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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의인론의 자리와 바르트의 대안의인론의 관점에서 본 치유 ⑵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10.01 15:08
▲ 바르트는 전통적 의인론이 논의된 자리를 바꾼다. ⓒGetty Image

바르트가 의인론을 어디에서 다루는가를 주목하는 일은 중요하다. 바르트는 이 의인론을 “기독교 신앙의 총체”로 이해하는 루터주의와는 달리 개혁교회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의인을 강조한다.(1)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죄된 인간의 의인의 토대이다.

의인론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집중적으로 해명한 『교회 교의학』 제4권 ‘화해론’에서 다루어진다. 여기서 인간의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서 성취된 것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의인론의 문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밝히 드러났듯이, 의인은 우리의 죄와 또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들로부터의 소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값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과분하게 우리를 용납하신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또한 거룩한 하나님이요 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지은 인간의 의인은 죄에 대한 심판과 유죄 선고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죽음이 생명에 앞서 나오고 유죄 선고가 무죄 선고에 앞서 나온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부정적인 의미는 그 심판이 죄된 인간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과 선고, 그의 분노의 불길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긍정적인 의미는 그것이 그의 선함과 긍휼 가운데서 인간을 향해 오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이기 때문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의인론은 죄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의인론은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기소하고, 유죄선고하고 죄인들로서 죽게 하는 바로 그 무서운 심판에서, 같은 하나님이 우리를 무죄선고하고 그의 앞에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야 한다(CDⅣ/1, 516). 동시에 그것은 어떻게 우리의 죄와 무죄선고, 하나님의 분노와 자비, 우리의 배척과 우리의 선택의 공존 혹은 계속이 가능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의인론은 죄된 인간이 하나님의 분노 아래 있으면서 동시에 그의 은혜 가운데서 용서받고 받아들여지는 역사(Geschichte)의 문제이다. 사실, 인간은 죄인이다. 그는 이 역사 속에서조차 여전히 죄인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 역사에서 의로운 자일 수 있는가? 어떻게 그가 같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동시에 죄인이고 의인”(simul peccator et justus)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이 인간의 교만(죄)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반대이고, 따라서 인간의 현실적인 구원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의인론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이다(CDⅣ/1, 517).

인간에 대한 무죄선언으로서의 하나님의 심판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다. 그는 순수하게 그리고 단순히 그의 불의 가운데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 바르트는 우선 하나님의 심판에서 불의한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문제를 취급한다. 하나님과 불의한 인간 사이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불의를 능가하는 ‘우월한 의’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우월한 의가 불의한 인간에 관해 행사되고, 그 행사에 의해서 인간의 불의가 제거되고 인간의 새로운 의가 수립되어야 한다.

“이 우월한 의는 하나님의 의이고, 그것의 행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 사건에서 사람의 의인이 일어난다.”(CDⅣ/1, 529).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심판에서 행사하는 의는 그 자신과 일치한다. 따라서 의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의 문제이다. 바르트는 이렇게 역설한다:

“하나님은 의롭고 … 그 자신에 신실하다. 그것이 의인에 존재론적 힘을 준다.”(CDⅣ/1, 532).

죄된 인간의 잘못이 제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 필적할 수 없다. 인간이 그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깨뜨리고 타락하고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고 사람과 맺은 계약을 지키신다. 여기서 『교회 교의학』  전반에 흐르는 바르트의 분명한 관심이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의 죄와 악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와 결코 맞설 수 없다는 것이다(CDⅣ/1, 484). 죄인에 관한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이 죄인에게 유죄 선고하는 심판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한다.

“그의 의의 행사는 철저하게 그의 은혜의 행동이고, 그의 은혜의 행동은 철저하게 그의 의의 행사이다.”(CDⅣ/1, 538).(2)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불의한 인간에게 행사될 때, 그 의는 불의한 인간의 실존을 근본에 이르기까지 양분하며 그에게서부터 위기를 형성한다. 한편으로 불의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죽음과 저주 아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하나님의 긍정적인 의지의 대상, 곧 여전히 구원받은 사람으로 있다.

양쪽에서 하나님의 의(또한 그의 은혜)는 진정하고 완전한 활동을 수행한다. 그것은 ‘마치 …인 것처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완벽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의 분노의 부정 아래 있는 사람과 그의 은혜의 긍정 아래 있는 사람 사이에서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이고 전적인 분리이다(CDⅣ/1, 541). 그러나 이 분리는 정적인 이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 가톨릭 신부로서 바르트 신학의 훌륭한 학자인 앙리 부이야르(H. Bouillard)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해석한다.

“우리는 이중의 실존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형식들의 역동적인 연속과 상호적인 내재성 안에 있는 동일한 인간의 실존의 드라마와 관계한다.”(3)

동일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기도 하고 의롭기도 하다.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눅 15:32).

죄된 인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여김을 받는 과정은 이와 같이 하나의 절대적인 수수께끼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이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정” 아래 있는 우리의 과거와 그의 “긍정” 아래 놓인 우리의 미래 사이, 우리가 그로부터 나온 죽음과 우리가 나아가는 생명 사이의 대립은 그렇게 철저하고,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대립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의식으로 그것을 경험할 수도 없고, 하나에서 다른 하나에로의 우리의 이행을 표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역사가 언제나 우리에게 낯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의의 행동의 인식에 속한다. 설령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에게 적용되었을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낯선 의(justitia aliena)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justitia Christi)이고, 단지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의 의, 나의 의(nostra, mea justitia)가 되기 때문이다.”(CDⅣ/1, 549).(4)

 

미주

(1) 최영, “개혁교회 신학의 이해와 전망”, 「말씀과 교회」제29집, 2001년 세 번째 호, 서울: 기장신학연구소, 2001, 131 이하 참고.

(2) E. 부쉬는 이점에서 바르트가 의인론에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의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E. Busch, Karl Barth, 379.

(3) H. Bouillard, Karl Barth: Parole de Dieu et Existence Humaine, Montaigne: Aubier Éditions, 1957, 59.

(4) “낯선 의” 혹은 “밖에서 온 의"라는 바르트의 표현은 종교개혁자들, 특히 루터에게서 물려받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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