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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어떻게 재창조 되었을까?언제 어떻게 일곱 번째 날이 안식일이 되었는가? ⑵
제이콥 라이트 교수/이성훈 | 승인 2022.09.29 00:05
▲ Jan Brueghel the Younger, 「God creating the Sun, the Moon and the Stars」 (17th) ⓒWikimediaCommons
제이콥 라이트(Jacob L. Wright)는 에모리 대학교 캔들러 신학교(Emory University’s Candler School of Theology)의 히브리성서 부교수이자 Emory’s Tam Institute of Jewish Studies 대학원 연구 책임자이다. 괴팅겐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했으며, 『Rebuilding Identity: The Nehemiah Memoir and its Earliest Readers (which won a Templeton prize) and David, King of Israel, and Caleb in Biblical Memory』의 저자이다. 이번에 번역 소개하는 라이트 교수의 이 논문은 안식일의 기원에 관한 논증으로, ‘만월의 안식일’과 ‘언제 어떻게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 되었는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번역에는 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에서 연구 중인 이성훈 목사가 수고해 주셨다. - 편집자 주

한 달 주기에서 일주일 주기로 이행된 안식일은 이를 언급하고 있는 많은 관련 성서 본문에서, 이해와 논쟁 모두 오래 끌어온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행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상당히 후기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인식은 만월에서 주간으로의 변화를 추적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몇몇 요소들로 우리를 이끈다.

안식일(Shabbat)이라는 단어

몇몇 성서 본문들은 명사 사바트에 대해, 딱히 관련이 없어 보이는 동사 sh-b-t, “멈추다(멈추길 야기하다)”와 연결된 다양한 종류의 말놀이(wordplay)를 특징으로 한다. (앞서 살펴본) 출애굽기의 초기 법령들은 동사 티쉬보트(tishbot)로 끝난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쉬라” 이 법령들은 이 글의 1부에서 보았던 바와 같이, 본래 안식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동사의 사용은 월간에서 주간으로 안식일이 전환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우리가 본문에서 실제로 사바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더 오래된 용어인 “일곱째 날(יום השׁביעי)”을 사용하는, 창세기 2장 2-3절(כי בו וישׁבת)에 나타난 단어 사바트의 함축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마도 티쉬보트의 말놀이와 동시에 사바트라는 고유 명사의 회피는 이 본문이 일곱째 날을 사바트로 부르는 일에 여전히 논란이 있었던 시기에 쓰였다는 점을 암시한다.

ūmū-lemnutū (불길한 날들)

말놀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더불어, 기원전 천 년부터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불길한 날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 모든 분야의 구성원들은 특정 활동을 하는데 불길한 날들이 나열된 달력 열람을 참고했다(요즘날의 점성술과 비슷함). 신아시리아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가장 불길한 날들(ūmū-lemnutū)은 7일, 14일, 19/21일, 28일이었다(이상하게 19일이 21일보다 더 자주 실려있다).

포로기 때 이스라엘인들의 인식에 ūmū-lemnutū이 도입된 일은 매 일곱째 날의 휴식에 관한 성서의 법이 주간 휴일의 새로운 달력 주기로 굳어지는데 쌍두마차 격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점을 위에서 살펴본 티쉬보트-사바트 말놀이와 결합해보면, 우리는 다양한 외부적 요인들이 만월 제의에서 독립적인 일곱째 날의 휴식으로 전환하는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 수 있다.

월간에서 주간 안식일로의 전환은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다. 이 영향은 남부 레반트 지역에서 신아시리아와 신바벨론 군대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 시작되었지만(기원전 7-6세기), 메소포타미아 문화와의 더 직접적이고 일관된 접촉은 기원전 587년 유다가 점령된 이후에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화와 유대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발생된 시너지 효과는 후대 성서 저작들이 저술되고 수정되는 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창조와 영원한 언약(Berit Olam)의 안식일 : 어떻게 안식일이 이렇게 핵심이 되었는가?

포로기 기간 이후의 성서 본문들은 (주간의)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제도로 만들었다. 제3이사야(56-66장)의 본문은 안식일에 대한 충실함(내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일)이 이방인과 고자들이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기초라고 선포한다. 토라의 (포로기 이후) P 본문(출31:16-17)은 안식일이 브리트 올람(brit olam),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추방(karet)과 사형으로 처벌 받는다.

왜 이 시기에 안식일이 국가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을까?

