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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겨내는 창조섭리‘생명의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새 인간 창조(창 1:1-5 행 9:1-9 마 5:1-12)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9.01 23:46

세 가지 교회력: 개정공동성서정과(RCL, 통상축제력), 삼위일체 교회력, CCL

오늘은 교회력 절기로 창조절 첫째주일입니다. 맑은 가을하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묵상하며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삼위일체 교회력은 창조절기부터 한해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성부 하나님의 절기인 창조절기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절기인 대림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보혜사 성령님의 절기인 성령강림절로 한해가 끝이 납니다. 

우리 양력 달력으로는 8월 말에 성령강림절기가 끝이 나고 9월 첫째 주부터 창조절기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교회 한해 예결산 정리나 한해 마감과 다릅니다. 세상 주기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력 가운데 개정공동성서정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 RCL)(1), 곧 통상축제력의 ‘주일성서일과’는 대림절로 시작되어 성령강림절로 한 해가 끝이 납니다. 물론 창조절기가 없습니다. 창조절기를 성령강림절기로 대신합니다. 

따라서 RCL은 11월 말, 혹은 12월 첫 주인 대림절로 교회력이 시작되기 때문에 세상 주기와 맞아떨어집니다. 우리가 새벽 기도회 때 읽는 세 본문 말씀이 RCL의 ‘매일성서일과’입니다. RCL은 이렇게 주중 말씀인 ‘매일성서일과’와 주일 말씀인 ‘주일성서일과’로 구성이 되어 1년 365일 매일 세 본문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렇게 교회력은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으로 RCL과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삼위일체교회력(2)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신교회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가톨릭 교회는 로마 물론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은 삼위일체교회력을 사용하죠? 우리 교회는 지난 3년 동안 삼위일체교회력으로 주일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저의 설교집 3권(『성경, 시대와 문화를 읽다』, 『After 코로나? With 성령!』, 『‘짤’없는 하나님 사랑, ‘짤’있는 이웃 사랑』)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최근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등을 생각해볼 때 창조절기가 없는 삼위일체교회력이 좀 더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교회력은 ‘매일성서일과’가 없습니다. 이번 교단 총회에 저는 부산노회를 경유하여 삼위일체교회력 ‘매일성서일과’를 만드는 헌의안을 올렸는데, 1년 365일 3년 치, 매일 세 본문을 구성하여 절기별로 만드는 방대한 작업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10년이 걸리더라도 만들게 되면 세계 교회는 물론, 교회사 전체에서 엄청난 사건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병학 목사의 공동성서정과(CCL, Choi’s Common Lectionary)

잘 아시다시피, 지난 2021년 9월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중 하나님께서 저에게 교회력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각 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 동안 전체 신구약 성서를 다 살펴볼 수 있는 교회력을 만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최병학 목사의 공동성서정과(CCL, Choi’s Common Lectionary)입니다. CCL도 절기는 삼위일체 교회력 절기를 따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교회력은 RCL을 개혁하며 나온 것이고, 삼위일체교회력에 있는 창조절기는 오늘날과 같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CCL은 삼위일체교회력과 RCL의 장점을 취합한 교회력이기에(창조절과 기독론 중심) 네 복음서가 중심이 되는 교회력입니다. 첫해인 ‘가’해는 마태복음 중심 ‘생명의 하나님’이 주제가 되는 해입니다. ‘나’해는 마가복음 중심 ‘평화의 예수님’, ‘다’해는 누가복음 중심 ‘정의의 성령님’, 마지막 ‘라’해는 ‘사랑의 교회 공동체’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라는 주제로 세 본문 말씀이 구성됩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를 위해 조금 더 CCL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① 삼위일체교회력을 중심으로 편성하였습니다. 삼위일체교회력은 ‘창조절-대림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성령강림절’ 등 7절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② 4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으로 편성합니다. 가해는 마태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으로, 나해는 마가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평화의 성령님’으로, 다해는 누가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정의의 예수님’으로, 라해는 요한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사랑의 교회 공동체’로 잡았습니다. 

③ 복음서, 구약, 사도행전~요한계시록 세 본문의 주제를 말씀 별로 넣어두었습니다. 목회자에게는 설교를 준비할 때 혹은 성도님들에게는 예배 참석 전 본문 말씀의 전체 주제를 파악할 때 좋습니다. 

