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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사의 창조! 기후 정의, 사람이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죽다!(레 9:1-11 고후 5:11-17 마 8:23-27)창조절 여섯째 주일(10월9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10.07 14:43

1. 미래가 불타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의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열린책들, 202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클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비상사태를 비상사태처럼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에너지를 기후 위기를 막는 행동에 쏟아부을 수 있다.” 지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가 비상사태인데, 사람들이 인식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나오미 클라인의 책

이 책은 인류 최악의 재앙인 기후 변화를 인류 최대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결집하고 있는 사람들과 운동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대 산호초의 죽음과 꺼지지 않는 산불, 태평양 연안을 뒤덮은 연무(煙霧, 연기와 안개)와 초대형 허리케인의 습격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 재앙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장을 생생히 담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창조절기를 보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생태 환경이 지금 파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 세계 기후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기후 위기에 관해 경보음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의 역사가 증명하듯, 이 기후 위기의 불은 혼자서 끌 수 있는 불이 아닙니다. 클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민망한 답변이지만,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자화한 개인의 입장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안정시키거나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막중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객관적으로 볼 때 생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이제 폭염과 폭우, 태풍과 한파 등의 기후 변화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다급한데, 우리는 이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클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집은 거짓 약속과 미래의 편익에 대한 경시, 그리고 희생자들 위에 세워져 어차피 처음부터 무너지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 예전만큼 화려하진 않더라도, 안식처와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짓자.”

만약 이러한 안식처를 짓지 못한다면, 클라인의 말대로, “이제껏 기후 변화 부정 운동 뒤에 은신해 있던 인종 차별주의가 다시금 맹위를 떨치면, 세계는 더욱더 냉혹한 곳이 될 것”입니다. 인종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듯, 피조 세계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기후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세계는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기후 위기는 세대 불평등의 원인도 됩니다. 클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후 변화 문제는 우리가 과거 몇 세대에 걸쳐 벌려 놓은 행위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여러 세대들에게 어떤 식으로 불가피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시간의 범주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에게는 망각 속에 묻힌 언어다. (…) 여러분 앞 세대들은 여러분 몫이 되어야 할 대기 공간보다 훨씬 큰 대기 공간을 탕진해 버렸다. 우리는 여러분 몫으로 남겨 둬야 할 대실패의 기회 역시 다 써버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세대 간 불평등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원자화한 개인의 입장에서 정말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고 지금의 기후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방법이 없을까요? 클라인의 해결책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딱 두 가지다. 만인이 최대의 편익을 누릴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 나가느냐, 아니면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 기후 재앙과 물자 부족,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감에 떠밀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느냐, 이 두 가지뿐이다.”

2.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는 예수님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 큰 놀(크게 움직이는 물결)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여 제자들이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십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마 8:23-27)

배가 큰 물결에 덮이게 되어 제자들이 죽게 되었다고 난리입니다. 여러분 물결이 왜 칩니까? 달의 인력 때문이죠? 바다의 썰물과 밀물이 그 때문입니다. 또한 바람이 불면 물결이 치기도 합니다. 당시 갈릴리 바다에 바람이 불고 큰 물결이 있어서 제자들이 탄 배가 물결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태풍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지난여름 힌남노 태풍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교회는 하루 전 만반의 준비를 했었는데, 부산보다는 포항과 경주 지역에 큰 타격을 입혔던 그 태풍 말입니다. 그런데 이 힌남노 태풍은 태생부터 다른 태풍과 달랐다고 합니다. 힌남노는 보통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열대 바다인 필리핀해상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일본 남쪽 해상에서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힌남노가 기후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닷물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바다가 내뿜는 수증기 양이 약 4~7%씩 늘어나는데, 이렇게 많은 수증기가 응결되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기들이 태풍을 크게 성장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라 남해와 동중국해 바다는 주요 태풍 발생지역인 필리핀해상보다 뜨겁게 달궈진 상태였고 30도를 넘는 지역이 보일 정도로 매우 뜨거웠습니다. 태풍이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태풍 발생 조건에 필요한 약한 바람까지 맞아떨어지면서 태풍이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뜨거워진 바닷물이 슈퍼 태풍을 가까이 끌어들인 셈인데, 이것이 힌남노 태풍이고, 이렇게 기후 변화, 곧 지구 기온 상승으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태풍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람과 태풍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자들 말대로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클라인이 말한 변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3. 아론의 첫 제사, 흠 없는 속죄제 송아지!

오늘 구약과 서신서 본문 말씀은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무엇을 바로 세워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삼위이신 하나님의 관계적 존재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관계는 인간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도 해당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인간-피조물’의 유기적 사랑의 관계가 바로 새로운 창조의 완성입니다.

그렇다면 파괴되고 있는 피조 세계와의 관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피조 세계와의 관계인가요? 아니면 인간과의 관계인가요? 둘 다 맞습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제대로 관계를 맺으면 인간과 또한 피조 세계와 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식으로 말씀드리면 제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새로운 제사의 창조를 보여줍니다.

