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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위한 신앙하나님의 뜻을 잇는 교회(마 18:1-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9.04 21:32
▲ Fritz von Uhde,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 (1884) ⓒWikimediaCommons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창조절 첫 주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이 질문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제자들의 의도를 생각하면 이 질문은 아주 세속적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었던 세상과 마찬가지로 하늘 나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나뉘어 질 것이라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이 질문의 의도가 세속적인 이유는 마태복음 20장에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를 대동해서 예수님에게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머지 열 제자들이 분개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주님이 보여주신 삶과 이야기를 듣고도 어떻게 그런 잘못된 요구를 할 수 있어?”의 분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네가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느냐?”의 분개였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제자들 스스로가 세속적인 질문을 던졌기에, 세속적인 대답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어땠습니까? 제자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 자기 자신의 욕망에 있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의 질문은 결국 내가 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 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보잘 것 없는 출신인 제자들로서는, 로마가 통치하고 있는 세상, 또 이미 뿌리 깊이 고착화 되어 있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높은 위치 또는 위대한 사람이 되기에는 작은 희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지고 오실 새로운 세상에서는 한 자리 차지할 수도 있겠다는 욕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서 있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습니다. 어떤 해석들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멱살을 잡으며 대들었다고도 합니다. 그 정도로 격렬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반응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이 일화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직후의 일입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뒤, 자신이 생각해 놓은 비전과 다른 이야기를 제시한 예수님에게 반기를 들며 대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제자들의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여전히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깊이는 하나님과 분리된 ‘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신들의 그릇된 욕망에 관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나 또는 욕망에 초점이 더 맞추어져 있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틀렸다고 말하며 대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나’에 초점을 맞추어 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을 좇게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27:1-2의 본문을 보면, ‘다윗이 혼자 생각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7:1-2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온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넘어갔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늘 하나님께 묻고 결정을 내렸던 믿음 좋은 다윗이 혼자 생각했습니다. 혼자 생각한 끝의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아닌 타국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을 쭉 읽어온 성도는 다윗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망명하고자 한 다윗의 선택은 세속적으로 보기에는 좋은 선택입니다. 사울과 자주 마주치며 위험을 초래하는 것보다는 사울과 마주 칠만 한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망명한 이후에 다윗은 자신의 동족을 죽여야만 하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생각한 결과였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일지라도 초점이 하나님에게서 하나님과 분리된 나에게로 몰리면, 그 선택은 잘못된 선택일 뿐입니다.

이렇게 관심이 ‘자기 자신’에 집중해 있는 제자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제자들이 관심사와 방향을 재조정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마태복음 18:2-5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 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예수님이 누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셨는지에 대한 점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를 보면 어린아이,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이 작은 사람들, 길을 잃은 양을 예수님은 주목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을 위한 성을 쌓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이 작은 사람들을 주목하는 것, 이 작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이 작은 사람들을 섬기는 것, 이 작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과 같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을 따르라며, 하나님을 위한 성 쌓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분리된 채 나의 뜻과 욕망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목사, 성도,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어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나를 위한, 나의 욕망을 위한 성을 쌓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어 감으로, 우리의 시선, 삶의 방향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믿음의 길로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제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있는 힘을 다해 찾고 또 그 뜻에 순종하려고 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 세우신 교회가, 모든 성도님과 함께 세상에 본이 되는 교회,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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