④ 설교자는 설교할 때 먼저 각 세 본문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핵심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성경 본문을 모두 사용하여 설교문을 작성합니다. 설교는 본문 말씀 선포가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본문들의 의미와 본문들 사이의 연결 지점을 잘 파악하여 설명하면 설교는 ‘말씀 중심 설교’가 됩니다.

⑤ 설교자는 처음에는 한 본문으로 설교를 하고(3×4=12년)(3), 이후 세 본문을 연결하여 세 본문 설교를 하면(4년), 16년 설교 본문이 준비됩니다. 이제 목회를 시작하는 목사님들께 꼭 권면하는 교회력입니다. 이렇게 CCL로 설교를 하고 이후 삼위일체교회력, 그리고 RCL로 넘어가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RCL의 경우 세 본문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세 본문 설교를 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때는 두 본분으로 해도 됩니다. 이렇게 하면 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22년 치가 준비됩니다. 목회자들은 꼭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CCL은 물론, 다른 교회력도 성도님들이 교회력 절기 동안(4년 혹은 3년) 성경 전체를 교회력 절기를 따라 읽을 기회가 됩니다. 

이렇게 목회자들은 신구약 균형 잡힌 성경 본문으로 ‘교리 설교, 주제설교(이것은 삼일예배나 특별예배 때 하시고)’가 아닌 정말 말씀 중심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님들은 세 본문의 주제가 교회력 전체 주제와 또한 절기의 의미와 함께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고, 예배에 참여하면, 정말 말씀 그 자체를 통해서도 큰 은혜를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한국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천지 창조, 혼돈을 평정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오늘 창조절 첫째주일 말씀은 ‘창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천지 창조 말씀이고, 서신서 말씀은 새 인간 창조의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했던 사울을 예수를 증거 하는 사도 바울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는 천지 만물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재창조에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복음서 말씀은 이렇게 새롭게 창조된 백성의 조건을 예수님께서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산상수훈의 팔복 말씀입니다.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 창세기 1장의 첫 번째 창조 이야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성경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곧 창세기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신앙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현재까지 과학의 결과로 우주의 역사는 138억 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우주의 역사를 만약 365일 1년 달력에 옮겨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1월 1일 0시에 빅뱅이 일어나고 5월 1일에 은하계가 생성됩니다. 태양계가 형성된 것은 9월 9일입니다. 지구는 9월 14일에 탄생하고 지구상에 공룡이 등장한 것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입니다. 조류는 12월 27일 등장하고 12월 29일 공룡이 멸종합니다. 

나머지 지구 역사의 모든 일은 달력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일어납니다. 최초의 인간이 나타난 것은 12월 31일 13시 반 이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가 출현하고, 농업이 시작된 것은 22시 반입니다. 서양의 문예 부흥, 곧 르네상스는 23시 59분 58초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산업혁명이건, 세계 양차 대전이건, 최초의 달착륙, 코로나 팬데믹 사건 등 모든 일은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 이후에 일어나며 우리는 현재 그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후 미래, 아니 100년 후의 미래도 모두 달력의 마지막 날 마지막 1초 안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창세기는 정월 초하루의 고백인가요? 한국 교회 교인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경을 축자적(逐字的, 어떤 글의 글귀를 그대로 따라서 본래의 뜻에 충실하게 풀이하거나 번역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창조를 목격하고, 그 사실을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창세기 말씀은 이 말씀이 기록된 때의 신앙고백이며 그 당시 인간이 파악할 수 있었던 가장 과학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어렵게 들리겠지만, 창세기 본문 말씀을 통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조금 주의를 기울여 창세기 말씀을 보면 창조 이야기가 두 가지로 나옵니다. 이것을 표로 그려볼까요?

▲ 김경호, 『오경: 야훼 신앙의 맥』(대장간, 2017), 25, 42쪽 참조.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의 세상을 물이 가득 차 있는 공간으로 묘사하고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인간에게 마른 땅을 내어 주시기 위해 물을 제거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창조 전의 세상을 물 한 방울 없이 바짝 메마른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물을 솟구치게 해서 온 땅을 적십니다. 이 물은 에덴동산 중앙에서 솟아 나와 강을 이루며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 창세기 2장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 동산 중앙의 물이 땅을 기름지게 한다.