포로기 동안의 토라

전승된 형태의 토라는 그들의 땅에서부터 이미 포로로 끌려갔거나 끌려가게 될 공동체에 관한 생각을 품게 한다. 흩어진 공동체는 주간의 안식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할례, 제한된 식사 규정, 많은 유사 법령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안식일은 토라의 ‘절대법’으로, 그것에 할당된 관심이 다른 모든 법들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바야크헬 토라 포션(Vayakhel Torah-portion, 출35:1-3, 토라를 일년 간 읽을 수 있도록 주간 단위로 나눠놓은 ‘토라 포션’ 중 22주차 – 역자 주)을 시작하는 특별한 문학 단위(piskah)에서 안식일이 어떻게 홀로 독립해 있는지 주목하자. 왜 안식일은 토라 안에서 이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가?

안식일은 성서 안에서 그리고 성서 후기의 유대교에서 시간이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독특하다. 성전이 파괴되었고 국가의 통치권이 상실되었지만, 안식일은 살아남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하루, 한달, 계절, 일년의 자연적 순환은 바빌론의 고등신 마르둑의 강력한 힘에 의해 근절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일곱 번째 날의 비자연적인 언약 순환은 국가의 패망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것이 창세기 1:1-2:3의 메시지이다.

토라 서문에서의 안식일

영월과 만월의 안식일(날, 계절, 년 등으로 알려진)과 대조적으로, 독립적인 일주일 주기는 어떠한 자연 주기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것은 쉽게 경쟁 공동체들과 논쟁점이 될 수 있다. 언제가 ‘진짜’ 일곱 번째 날인지 결정할 객관적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안식일이 만월 제의였을 때는 직면하지 않았던 문제).

만약 안식일/일주일 주기 수렴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유대교가 어떻게 보일지, 또는 서구 사회가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보라. 카라인, 사마리아인, 에티오피아인을 포함하여 다른 공동체에서 나온 유대인들 모두가 안식일을 다른 날 지킨다면 어떨까? 만약 아슈케나지 안식일이 세파르디 또는 예멘인의 수요일이었다면 어땠을까?(똑같은 사고 실험은 기독교인과 일요일에서도 할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달력상의 혼동은 휴일을 둘러싼 대규모 공동체의 결속 가능성을 파괴할 것이다. 이것이 제사장 저자들(P)이 성서를 쓸 때 위태로웠던 지점이다.

따라서, 월간에서 주간 안식일로 전환됨을 전제했던, 토라 서문(창1:1-2:3)의 제사장 저자들은, 시간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 7일 주기를 찾음으로 이 문제에 대응했다. 이 저자들은 기원전 587년 포로기 직전이나 직후에 성서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안식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위를 참고), 이들은 이 단어를 다루며, 주간 주기로의 전환을 전제한다.

하나님이 자연 질서를 설계하실 때, 하나님은 6일간의 창조적 노력에서 벗어나 쉬셨고,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거룩한 규칙으로 개시된 일곱 번째 날을 복되게 하신다. 이러므로 안식일은 그들의 역사 어떤 시점에 그 백성 앞에 드러나야 했고, 그것이 우리가 토라의 본문에서 발견한 제사장적 서술이다.

출애굽기 16장에서 안식일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 백성에게 안식일에 대한 지식은 없다. 그러나 안식일로 끝나는 일주일로 운명지어진 매우 비자연적인 이 특성은, 이스라엘에게만 홀로 수립된 언약 질서의 독특한 정체성 지표가 되었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드러나야만 했다.

메소포타미아 제도의 적용에서 시작된 이야기들(홍수 기록과 같은)과 법들(소의 피와 같은)에서 발생한 점과 유사하게, 토라의 서문과 관련된 안식일 법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안식일의 적절한 이해를 제시한다. 이 법들은 그 기원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토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신학적, 법적 원칙에 일치하는 기풍을 불어넣는다.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에서의 안식일

제1차 성전이 파괴된 후에 토라를 읽던 공동체가 그랬던 것처럼, 토라 전체에서 땅의 소유는 여전히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약속이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창조 시에 세우셨고, 그들이 이집트를 떠난 직후에 백성들에게 드러났으며,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동안 확장된, 안식일 주기라는 특별한 시간 질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민족 시인 Hayim Nahman Bialik(1873-1934)는 안식일 법을 위대한 회화나 건축 작품에 비유했다. "다른 이들이 공간 속에서 돌을 가지고 한 일을, 탄나임(미쉬나에 나오는 랍비 현자들 – 역자주)과 아모라임(탈무드 학자들 – 역자주), 그리고 그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성서를 기록한 이들은 시간 속에서 단어를 가지고 행했다."

제이콥 라이트 교수/이성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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