▲ 아론의 첫 제사

구약 레위기 말씀은 이론의 첫 제사로 속죄제와 번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서신서 말씀은 아론의 첫 제사를 넘어, 자신의 몸을 제사 제물로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제사, 곧 대속의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죽음, 곧 예수 십자가 보혈의 피로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은 자들은 늘 두려워합니다. 복음서 말씀에 나오는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 생명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는 그 어떤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승리의 노래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생태계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제대로된 관계 설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1주일간의 제사장 위임식을 끝낸 아론이 첫 제사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사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구약의 5대 제사에서 유래됩니다. 노아나 아브라함도 번제를 드리기는 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만 드린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기적으로 형식을 갖추고 제사장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여덟째 날에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 아론에게 이르되, 속죄제를 위하여 흠 없는 송아지를 가져오고 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를 가져오고 또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숫양을 가져오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하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하매”(레 9:1-4)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아론,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불러, 아론을 위하여는 속죄제와 번제의 제물인 흠 없는 송아지와 숫양을 준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는 속죄제와 번제, 화목제와 소제물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물과 곡식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아벨과 가인이 그랬죠? 동물을 바치는 제사는 세 가지인데, 죄에 대해 속죄하는 속죄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는 번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화목제입니다. 특히 번제를 드릴 때는 곡식 제사를 그 위에 얹어 드리기 때문에 번제와 소제는 함께 드리게 됩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립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 모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레 9:5-7)

모세는 아론에게 먼저 아론의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라고 하고, 이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가기 때문에 자기 죄에 대해 먼저 속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말씀대로 속죄제 송아지를 잡고 그 피를 제단 뿔들에 바르고 제단 밑에 쏟습니다. 그리고 속죄 제물을 제단 위에서 불사릅니다.

“이에 아론이 제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가져오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고 그 속죄 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고 그 고기와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니라.”(레 9:8-11)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레 9:15-21). 이렇게 아론이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또한 백성을 위하여는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나와서 백성에게 대제사장의 권위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여호와에게서 나온 불이 제물을 다 불살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제사를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이렇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이 제사가 끝날 때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행하는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민수기 6장에 나와 있는데, 한번 살펴볼까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4-26)

이 말씀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는 축복 말씀이죠? 신약의 축복 말씀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예배 때, 많은 목회자가 축도할 때 하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고린도후서에 나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κοινωνία, 교제)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성자의 은혜와 성부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축복합니다. 따라서 오늘 예배 때 축복 기도는 반드시 성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로운 축복의 말씀은 민수기의 ‘너’에, 또한 고린도후서의 ‘너희 무리’에 ‘모든 피조물’과 ‘생태 환경’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아론의 첫 제사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제사 전통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또 다른 새로운 제사를 소개합니다. 흠 없는 속죄제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한 사람의 피, 곧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4.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4a-17)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단 한 번의 속죄제를 드렸으니,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새로운 제사의 창조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수의 죽음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행한 희생적인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이룩하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먼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1-14a)

미치거나 정신이 온전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로운 제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강권하겠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강한 권면이 미래를 불태우는 지구촌 모든 나라와 사람들에게 미치기를 소망합니다.

5. 기후정의의 길, 탄소중립의 길, 녹색의 좁은 길

지난 2022년 9월 24일 오후 2시, 서울 보신각 터 앞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생명 문화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기후정의 주일’을 기념하여 연합예배를 드렸습니다. NCCK는 기후정의 실현을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2021년 제69회기 4차 실행위원 회의를 통해 ‘세계 기후 행동의 날(매년 9월 25일)’ 직전 주일을 ‘기후정의 주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이날 연합예배는 작년의 결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기후정의 주일 연합예배 NCCK 이홍정 총무 인사말

NCCK 이홍정 총무는 인사말을 통해 기후정의의 재난 속에서 탐욕의 질주를 멈추고 성찰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잠시 인사말을 들어볼까요?

“인간의 탐욕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며 이룩한 문명에 조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의 재난 속에서 ‘멈춰라! 성찰하라! 돌이키라!’라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명령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탐욕의 질주를 멈춰라, 생명의 복음의 빛 아래서 성찰하고 회개하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돌이키라는 최후의 통첩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 상황을 분석하고 욕망의 열차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진보와 성장의 이름 아래 독점과 사유화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자연을 희생시켜온 ‘문명의 야만’이 끝내 기후정의를 파괴하고 생명의 위기를 초래했으며, 미래의 일곱 세대가 누릴 지속가능성을 파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 인류적 생태적 회심을 통해 진보와 성장이라는 욕망의 열차에서 내려와야 하고 생태와 경제를 통전시킨 생명 살림살이로 문명사적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재창조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재창조의 기회를 위해 새로운 출애굽의 길을 몇 가지 제시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출애굽의 길은 기후정의의 길, 탄소중립의 길, 녹색의 좁은 길이며,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와 자연이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창조생명공동체’를 재창조하기 위한 생명 선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기후정의의 길은 신앙고백의 길, 참회의 길, 생명 평화의 길, 지구 생명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며 창조 세계를 재창조하는 실천의 길입니다.”

또한 기후정의행진은 2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진행하였습니다. 기후정의행진은 전국 곳곳에서 모인 400여 개 단체와 수만 명의 시민으로 구성됐습니다. 청년, 노동, 장애, 농민 등 각 부문을 대표한 단체들도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검은색 유모차에 어린 자녀들을 태우고 함께 행진에 참석한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후정의를 위한 발걸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 기후정의행진 집회와 행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제사는 흠 없는 송아지의 속죄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인한 제사입니다. 지금 피조 세계가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제 우리는 모두 인류와 자연이 상호의존하는 창조 생명공동체를 재창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후정의 실현이며 사람이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제사이자, 새로운 예배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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