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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은 너무 쉽게 바뀝니다사람의 말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살전 2:11-16)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9.25 22:11
ⓒCaitlin Connolly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신앙생활 하면서 성도가 누려야 할,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나의 바깥인, 외부 상황의 안정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결코, 그런 방식으로 평안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평안은 우리 내면에서 경험되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누구나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이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하나님은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어코 순종하도록 사랑하는 자녀인, 성도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각자에게 맞는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말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그러시나요?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을 보며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그러시나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이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생명과 직결되었던 이 말씀이 구약시대에만 유효한, 옛이야기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위한 삶은 여전히 우리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성도는 참 생명을 깨닫고, 누리고, 나누며 살아갑니다.

지난 금요일, 신세계교회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우리 교회에 기증할 스타렉스를 가지고 방문해 주셨습니다. 1층 교육관에서 교제를 나누는 중에 두 분 성도님이 화재 이후 바뀐 교회 모습에 감동이 되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진실하고, 겸손한 성도님들의 말씀에 함께 자리에 앉아 계셨던 우리 장로님도 감동이 되셔서 울컥하셨습니다.

방문한 성도님 중 한 분이 이런 감탄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초도제일교회가 우리 교회보다 더 이뻐요!” 이 말을 들은 신세계교회 담임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중요하고,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내 일을 뒤로 미루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를 먼저 도울 수 있는 것이 감사하지 않냐, 그리고 이렇게 섬길 때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겠습니까.’

신세계교회 성도님들의 말씀, 담임목사님의 말씀이 저에게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고, 도전도 받았습니다. ‘그렇지, 이렇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지.’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주신 차를 장로님과 함께 타고, 첫 주행을 위한 기도를 장로님이 해주신 후 차를 운전하는데 울컥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은혜 넘치는 하루를 보낸 당일 늦은 밤인 12시가 넘어서, 집 화장실 세면대로 들어오는 수도관이 터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구멍을 막아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어 결국 집 밖으로 나가 수도계량기를 잠그고 새벽기도회를 위해 두 시 넘어 잠이 들었습니다. 

다시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온갖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낮에 느꼈던 감사와 감동의 마음들은 이미 제 안에서 사라졌고, 불만과 불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대신하려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불평과 불만, 어두움의 그늘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에 사로잡힐 때 어떤 상황들이 발생할지 뻔히 알기 때문에, 밀려오는 감정들이 저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기도했습니다.

나 자신을 파괴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상상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어긋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함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장 어떤 일이 나에게 피해를 주고, 불편함을 주게 되면, 은혜는 한순간에 달아나버립니다. 사실은 스스로 은혜를 지워버리는 행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왕의 은혜로 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게 된 종이, 왕으로부터 놓임을 받은 후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자 멱살을 잡고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았으면 백 데나리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시 화폐단위로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이 말씀을 어떤 분이 한화로 1달란트는 3억, 1데나리온은 5만원 정도 되니, 3조 탕감받은 사람이 500만원 탕감해달라는 사람의 요청을 무시하고, 멱살을 잡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눈앞에서 자신이 손해를 보게 생겼으니 분노가 올라옵니다. ‘아니,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실은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성도들이 이런 삶의 태도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님들께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는 지금까지 전혀 하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을 하자는 구호가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자는 종교적인 행위에 집중하자는 말씀도 아닙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는 성도님들이 경험하는 일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태도를 일관되게 취하자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와 성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크게 칭찬을 했습니다. 칭찬한 이유는,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지만, 바울과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머문 기간이 단 3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바울이 떠난 후에 보여준 성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2-3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6-8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는 우리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이 머물면서 복음을 전한 기간은 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본이 될 정도로 성숙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바울이 말한 까닭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1-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우리는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합니다마는, 그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목적대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살았습니다. 심지어 핍박을 받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삶의 태도를 일관되게 선택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똑같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우리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대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방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서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웁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이르렀습니다.”

이렇기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를 향해,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켰다.’고 말합니다.

3주라는 짧은 만남과 교제, 교육의 시간이었음에도, 데살로니가교회가 주변 교회에 본이 될 정도로 성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13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설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은 좋은 말씀, 유익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실제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에 있는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와 ‘이렇게 해야 한다.’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실제다!’라고 믿으니,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씀 자체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는 ‘내가 좋고, 나를 기쁘게 하고, 내 목적을 채우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말씀이 밝히고 있는 것들을 ‘실제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는, 그때 그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태도를 “있는 힘을 다하여”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 안에서 말씀이 살아 역사하시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들에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규모로는 작은 교회일지 모르지만, 사랑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삶의 태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고 흘려보내는 교회로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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