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죄를 사하여 주지 마라”선교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 ⑸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2.10.04 15:35
▲ 남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한 Bartolome de Las Casas를 묘사한 그림 ⓒhttps://lavamagazine.com/fray-bartolome-de-las-casas

1516년 페르디난트 스페인 국왕이 죽은 후, 추기경 국왕이 집권하면서 그는 도미니카 선교사들에게 어느 정도 호의적이었다. 라스 카자스는 이 기회를 활용, 식민지체제의 총체적 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시기에 활발한 저작활동을 했다.

원주민을 위한 고독

라스 카자스는 7년 동안 수도원에서 고독한 준비를 한다(1523-1530). 그는 성서, 교회사, 교부들의 신학, 법학 등의 공부에 몰두한다. 이 7년 동안의 고독한 칩거에서 그의 최초의 저서 ‘소명의 유일한 길에 관하여’(De unico vocationis modo)가 탄생한다. 이 책에서 라스 카자스는 선교사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삶의 양식을 제시한다.

첫째, 청중은 선교사들이 자기들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청중은 선교사들이 재산에 대한 그 어떠한 야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셋째, 선교사들은 자기 청중에게, 특히 비신자들에게 말할 때, 양순하고 겸손하며 정답고 사랑스럽고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기쁘게 자기네 말을 듣고 더 경건하게 자기네 설교를 들으려는 의지를 생겨나게 해야 한다. 넷째, 설교하는 사람들은 바울로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 대하여 똑같은 사랑을 느끼고 애덕을 실천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을 놀라운 일을 실현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다섯째,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기 설교가 성스럽고 정의롭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보여줄 수 있도록 모범적인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1)

라스 카자스는 1534년 산타 도밍고를 떠나 니카라과로 선교지를 옮긴다. 여기에서 그는 식민지 체제의 구조적 개혁안인 ‘새로운 법’을 작성, 스페인 국왕에게 직접 호소한다. 이른바 놀라운 신대륙 발견 이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일들은 지난 수 백 년 동안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비교될 수 없는 사건들이라는 것을 목격자로서 진술한다. 그의 개혁안은 마침내 황제에 의해 1540년 승인을 받고, 1542년 칼 5세에 의해 통과된다. 그러나 이 개혁안은 실천도 되기 전에 1545년 완전히 폐지된다.

그 사이 라스 카자스는 거의 70세의 노인이 되었다. 라스 카자스는 1542년 멕시코의 치아파 교구의 주교로 임명을 받는다. 주교로서 그는 모든 사제와 선교사들에게 인디언 노예를 해방하지 않는 소유주, 강제노동을 통해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을 되돌려 주지 않는 이들에게 면죄선언을 거부하도록 지시한다.

1546년 라스 카자스는 고해성서 규례를 제작, 자기 소속 교구의 모든 사제들이 고해자들에게, 그들이 어린이와 과부와 억압받는 이들의 자유를 도둑질하지 않았는지, 그들을 폭력으로 위협하지 않았는지, 그들의 재산과 토지를 빼앗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싼 값으로 인디언 노예를 사지 않았는지, 부당한 임금을 주지는 않았는지 등을 묻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죄의 사면은 오직 그들이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고칠 준비가 되어 있을 경우에만 선포되어야 했다. 라스 카자스는 죄를 추상화시키지 않는다. 그는 하늘에까지 다다르는 죄를 ‘형제살해’, ‘동물과의 성교’, ‘가난한 이들과 과부와 고아들의 억압’, 그리고 ‘정당한 임금의 미지급’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백인 가톨릭신학자들과의 대결

라스 카자스의 적은 백인 대지주와 금광소유자들만이 아니었다. 그는 노예제도와 인종주의, 폭력적인 원주민 억압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동시대의 제도권 신학자들과도 대결해야 했다.

그는 궁정사가이며 신학박사였고, 스페인의 인문주의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가였던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였다. 그는 1547년(즉 멕시코와 페루의 선주민들이 유럽인들에 의해서 정복당한 후) 인디오가 진정으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사실에 대해서 단순히 부정해버렸고, 또 그들을 정복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스페인인들에게 부여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신세계나 거기에 딸린 섬들에 사는 야만인을 지배할 권리를 완전히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리분별, 덕성, 지혜, 인간성에서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것처럼 당연히 스페인 사람들보다 열등하다. 그들 중에도 짐승처럼 잔인한 사람부터 인정 많은 사람까지, 무절제하고 방탕한 사람부터 온화하고 자제심 있는 사람까지, 한 마디로 말해서 원숭이부터 인간까지,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이름 값을 못하는 이 야만인을 스페인 제국에 복종시켜서 그들의 사리분별, 덕성과 종교를 고침으로써 문명인으로 개조시키고, 이 이러석과 난잡한 이들을 성실하고 어진 인간으로, 또 불경스럽고 악마에 빠진 이들을 기독교인으로 바꾸어 진정한 신을 숭배하게 하는 것만큼 건전하고 적절한 방책이 달리 있을 수 있단 말인가?’(2)