앞서 창세기는, 말씀이 기록된 때의 신앙고백이며 그 당시 인간이 파악할 수 있었던 가장 과학적인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럼 가만히 살펴보면 첫 번째 창조 이야기가 조금 더 과학적입니다. 이것은 조금 더 후대, 혹은 문화나 과학이 발달한 문명 때 기록되었다는 말이죠? 대부분의 구약 신학자들은 이 두 창조 이야기의 배경을 바벨론 포로기(B.C. 587-538)와 다윗 왕조 때(B.C. 1,000-921)로 봅니다. 400년 정도의 시차가 있습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던 바벨론 강가입니다. 여기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만나는 하류의 범람 지역입니다. 홍수가 나면 그동안 피땀 흘려 가꿔 온 삶의 터전이 온통 물바다가 됩니다. 지난번 강남 지역 폭우가 그렇죠? 물이 넘치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시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인간에게 마른 땅을 내어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창조의 순서나 종류 등이 두 번째 창조 이야기보다 세련됩니다.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또 당대 최고의 문명인 바벨론의 문명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조금 더 단순하고, 동화적입니다. 다윗 왕조 때 수집된 이야기로, 메마른 가나안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가나안 땅은 메마른 땅입니다. 물이 귀하죠? 따라서 샘과 오아시스는 소중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에 샘이 솟게 하고 사방으로 강이 흐르게 하시어 인간이 편히 살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철저히 인간을 그가 처한 상황, 곧 환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경호 목사는 『오경: 야훼 신앙의 맥』에서 환경을 배제한 인간의 구원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전통적인 서구 신학은 구원을 신과 인간이라는 양자의 관계 속에서 규정했다. 세상의 시작을 다루는 창세기 창조 이야기에서도 ‘하나님의 명령과 그것을 어기는 인간’, 즉 죄의 기원에 대해 주목했다. 그러나 세상을 고려하지 않은 구원이란 반쪽짜리 구원이다. 그를 둘러싼 관계와 그 관계의 확장인 사회, 그리고 환경을 삭제한 채 인간을 온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략) 구원은 이렇듯, 신-인간-환경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환경으로서의 자연은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정치·경제적인 요소, 역사 등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규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인간에게 펼치는 구원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구원은 추상적이기보다 구체적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따라서 이런 요소를 배제한 구원이란, 단지 인간의 내면과 심리적 영역에서만 영향력을 미치는 구원이란 온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 사도행전 말씀은 이렇게 재창조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단순히 인간의 내면과 심리적 영역에서 실존적으로만 변한 것이 아니라, 삶의 환경 전체가 변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창조 이야기는 자연의 무자비한 파괴 앞에서, 또한 인간 삶의 전반적인 사회문화 환경 속에서 혼돈을 제거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절망 가운데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킵니다. 나아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모든 위협에 맞서 싸워나가도록 요구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창조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나오는 팔복에 나오는 이들이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볼까요?

새 인간 창조, ‘사울’에서 ‘바울’로!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행 9:1-2)

새롭게 창조되기 전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울이 그렇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바울은 유대교 신앙의 측면에서 열심히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측면에서는 박해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제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창조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 하고 서 있더라.” (행 9:3-7)

 

▲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새롭게 창조된 사울(바울), Nicolas Bernard Lepicie, 「Conversion of St. Paul」 (1767) ⓒWikimediaCommons

예수님께서 사울을 만나십니다. 이제 혼돈과 어둠 가운데 있던 사울이 때를 기다립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행 9:8-9).” 사흘 동안 죽은 사람처럼 새롭게 되는 시간을 가진 사울은 이제 성령이 충만한 사람 아나니아를 만나 안수를 받고(행 9:17) 성령 충만한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납니다. 새 인간의 창조인 것입니다. 

사울(히브리어 이름, ‘묻다’라는 ‘שָׁאַל​’에서 유래)에서 바울(파울로스라는 그리스어 이름, ‘멈추다, 포기하다’라는 ‘παύω’와 연관이 있음)로 바뀐 것입니다. ‘질문했던 사람(사울)’이 이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질문을 그치고 행동을 했다(바울)’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제 ‘배타적인 유대교 수호자’에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화되었다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 사울이 아닌, 바울!, 곧 질문을 그치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다른 말로 새로운 인간의 모습은 어떨까요? 오늘 복음서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새 인간의 여덟 가지 복!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1-10)

