고, 다 좋습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꿈으로만 남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예언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면서, 예언으로만 소망으로만 담아두지 않고, 자기 자신의 신앙의 목표로 삼고, 그 말씀을 자기 삶으로 이루기 위해 돌진한 겁니다.

신앙의 돌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믿고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그 길로 돌진한 겁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사53:10b).” 이 말씀의 ‘그’가 되기 위해 돌진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메시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직접 행했기 때문에 아들이신 겁니다. 

4.

우리는 누굽니까?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정말 딸입니까? 정말로 아들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디로 돌진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처럼 십자가로 돌진하는 그런 엄청난 돌진까지 바라지 않습니다. 소소한 돌진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써 굳건하게 지켜가는, 내 삶의 포기할 수 없는 돌진, 그 신앙의 돌진이 있냐? 하는 겁니다.

없다면, 없었다면, 그 돌진의 방향을 이제라도 찾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찾아주지 않습니다. 내가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 혼자만 찾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서 함께 하십니다. 내가 돌진해 나가야 할 신앙의 길을 주님과 함께 고민하며 찾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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