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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일이 삶의 의미입니다긴급구호와 사랑의 쌀로 행복하다 ⑶
이이소 | 승인 2022.09.09 17:34
▲ 2009년 인도 해안가 전역에서 침수로 인한 큰 피해를 입었다. 사진속 장소는 Odisha의 Manikhamb

2009년에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안드라푸라데시주에 집중 폭우가 내렸고 쿤드강과 퉁가바드라강이 범람하고 63,000에이커의 논밭이 침수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는데 그 중에 라열라씨마 지역의 피해가 가장 컸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마을들이 물에 갇혀서 고립되고 사람들이 식사를 하지 못하여 부황 들고, 뱀에 물려서 죽고, 수인성 질병으로 죽어가는 노인들이 많다고 하였다.

비숍으로부터 온 긴급구호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읽고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당시 미국의 경제대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돈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져서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가령 1만원이 와야 하는데 돈 가치가 없어져서 6천 원 정도 밖에 돈이 오지 않은 꼴이 되어 많은 건축과 나눔에 제동이 걸리고 있었다.

한국 쪽에서는 다 보냈지만, 인도 쪽에서는 절반 정도 만 받는 그런 상황이 되어서 불편한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나는 한국과 인도 사이에서 이쪽에게 저쪽을 설명하고 저쪽에게 이쪽을 설명하는 일로 고달팠다. 그런 상황에서 홍수 긴급구호는 나에게 너무 벅찼다.

그러나 선교사는 생명을 살리는 일,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든 판이니 마지막으로 나누고 ‘잘 있어요. 인도!’ 라고 고별인사를 하자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500만 원 정도로 대충 300가정을 구호할 수 있는 쌀과 기름, 달과 담요로 대용할 수 있는 숄과 셔츠를 준비해서 현장으로 떠났다. 떠날 때 나의 생각은 그 만큼만 구호하고 돌아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에 갇혀서 굶주린 사람들, 홍수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서 그냥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여권을 맡기고 쌀과 담요, 수건과 부식 등을 사기로 하였는데 현지 목회자가 보증을 서서 딜러와 협상을 하여 쌀과 담요 등을 여권을 맡기지 않고 구입할 수가 있었다. 곡물상 딜러가 외국인이 불행을 당한 자기 나라 국민을 구호하려 왔는데 외상은 왜 못 주겠느냐며 아무 것도 담보 잡히지 않고 물건을 대주어서 예정에 없던 긴급구호를 사흘이나 더 연장하였다. 

1차 구호를 마치고 첸나이로 돌아와서 한국에 홍수 사연과 구호소식을 전하였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교우들과 교회들이 뜨겁게 반응하며 후원하였다. 그 덕분에 나는 홍수 긴급구호를 위해 여러 차례 현장 순회를 하여야 하였고 그 다음해 1월까지 하고야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계속하여 인도 현장과 함께 교류하며 교감하고 있다.

그 뒤로 2015년 네팔의 지진구호에 참여를 하였다.

▲ 2015년 네팔을 덮친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Wikipedia

네팔에는 첸나이에서 만난 네팔 신학생이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는 지진으로 무너진 교회를 회복하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긴급구호를 요청하였다. 당시 내가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사정이 아니어서 비전아시아를 통하여 두 명의 대표가 들어가서 교회복구와 거리 배식과 사랑의 쌀 나눔을 하였다.

지진의 뒤치다꺼리가 끝나자 고아를 거둔 네팔교회 제자가 고아들의 생활비를 후원해주길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얼결에 고아원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고 2021년 코로나가 만연하게 되자마자 다양한 구호를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2015년, 2021년 첸나이 홍수 긴급구호를 두 차례 각 각 2,3개월 씩 실시하였으며 2020년부터 21년까지 코로나 긴급구호를 인도와 네팔의 11곳에서 구호금 전달이 가능한 지역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네팔은 사랑의 쌀 구호와 의료 구호, 스트릿 피플의 거리 배식을 함께 하였다. 카트만두의 스트릿 피플의 거리 배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촌각을 다투며 피를 말리게 하였던 코로나 긴급구호가 끝나갈 무렵에 인도 국경으로 피난 나온 미얀마 친족들의 난민 긴급구호 요청을 받았다. 21년 성탄절 기념으로 딱 한번만 하려고 하였는데 사람들의 굶주림, 특별히 어린이들의 굶주림을 생각하면 슬프고 눈물이 나서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다 보니 어려운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운 사람들의 나눔으로 구호사역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5년 동안 조류독감구호, 쓰나미 구호, 기근 구호, 홍수 구호, 지진구호, 코로나 구호 그리고 피난민구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긴급구호를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돈이 있어서도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단지 고난당한 그리고 당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아픔 때문이다. 고난당해서 모든 것을 다 잃었는데 먹을 밥이 없고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서럽고 비참한 일인가!

생명이 먹지 못해서 죽는다는 것은 너무 슬프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아파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내가 나의 양식을, 나의 밥을 조금만 나누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함께 살 수 있는 이웃을 내가 나누지 못해서 그가, 그들이 죽었다면 나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편리와 미래 행복을 위해서 쌓아놓고 현재 그들을 외면한다면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십자가와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이다. 개개인의 성숙과 인류의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학의 발전과 사회복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께 많이 받은 자는 받은 것으로 자기 영광이나 자랑을 삼지 않고 많이 사랑하고 나누며 섬기라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각성한 교회 공동체와 은혜로 사는 교우들에게 고난당하는 자, 고아와 과부들,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장애우와 파산자들, 세리와 창기들을 위임하지 않았는가?
교회는 사랑을 위하여,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교우들 또한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새 일, 새 역사인 사랑을 위하여,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는가?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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