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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치의 창조, 남을 비판하지 않고 헤아리는 것!(출 2:1-10 롬 1:16-17 마 7:1-6)창조절 넷째주일(9월25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9.22 15:58

1. 새로운 가치의 창조, 먼저 사람들을 택하시다!

창조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조 개념은 ‘세상 만물 창조’, ‘인간 창조’ 등의 창조 개념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의 창조라는 것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새로운 가치의 창조입니다. 어떤 가치일까요?

먼저 구약 말씀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바로 레위 여인과 그 딸, 그리고 애굽 공주와 모세입니다. 애굽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시는데, 놀랍게도 원수인 애굽 공주의 손에서 안전하게 키워주십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애굽 탈출, 곧 출애굽이라는 노예해방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십니다. 

서신서에서는 사도 바울이, 이러한 새로운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는 이’,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표현으로는 ‘의인’이죠? 따라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그 의로운 자들, 곧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본질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남을 비판하지 않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공감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가치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재창조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출 2:1-4)

출애굽 사건의 시작입니다. 당시 애굽에 요셉을 모르는 왕이 나타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왜냐하면 애굽 땅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아지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대적과 합하여 애굽을 배반하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애굽 왕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해산할 때,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합니다(출 1:8-16 참조). 

이때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한 지파인 레위 지파 여인이 아들을 낳고,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죽이지 않고 숨겨서 키웁니다. 여기서 ‘잘생긴(ט֣וֹב)’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 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죠? “좋았더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았던 아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레위 여인은 백일 정도 된 아들을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냅니다. 아주 짧은 설명이지만, 상황은 굉장히 긴박합니다. 이렇게 낡은 가치는 ‘좋았던 세상’을 파괴하고 ‘좋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십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출 2:5-7)

▲ 나일강에서 건져 올린 모세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먼저 사람들을 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공주를 택하여 이 아기를 불쌍히 여겨 키우도록 합니다. 놀라운 것은 아기의 누이로 하여금 애굽 공주에게 말하여 아기의 엄마를 젖먹이는 유모로 불러 아기를 키우도록 합니다. 여인들을 택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출 2:8-10)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사람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들은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특히 애굽 공주의 공감과 배려, 사랑은 아기의 누이와 어머니 못지않습니다. 이 아기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냄’입니다.

태초에 천지 창조 당시,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깊음(תְה֑וֹם, 메소포타미아 창조 설화인, 그때 높은 곳에서라는 뜻의 에누마 엘리쉬에 등장하는 혼돈의 여신 ‘티아맛’과 발음이 비슷하여 ‘테홈’을 티아맛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위에 있을 때, 그것을 평정케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시기 위해,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로 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바다(혼돈과 공허)’에서 건져내십니다. 그 방법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믿음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2. 새로운 가치의 사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칭하여진다)’ 말씀이죠? 여기 나오는 ‘복음’, ‘하나님의 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의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잘 아는 말씀이긴 하지만, 또 정확하게 아는 교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박국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말씀을 찾아볼까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말씀의 맥락을 보면, 바벨론의 위세가 아무리 거만하게 날뛰어도 오직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살게 된다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불의한 악에 대한 심판이자,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승리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비록 현재의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실히 인내하며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새로운 가치입니다.

당시 애굽도 그렇고, 바벨론도 그렇고, 바울 당시 로마 제국도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닌, 힘으로 짓밟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약육강식입니다. 힘이 없으면 지배를 받고, 노예가 되거나 죽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관계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이러한 약육강식의 논리 아래, 그 존엄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새로운 가치, 약육강식이 아닌 시적 정의와 ‘시인-재판관’

▲ 마사 누스바움 교수와 『시적 정의』

미국 시카고대학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로스쿨 학생들과 법대생들에게 인문 고전을 가르치며 법대생, 의대생 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인문 고전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자신의 책 『시적 정의(Poetic Justice)』(궁리, 2013)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법률적으로는 아마추어이며, 법의 세계 바깥에서 이러한 제안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사문학에 대한 사유가 특히 법에, 더 넓게는 공적 추론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그 어떤 때보다 굳게 믿고 있다.” 

