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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전의 복지선교『코로나19 문명 전환기의 생명망 목회와 돌봄 마을』 (나눔사, 2022) ⑿
이원돈 목사(부천새롬교회) | 승인 2022.10.04 15:10

필자는 본 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가 펼쳐온 사회복지사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논구하였다. 이를 위해 첫째, 코로나19 재난 이후 한국교회가 추구할 사회복지의 방향성을 ‘지역 사회와 마을 중심의 돌봄 복지와 돌봄 마을’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한지를 살피기 위해 우선 1987년 민주화 시기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지역과 마을에서 전개된 지역 탁아소 연합운동과 지역아동센터를 조명할 것이다.

둘째,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실업 극복 국민운동 및 자활 운동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복지 활동을 추적하면서 2000년대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에 이러한 움직임이 어떻게 마을만들기 운동으로 연결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이후에 또 어떻게 돌봄 복지와 돌봄 마을이 부활하여 코로나19 위기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 보려고 한다.

탁아소에서 공부방을 거쳐 지역아동센터로

▲ 1990년대 부천 최초의 공부방 모습 ⓒ예장뉴스

한국교회의 복지선교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중 선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교회는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사회복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며, 이후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초부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각 지역에는 민간 탁아소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공단과 빈곤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탁아소들은 가난한 노동자의 아이들도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배울 권리가 있다는 꿈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오늘날 지역과 마을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활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

이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젊은 기독교 여성 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의 노력 끝에 1989년 「아동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탁아시설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고, 1990년 12월 국회에서 「영유아보육법」이 통과되어 이듬해 1월 공포되는 쾌거를 이루며 아동복지 역사의 새 장이 기독 여성으로부터 열리게 된다.

탁아소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아이들에게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부방’이 출현했다. 탁아소와 공부방은 한국 지역 사회 복지와 교육의 중요한 전달체계를 확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까지 각 지역의 기독 여성, 작은 교회, 그리고 신념으로 뭉친 탁아소와 공부방 교사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한마디로 기독교 여성 신앙인들의 열정의 산물이었다.

각 지역에 설립된 공부방은 2004년 1월 29일에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 ‘지역아동센터’라는 법정 아동복지시설 중 하나가 되었다. 명칭의 변화에서 엿볼 수 있듯, 처음에는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기능만 부각되었지만, 이후로는 명실공히 어린이들을 위한 종합복지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특히 IMF 구제금융 이후 2000년대 지방자치 시대로 진입하면서 부천의 경우 60여 개의 지역아동센터와 15개의 작은 도서관이 각 동네에 세워졌다. 이들은 부천의 시민사회와 함께 마을과 지역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교육과 복지 전달자가 되었다.

1990년대 실업 극복 국민운동, 자활 운동과 지방자치의 본격화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에 대량실업 문제가 발생하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으면서 고용 불안과 빈곤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주도로 사회적 경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그 흐름 가운데 하나인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는 출범 당시 국민 의식 개혁, 실업 기금 모금, 실업자 구호 및 자활 지원, 민․관 협력 사회안전망 구축, 21세기 사회보장 기틀 마련을 5대 과제로 내걸었다. 이후 자활사업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특별취로사업과 창업 지원, 공공근로 일자리 지원 등의 사업으로 실업 극복 운동과 결합한다. 이를 통해 실업 극복 운동은 ‘사회적 일자리’로 개념화된다. 

이러한 실업 극복 국민운동과 자활 운동 등은 각 도시와 마을에 있는 작은 마을교회와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던 노동복지단체 및 지역의 복지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 부산장신대 황홍렬 교수는 ‘이러한 실업극복운동과 자활사업은 당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민중교회들을 통해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교회의 지역 복지 운동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라고 평가한다.

또한 황 교수는 당시 지역과 마을에서 민중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중 선교의 흐름과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IMF 체제 이후 생겨난 실직자, 노숙자 등 사회적 관심 대상에게 전문적인 선교활동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사회봉사나 사회선교에 관한 관심이 부족했던 교회들과의 연대활동이 늘어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둘째, 민중 선교가 다양화될 뿐 아니라 전문화되었다. 노동상담소, 노숙자 쉼터, 실직자 재활, 자활센터, 장애인 재활훈련원, 외국인/이주 노동자 상담소, 이주여성 인권센터, 세계선교대학 등으로서 전문성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셋째, 우리 사회 노동자의 56%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임시직, 계약직 노동자를 위한 활동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넷째, 산업선교의 경험을 아시아 기독교인들과 나누고자 ‘아시아 URM 디아코니아훈련원’을 만들어 아시아 농어촌 선교 실무자들을 지도자들로 양성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김민아 박사는 지난 3월 한국종교사회학회 정기학술대회 발표에서 “한국 진보적 개신교 진영은 1970,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민중 생존권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87년 민주화 이전에는 주민교회나 노동 교회들이 단체의 기능을 대신하기 위해 활용되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성을 갖고 있는 민중교회를 중심으로 진보적 개신교 사회운동이 전개된 것”이라고 말했다.(1)