그렇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진정 새롭게 창조된 새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이러한 길을 걸었습니다.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창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하늘에서 큰 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도 신앙의 선배들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 때부터 그랬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개척선교주일인데, 이렇게 창조 신앙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한가위감사주일이자 재일동포선교주일이기도 한데, 우리의 가정과 이웃, 나아가 지구촌 모두가 창조 신앙으로 새롭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1) 성서정과(lectionary)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의 설교를 위해 계획된 성경 본문들의 모음집입니다. 성서정과가 교회에서 사용된 것은 초대교회인 4세기경부터입니다. 당시 주요 교회들은 교회력을 따르는 시간표에 의해서 성경 본문을 준비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성서정과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비잔틴 성서정과(Byzantine Lectionary), 예루살렘 성서정과(Jerusalem Lectionary), 에뎃사 성서정과(the Lectionary of Edessa), 로마 성서정과(The Lectionary of Rome), 보비오 미사경본(The Bobio Missal), 룩쉘의 성서정과(The Lectionary of Luxeuil), 그리고 톨레도의 성서정과(Lectionary of Toledo) 등이 7세기 이후로 11세기까지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는 루터교회나 성공회와는 달리 대체적으로 성서정과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개혁교회는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lectio continua)으로 설교를 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강해설교죠? 현대에 이르러서는 1940년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예식서 안에 성서정과를 만들어 넣은 것이 획지적입니다. 이것은 후에 여러 개신교회들이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받아들이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성서정과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로마가톨릭교회가 1969년에 로마교회의 성구집(Roman Lectionary for Mass, Ordo Lectionum Missae)을 발행한 것입니다. 이 성구집이 발행된 이후 여러 교단이 자신들의 성구집 성서정과 을 고치고 개정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서 장로교회를 비롯한 비예전적 교회들이 성서정과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선 미국의 남북 장로교회가 예식(1970년)를 공동으로 내면서 가톨릭 성서정과를 대폭 수정하여 수용하게 되었고 이어서 미국의 성공회(Episcopal Church)가 마찬가지로 가톨릭교회의 성서정과를 약간 수정하여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1973년). 1973년에는 루터교회가, 1974년에는 제자교회(Disciples of Christ)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가 장로교회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정하여 성서정과를 채택하였고 감리교회가 1976년에 같은 골격의 성서정과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1970년대에는 개신교 내에서 많은 성서정과가 발간 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다양한 성서정과로 인한 교회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에큐메니칼적 관점에서 여러 교회와 교단은 1972년년 “교회일치를 위한 협의회(COCU, Consultation on Church Union)”를 조직하였고 그 산하에 “공동본문 위원회(CCT-Consultation on Common Texts)”를 두어 모든 교단들이 수용할 수 있는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만들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공동본문 위원회는 1978년부터 5년간에 걸친 연구 끝에 1983년 “공동성서정과(Common Lectionary)”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9년이라는 실험의 기간을 거친 후 1992년에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정 공동성서정과(RCL, The Revised Common Lectionary)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RCL은 전 세계의 다양한 교단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김경진, 「개정공동성서정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의 한국적 적용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연구」, 『長神論壇』 참조.
(2)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교단이 채택하고 있는 삼위일체 교회력은 고대 비잔틴교회의 전통을 살려 사도신조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삼위일체 구조를 따라 형성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960년대)와 캐나다 연합교회(1969년)를 거쳐 기장 교단이 1978년 총회에서 교단 새 역사 25주년을 기념하며 채택하여 수용한 것입니다. 세계교회의 JPIC(정의Justice, 평화Peace, 창조질서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의 약자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적 입장에서 창조절기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삼위일체 신앙고백을 따라서 전체 교회력 구조를 성부의 계절, 성자의 계절, 성령의 계절로 균형을 맞추어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위일체론적 교회력은 훨씬 더 성서적인 구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분열과 민족의 분단의 아픔을 극심하게 겪고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나 민족의 연합과 일치와 하나 됨이 절실한 한국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 삼위일체론적 신론과 교회론의 강조는 그 어떤 교회력보다 요긴하고 개혁적인 교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셨지만, 그러나 본질상 그는 언제나 서로 하나 되어 협력과 일치의 모습으로 이 세상 역사를 이끌어 주시고 있고, 세상과 인간의 구원도 더불어 견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삼위일체론적 설교의 회복이야말로, 강단의 편식과 인본주의적 설교의 함정을 극복할 확실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말씀목회연구원(http://www.wpci.kr/) 세본문 설교 소개 참조.
(3) 세 본문을 한 본문 설교로 하면 12년이 됩니다. 이때 신구약을 번갈아 가면서 본문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내용의 핵심을 제목으로 달아 놓았으니, 설교 준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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