무슨 말인가요? 쉽게 말하면 변호사 우영우에게 필요한 것은 법전 암기가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서사문학, 곧 인문 고전이 법률가가 공적 추론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곧 공적 합리성은 문학적 상상력의 바탕에서 추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률가의 필수 자질은 공감력, 상상력 등 문학성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법대나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전만 외우지 말고, 인문학 서적을 함께 읽어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스바움 교수는 시카고대학 법학과 학생들과 함께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의 작품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 읽기가 사회정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읽기는 정의의 미래와 그 전망의 사회적 입법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누스바움 교수는 ‘시인-재판관’이란 말을 소개합니다.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위협받는 이들의 공정성을 수호하는 사람들을 ‘시인-재판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교조적이고 형식 논리적인 법 제도와 법학 교육을 받은 이들, 또한 경제적 합리성과 금전적 가치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 더불어, 사건 관련자들을 고유한 개별적 주체로 보지 않고 수학적 계산만 탁월하여 내로남불의 기소권을 남발하는 검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이들 부패 검사들은 자신들의 비리에는 검사동일체를 구현하여 기소하지 않고, 정적들과 검찰개혁을 외치는 이들을 갖은 수법으로 탄압하며 기소합니다. 따라서 누스바움 교수의 조언대로, 이 땅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시적 어휘를 사용할 줄 아는 감수성 있는 검사들, 혹은 재판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스바움 교수의 말입니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자신이 진리와 이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하는 특정한 과학적 접근 방식이다. 이에 대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들이 독단적으로 인간 존재와 인간 삶의 복잡함을 교조적으로 잘못 드러내는 한, 진리를 구현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것이 불충분한 인식과 조악한 심리학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한다면 이성을 구현하는 데도 실패할 것이라는 점이다. 소설은 이성을 무시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면서 진실한 능력으로 여겨지는 공상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이성을 활용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가치는 인문학을 하는 판검사들이,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인문학을 통해 소통하고 대화하고, 기소하거나 판결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인문 고전의 최고는 성경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정말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의 불의한 검찰이 사라질 것입니다. 결국 검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과 인문학 서적입니다. 의사들에게도 의학 서적만큼 문학 소설이 중요합니다. 물론 목사들에게도 성경만큼 중요한 것이 고전 인문학 서적이겠지요. 

이러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타자를 공감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그 가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우리는 또 그 예수님의 가치 판단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의인의 삶입니다. 의인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입니다. 그들은 당시 시대 정신인 약육강식과 다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가치관과 180도 다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아주 쉽게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4. 새로운 가치의 완성,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 도메니코 페티 「티와 들보의 우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1-5)
 
두 가지를 말씀하시죠? 먼저는 비판하지 말고 헤아리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먼저 잘 살피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해하고 소통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하죠? 그러나 이러한 참된 가치를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개나 돼지 같은 사람들, 곧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권력과 힘 때문에 참된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 정말 좋은 것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과 권력욕으로 다른 사람을 짓밟게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남을 비판하지 않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5. 빈대 네 마리의 소원

▲ 소, 새, 쥐와 소시지

재미있지만 깊이 생각해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빈대 네 마리가 살았습니다. 빈대는 자기 몸집이 너무 작은 게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빈대들에게 새해 소원을 각각 물어보셨습니다. 첫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뭐니?” “네, 저는 몸집이 작아 힘이 약해요. 그러니 힘이 센 소가 되고 싶어요.” “그래? 그럼 소가 되어라.” 그러자 빈대는 소원대로 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네, 저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어요.” “그럼 너는 새가 되렴.” 

세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네, 저는 배고픈 건 견딜 수 없어요. 그러니 굶지 않고 매일 음식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쥐가 되게 해주세요.” “그럼, 너는 쥐가 되어라.” 세 번째 빈대도 소원대로 쥐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네 번째 빈대는 살그머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다 받는다면야, 실컷 구해봐야지.’ 네 번째 빈대는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소처럼 힘도 세고요, 새처럼 하늘도 날고요, 쥐처럼 굶지도 않는 그런 것이 되고 싶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소새쥐가 되어라.” 네 번째 빈대는 즉시 ‘소새쥐’ 아닌 ‘소시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 구할 것을 구해야지, 잘못 구하다가 큰코다쳤습니다. 빈대가 코가 있나요? 아무튼! 분에 넘치는 욕심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심은 권력을 가진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똑같다는 뜻입니다. 저도 설교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오직 인간만이 모든 동물 중에서 위장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만이 과식하고 위장병을 덤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분수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과하면 탈이 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내 소원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 여인과 모세를, 또한 바울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지금 세우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남을 비판하지 않고 헤아리며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나가시기를, 새로운 창조 질서의 가치를 세워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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