김민아 박사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1987년 이후 민중교회들은 작은 마을교회 혹은 지역교회를 꾸리며 마을 단위에서 분투하는 가운데 그 분야에서는 의미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갔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인적․물적 자원이 있는 보수적 교권 세력들이 한국교회를 과잉 대표하게 되었고 교회의 지역과 마을 복지 활동은 과소평가 되고 점차 힘이 위축되어 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마을만들기 운동의 전통과 복지 활동

김학철 교수(연세대)는 지난 5월 ‘팬데믹 시대와 문화적 상상력’ 간담회에서 “지금 팬데믹 이후 한국인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사회적 연대’이며 이것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라며 “오늘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공동체의 정서적 지지나 삶의 지지를 받을 곳이 없어졌다. 이들이 정서적으로 연대할 곳이 교회가 돼야 한다.”(2) 라고 말했다.

또한 YTN의 김혜민 PD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연속토론회 발제에서 “대한민국이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은 마을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며 “마을은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 및 위로자가 된다. 그 안에서 감정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급속도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빈부격차가 생기고, 마을이 무너졌다.”라고 말했다.(3)

한국기독교사회복지실천학회 2018 춘계학술대회에서 유장춘 교수(한동대)는 “복음이 교회에서 나와서(탈교회) 마을로 들어가고, 교리에서 나와서(탈교리) 주민들의 생업과 삶으로 들어가며, 종교에서 나와서(탈종교) 구성원들의 성품과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을목회”라고 정의하며, “이것이 바로 신앙의 진정성, 영성이다.”라고 강조했다.(4) 이들은 모두 공동체, 즉 마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2016년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 모습 ⓒ당당뉴스

지금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복지선교가 나아갈 길을 돌봄 복지와 돌봄마을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활발히 펼쳐온 사회복지사업의 중요한 전통의 한 부분인 마을운동의 역사를 다시 한번 소환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마을 복지 활동은 1968년 빈민선교실무자훈련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1971년 9월 수도권 도시선교위원회의 창립과 그 활동, 이로 인해 본격화된 신설동과 광주 대단지 등 빈민 지역 20여 곳에서 선교한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의 사역 등으로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도시선교 활동은 1980년대 민중교회의 탁아소, 공부방 등 마을 운동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교회와 마을의 어린이집과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를 연결하며 마을 전체를 학습, 문화, 복지 등 통전적 생명망으로 짜나가는 마을만들기의 꿈으로 이어졌다.

마을운동의 흐름은 도시형/농촌형 마을교회들의 등장으로 전국적인 마을만들기 운동과 연결되면서 도도한 마을운동의 흐름으로 이어져 나가는데, 수유리 지역의 아름다운 공동체는 도시와 농촌을 잇는 마을운동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필자가 속한 교단(예장 통합)의 경우 2016년 3월 11일 총회가 주최한 지역 마을목회 콘퍼런스에 참여한 ‘예장마을만들기 네트워크’ 목회자 일동이 “마을목회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결과적으로 교단의 2018년 총회(102회)의 주제가 마을목회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마을목회와 선교라는 사회복지 활동의 역사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 재난기의 한국교회의 통합돌봄 복지와 통합돌봄 마을이라는 복지적 대응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새롭게 탐색을 시작해야 할 중요한 주제이다.(5)

미주

(1) “진보 개신교,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 주도권 상실”, 「기독일보」, 2021년 3월 15일.
(2) “공허함 채우고 ‘사회적 연대’ 이루는 교회 문화 만들어야”, 「아이굿뉴스」, 2021년 5월 17일.
(3) “한국교회, ‘마을공동체’ 역할 할 때 부흥 일어날 것”, 「기독일보」, 2021년 6월 8일.
(4) “기독교사회복지, 마을로 들어가자”, 「한국기독공보」, 2018년 4월 19일.
(5) 생명평화마당, 『한국적 작은 교회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245.

이원돈 목사(부천새롬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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