세풀베다는 아메리카 인디언이 집단적 죄-예컨대 우상숭배, 무지 등-의 사슬에 얽매여 있으며, 스페인 인들은 그들을 해방시킬 의무가 있다고 확신했다. 또한 인디오는 사회라는 것이 탄생하기 이전의 인간들이기 때문에 유럽의 문명인들이 그들을 정복하고, 또 문명화의 목적에 적절히 사용하기 위하여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했다.(3)

그는 스페인인의 문화적 우월감은 인디언 정복을 정당화하고, 정복만이 복음선포의 길을 연다고 주장했다. 인종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풀베다는 창세기를 우화로 조작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이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딸은 백인이고 아름답고 지적인데, 다른 딸은 갈색이고 추악하고 무지하다는 것이다. 혼기가 된 두 딸 가운데 신랑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인디언 딸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은 그녀에게 황금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메리카에는 금광이 많고, 황금은 인디언 딸이 유럽 백인 신랑을 얻기 위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유럽인의 황금착취와 인종주의는 신학적으로 정당화된다. 라틴 아메리카에 만약 황금이 없었더라면 유럽인들은 물론, 선교사들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황금이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었다.

라스 카자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황금의 소유자는 본래 인디언이기 때문에, 그들의 금을 빼앗는 것은 도둑질과 같다고 말한다. 이 세계에서 아무도, 스페인의 국왕까지도 잉카 제국의 왕들의 자발적인 의지 없이 그들의 보물을 훔쳐갈 권리가 없으며, 도둑질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죄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도둑질한 물건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그는 거침없이 말했다.

성서로부터 시작해 성서로

라스 카자스는 그의 투쟁의 샘솟는 힘을 언제나 성서에서 찾았다. 그는 성서에서 규탄되는 죄악이 서인도 제국에서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 인디언 경험을 기초로 성서를 읽는 것이 그로 하여금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시 숙고하게 한 것이다. 성서와 현실은 서로를 조명한다. 성서와 현실의 관계가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성서는 ‘예수 시락 34장’의 말씀이다:

‘불의한 재물로 드리는 번제물은 더렵혀진 예물이다.
악인의 제물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지고하신 분, 하나님은 죄인들의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며
많은 번제물 때문에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빼앗아 제물을 바치는 것은 아버지의 목전에서
아들을 살해하는 것과 같다.
궁핍한 빵은 가난한 이들의 생명줄,
이것을 주지 않는 자는 살인자이다.
누구든 땀흘려 번 빵을 빼앗는 자는 이웃을 살인하는 것과 같다.
가난한 이에게서 생계를 빼앗는 자는 이웃을 살인하는 자이며
노동자에게서 임금을 착취하는 자는 이웃의 피를 흘리게 하는 자이다‘(21-27절)

라스 카자스는 성서를 현실에 비추어 선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또 그가 이해한 말씀을 스스로 실천한다. 말씀을 자기 경험과 현실과의 관계에서 조명하고 실천함으로써 라스 카자스는 동시대의 궁정신학자들과는 다른 길을 갔고, 그리하여 역사상 첫 해방신학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1566년 여름, 라스 카자스는 92세의 나이로 그의 인생의 여정을 마쳤다. 그의 책상 위에는 아직 탈고되지 않은 원고, ‘인디언을 말살시킨 페스트에 대항하는 16가지의 치유수단’이 놓여 있었다.

스페인의 어디에도 라스 카자스의 기념비는 없다. 아무도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는 성자나 복자로서도 추앙받지 않는다. 그는 도미니카 수도회 소속의 선교 사제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간 마틴 루터와 함께 ‘루터 추종자’로, 토마스 모어와 함께 ‘유토피아주의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는커녕, 더 높아가는 노예제도와 인종주의, 황금숭배의 절벽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아서 돌아오고 있다. 가난과 불의한 억압, 인종주의와 예속적 현실에 대항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 속에서! 설교와 저술금지, 사제직 수행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입 막힌 민중의 입, 귀 막힌 민중의 귀, 눈 막힌 민중의 눈이 되어 해방을 실천하면서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하는 해방신학자들 속에서!

미주

(1) 레오나르도 보프, 『하느님은 선교사보다 먼저 오신다』, 김수복 옮김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3), 181.

(2) 카를로스 푸엔테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서성철 역 (서울: 까치 1997), 152-153.

(3) 카를로스 푸엔테스, 16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