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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도 기르시는데 하물며평범하게 힘들게 사는 우리에게(누가복음 12:29-3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9.25 15:38
▲ 하나님의 은총을 믿는 것이 우리 삶을 올곧게 지켜내는 길이다. ⓒGetty Image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창조절 넷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에는 누가복음 12장에 나타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이미 몇 차례 말씀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오늘 본문으로도 말씀을 전해드린 적이 있고,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6장의 본문으로도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 오늘 본문 앞뒤에 나타난 말씀들도 전해드렸습니다.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2장에 나타난 본문들의 핵심은 결국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분명히 두 장에 나타난 본문은 재물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타나고, 재물을 탐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한 번 마태복음 6장 25절 이하의 본문으로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본말전도 된 상황’을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몸과 목숨인데, 우리는 몸과 목숨을 위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옷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지금 시대로 보자면, 돈은 무엇인가를 구매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우리는 돈을 위한 돈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이는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설교에서 마태복음 6장의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이런 말씀도 드렸습니다. 이 본문에는 재산 축적 금지, 남을 위한 구제의 강조 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신 분들은 재산 축적 금지 혹은 잉여 재산을 남기지 말라는 말씀보다는 위로의 말씀으로 읽어오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본문으로 읽어오셨을 것입니다.

누가 청중인가?

여러 차례 다룬 본문이지만, 이 본문은 언제나 제게 어려움을 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 안에 두 가지 핵심이 함께 나타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잉여 재산을 금지하고 이웃에게 나누길 권하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하루의 양식이 없어서 힘든 이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입니다.

복음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로 각 복음서가 기록된 공동체의 특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에 관해 밝혀진 내용들은 이젠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흔하게 알려진 내용이 마태복음의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에 비해 부유층이 많았고, 누가복음의 공동체는 정반대의 구성원이 많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전제를 놓고 생각한다면, 마태복음은 잉여 재산을 남기지 말고 구제에 힘쓰라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대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말씀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를 선포하면서 현재 가지지 못한 이들을 위한 위로의 선포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두 복음서가 처한 상황에서 예수님 말씀의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고 있는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게 어려운 점은 복음서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기록했는가 보다는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이 말씀을 선포하셨을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본문은 약간의 순서만 바뀌어 있고, 위아래에 배치된 말씀이 다를 뿐이지, 본문의 내용 자체는 거의 똑같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복음서가 예수님의 말씀 자체를 수정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선포된 거의 그대로의 말씀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두 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재산에 관한 내용이라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오늘 본문에 앞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곳간을 크게 늘리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두어 가신 부자의 비유를 배치합니다. 마태복음은 누가복음과 본문의 순서를 다르게 하여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이들,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 앞에서 누가복음 12장이 선포되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였겠습니까?

앞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재산을 탐하지 말라는 말씀이면서, 가난한 민중에게는 해학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수탈하던 부자가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은 깨닫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33절에 나타난 구제에 관한 말씀도 자신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부자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나라의 마당놀이나 더 과거로 가자면 탈놀음과 비슷해 보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섞여있는 공간에서 부유한 자들을 조롱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말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런 위트 있는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가난한 이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는 말씀, 부유한 이들만을 비판하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진리를 선포하셨고, 모든 이들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이, 부유한 이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고, 가난한 이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는 그렇게 각자 알아서 들어야만 하는 말씀이었을까요? 아니면 부유한 이들에게는 구제 활동에 동참하라는 명령만이 전해졌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위로만이 선포되었을까요?

평범한 이들을 향한 말씀

그러다가 제 스스로가 예수님의 청중을 너무 극단적인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고, 부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이런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형태는 분명 저희보다 어려웠을 것입니다. 소작농들은 분명 지주들로부터 수탈당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고, 당시 로마 치하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도 쉬운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로마 치하에서 로마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런 반란의 움직임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의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 평범하다 여기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들과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참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켜고, 추운 날에는 보일러를 켭니다. 형편이 정말 안 좋은 분들도 분명 존재합니다만, 많은 사람이 추운 겨울에 입을 옷이 없어서 반팔티만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진 않습니다. 좋던 안 좋던, 메이커가 있건 없건, 패딩 하나씩은 걸치고 다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유한 사람들입니까? 그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유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루하루의 삶이 힘든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라디오 스타라는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 가수 황치열이 나와서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떠서, 한국 중국을 거의 매일 왔다갔다하면서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비행기를 탔는데,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안 되면서 공황장애가 오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 순간 그는 재빨리 휴대폰을 켜고 은행 앱에 들어가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답니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있는 돈을 보니까 혼란스럽던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중국 시장에서 몇 천, 몇 억을 버는 사람은 이렇게 얘기할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통장 잔고를 보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진 못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걱정만 쌓일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 먹고 입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삶에 대한 걱정을 합니다. 앞으로 살기 어려워질까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야말로 언제나 걱정합니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오늘 무엇을 입을지, 내일은 또 무엇을 먹을지 걱정합니다. 내일은 오늘만큼 잘 살 수 있을지를 늘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때론 이런 혼란한 마음에 안정을 주기 위해 돈을 들여 여행을 갑니다. 돈을 들여 문화생활을 즐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까마귀가 지금껏 살아가듯이, 들의 백합화가 지금껏 아름답게 피어있듯이, 우리도 지금 잘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창조세계를 지켜가시듯이 지금도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고, 우리의 필요한 것,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계시는데 왜 나는 가진 게 없다고 염려하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남을 돕지 못합니다. 나도 부족한데 남을 도울 여력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어려울 때면 하나님께서 분명 채우실 것이기에, 우리보다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위로도 아니고, 부자들을 향한 비난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나날이 전보다 편한 삶을 영위하고 있고, 오늘 하루도 부족함 없이 보냈음에도 늘 삶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 우리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결의를 하자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에 앞선 예수님의 말씀은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이제야 알게 되신 게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알고 계셨고, 이미 예전부터 채워주고 계셨음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삶을 염려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채움받고 살아가기에 늘 평안하며, 받은 복을 남들에게 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늘 부족함 없이 채우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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