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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사건의 운동 방향의인론의 관점에서 본 치유 ⑶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10.08 16:23
▲ 평생 바르트의 책상에 놓여 있었다고 하는 이젠하임의 제단화 ⓒGetty Image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 낯선 의가 우리의 것이 되는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가 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비극적인 운명과 저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처리하고, 대신에 그의 의와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교환

바르트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이 화해의 사건은 고린도후서 5장 18-21절에서 언급된 바대로 하나님 자신에 의해 진행된 하나의 ‘교환’을 통하여 성취된다(CDⅣ/1, 75이하).(1) 죄된 인간을 높이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낮아진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얻고 새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자리에 서고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운다.

한편으로 이 교환은 하나님이 “죄인들과의 완전한 연대”를 받아들이면서, 이 사람의 죄를 떠맡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 교환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떠맡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과 또한 사람의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돌아선 것을 의미한다(CDⅣ/1, 67-78). 이 교환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된 본성은 그리스도에게 부과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는 객관적으로 제거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화평케 된 것이다.

이렇게 죄인의 상황에 하나님이 참여하고,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가 되기 위하여 사람과 하나가 되고, 그들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유죄 선고를 받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하나님의 바로 이 행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로써 의인이 일어날 수 있었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CDⅣ/1, 549-553).

이것은 바르트가 이레네우스, 나치안주스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시릴과 같은 위대한 헬라 교부들의 전통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인간이 되셔야 했는가 하는 성육신의 사건의 신비를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롬 8:1이하, 갈 3:13, 고후 5:21). 그리스도가 취하지 않은 것은 그의 치유하고,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힘입을 수 없기 때문에 성육신의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로부터 우리의 타락하고, 부패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춘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견해는 바르트에 의해 별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에 의해 “취해지지 않은 것은 치유되지 않는다”, 혹은 그리스도가 “떠맡지 않은 것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그들의 논의의 주된 요지는 바르트에 의해 전유되고 그의 독창적인 화해론으로 발전하였다.(2)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가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유죄 선고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무죄선고가 내려졌다. 하나님의 무죄 선고에 의해 사람은 그의 죄된 과거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그의 의인의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 그의 죄의 용서, 그의 의인은 돌이킬 수 없는 연속성 안에서 그가 동시에 죄인이며 의인이라는 이 이행, 이 역사로 이루어진다(CDⅣ/1, 568).

돌이킬 수 없는 방향

그러나 사실, 그의 실존의 매 순간마다, 하나님이 용서한 사람은 여전히 이전의 죄인으로 있다. 현재 그에게 일어난 의인은 언제나 그를 이 과거 속에서 찾아낸다. 하나님은 환자를 찾는 의사로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내버려둔 목자로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구주로서 그에게 온다. 그것은 불경건한 자들을 의롭다고 여기는 것(justificatio impii)이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 곧 무에서부터(ex nihilo) 혹은 모순으로부터의(ex contrario) 창조와 같다((CDⅣ/1, 574).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된 죄인인 그는 또한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된 죄인이다. 두 번째 용어가 첫째 것 보다 더 신중히 여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운동의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죄인은 그를 용서한다는 선고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이전의 그이지만, 그러나 그는 이미 장차 될 자이다. 의사에게 온 환자는 이미 치료가 되었다. 잃어버린 양은 이미 되찾아졌다. 세리와 죄인들은 주님이 그들의 식탁에 앉았다는 사실에 의해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이다(CDⅣ/1, 592). 죄인으로서의 그의 과거가 여전히 그의 현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의인으로서의 그의 미래도 이미 그의 현재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의 심판과 그의 선고에서 명백히 말한 약속의 효과이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인간의 약속과 희망들과는 반대로 확실하고, 정확하고, 충만하다. 이 점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약속하신 미래는 하나님의 “정확한 미래(futurum exactum)”(CDⅣ/1, 595)이다.

하나님이 약속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서, 그것의 성취는 아직 멀리 있지만, 이미 근접해 있다. 인간은 이미 장차 될 의인이다. 그는 단지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러하다. 그가 그의 과거에 의해서는 여전히 ‘완전한 죄인(totus peccator)’이지만, 그러나 그는 동시에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한 미래에 의해서 이미 ‘완전한 의인(totus justus)’이다(CDⅣ/1, 596).

미주

(1) 바르트는 이미 ‘선택론’(CDⅡ/2)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예정)을 ‘교환’으로 설명했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지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죽음과 지옥을 하나님 자신이 당하기로 예정한다. 그는 인간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자신을 저주받은 자로 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는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당해야 할 몫, 즉 저주와 죽음을 자신의 몫으로 삼는다. 그 대신 그는 인간이 받을 자격이 없는 몫, 하나님 자신에게 속한 몫, 곧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인간에게 돌리기로 결정한다. Kirchliche Dogmatik Ⅱ/2, 177 이하. 그러나 이 ‘교환’은 화해론에서 좀더 철저하게 해명된다.

(2) T. F. Torrance,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자」, 245. 헬라 교부들은 하나님의 성육한 아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취하면서 그 자신 안에서 그것을 치유하고 거룩하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모든 인간 존재들과 같이 죄를 범하는 대신에, 육신을 지니고 완전하게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유죄 선고하고, 그리고 그의 순종하는 아들의 신분을 통하여 우리의 불순종하는 인간 존재를 다시 본래의 하늘 아버지와 참된 아들의 관계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그러나 5세기 이후부터, 라틴 신학은 점차 이런 가르침을 거부하고,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받은 것은 우리의 타락한 인간성이 아니라 그것의 완전한 본래적인 상태 속에 있는 인간성이란 주장을 발전시켰다. 그 견해는 라틴 교회가 동방 교회에서 분리된 이래 머지 않아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수태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교리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라틴 신학은(피터 롬바르트와 같은 몇몇 주목할 만한 예외들이 있기는 하지만) “떠맡지 않은 것은 치유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우리로부터 취하지 않은 것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에큐메니칼 교회의 주요한 구원론적 원리를 거부하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거의 모든 개신교 신학은 특히 복음주의적 형식들 안에서(여기에 또한 마틴 루터와 같은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지만) 라틴 신학의 이런 행로를 뒤따랐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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