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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여정긴급구호와 사랑의 쌀로 행복하다 ⑵
이이소 | 승인 2022.09.02 22:30
▲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나가빠티남 ⓒEPA

한국에서 살았으면 긴급구호에 동원되거나 구호를 위해서 모금하며 동부서주 할 일이 없이 평탄하고 편안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소명감으로 고향과 조국을 등지게 됨으로서 나의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과의 계속된 조우와 긴급구호 행진, 고단하며 피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살이가 시작되었다. 

2004년 12월 26일에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쓰나미가 스리랑카에 가까운 남인도의 벵갈만과 인도양의 해변을 강타하여 쑥대밭을 만들었다. 나는 당시 해변도로를 따라 마말라뿌람과 폰디체리와 카달로르를 지나 인구 150만 여명이 사는 나가빠티남이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하였다.

그 지역 목회자의 말에 의하면 예배를 드리기 막 시작하였는데 건물이 흔들리며 산더미 같은 파도가 순식간에 들이닥쳐서 성지 순례 차 바닷가에 모여 있던 순례자들과 지역 주민 15만 명 정도가 파도에 휩쓸려 그날 아침 쓰나미로 죽었다.

나는 그곳에서 쓰나미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갓 수용되어 있는 남인도교단 소속의 고아원 두 곳을 방문하였다. 300여 명 정도의 아이들이 남녀로 나뉘어 수용되어 있었는데 너무 큰 충격으로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고 얼굴이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먹는 것과 노는 것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잠자고 외출 나가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려하고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고아원에서 나와 씽가라토프 어촌에 가는 도로 위에 수천 톤 급의 배가 내륙으로 몰려 들어와 길에 좌초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쓰나미가 해변에 정박하고 있는 배를 육지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고아원과 씽가라토프라는 어촌 마을을 긴급구호하기로 하였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아들 300여 명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씽가라토프 어부들만 구호하기로 하였다.

씽가라토프 마을은 전체가 물에 잠겨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세계 적십자사와 다국적기업들이 지어준 쉘터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그들은 옷가지와 일체의 살림도구가 수장되었기 때문에 밥을 지을 수가 없기도 하였지만, 밥을 짓는 것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눈만 뜨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앉아서 멍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파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밥을 지어서 제공하였고 두어 달이 지난 후에는 이재민들 스스로 밥을 짓도록 주방도구와 식자재를 공급하였으나 그들은 밥 짓는 것을 잘 까먹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배고픔도 잊어버리고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 하루일과의 다였는데 그들이 의욕을 가지고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쓰나미 이재민들의 자활을 위하여 기장총회가 보내준 후원금으로 모터가 달린 배 4척을 기증하는 것으로 긴급구호를 마쳤다. 6번째 계급에 속하는 마을 주민 모두가 공동 선주가 되어 ‘무지개 어업조합’을 만들어 새로이 고기잡이를 시작하는 데 1년 반이 넘는 긴 세월이 걸렸다.

처음 나가빠티남의 고아, 반(半)고아들을 만났을 때 이 아이들을 어찌 먹일 것인가를 고민하였으나 여러 교우님들의 따스한 마음이 답지해서 큰 어려움 없이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그리 알려진 선교사도 아니고 새 선교단체의 창립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그 단체의 선교사로 재파송 되어 나왔지만, 선교회가 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아들을 돌보는 분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후원금이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였으며 비로소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겨자씨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미얀마와 인도 미조람 국경 사이에 있는 친주의 서북부지역에서 메뚜기와 쥐로 인하여 시작된 대기근이 일어났다. 갑자기 너무 많이 불어난 메뚜기와 쥐가 벼와 보리, 옥수수 등 모든 곡물을 깡그리 먹어 없애는 일이 발생하여 산악지대 사람들이 불시에 기근에 직면하였으나 미얀마 정부는 뉴스가 세상에 알려질까 봐 원천 차단하고 구호의 손길을 전혀 펼치지 않았다.

▲ 2020년 5월 25일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 주의 자이푸르시를 뒤덮은 메뚜기떼 ⓒ신화통신=연합뉴스

당시 나는 구루꿀신학교 옆에 살고 있었는데 그 신학교에 미얀마 학생 두 명이 재학 중이었다. 그들과 가끔 만나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이 자기 고향의 재난소식을 전하며 긴급구호를 요청하였다. 당시 성탄절을 앞두고 있어서 딱 한 번만 하기로 하고 구호비로 쌀 백 가마 정도를 전달하였다. 그들은 방학 기간에 고향으로 돌아가 구호활동을 벌였으며, 가장 큰 곤란에 직면한 임산부와 수유부 그리고 아동들을 위하여 한 번 더 해주기를 요청하였다.

성탄 기념으로 딱 한 번만 하려고 하였던 나는 그들에게 끌려서 2010년 초까지 근 3년 동안 긴급구호에 참여하며 인도에 있으면서 미얀마 형제들과 양식을 나누기 위하여 사랑의 쌀 모금을 위해 헐레벌떡 거려야 하였다. 마음이 약해서 거부를 못 하는 나는 부활절, 여름방학, 성탄절과 겨울방학에 마라족 긴급구호를 위하는 특별경비 마련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비지정 후원금들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비지정 후원금이 들어오면 흔한 잡초이며 지렁이 같은 마라족을 위하는 하나님의 아픔과 사랑을 느끼며 전율하였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기 위하여 당시 비전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인도에 와있던 한국 청년들이 쌀 나눔을 위하여 남인도 첸나이에서 동북인도 미조람 국경까지 멀고 험한 여행을 하였다. 특별히 한 청년은 사명감을 가지고 미얀마 가이드를 따라서 무모하게 인도 국경을 넘어 기근 현장에 들어가서 구호활동에 참여하며 사진을 촬영을 하였다. 후에 그는 그것으로 사진집을 발행하고 모금을 하여 구호비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지금도 나는 그의 진정한 용기를 추모하며 감격한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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