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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세계의 원리, 사랑새사람의 평범성(신 10:12-21; 롬 12:1-13)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0.13 00:56
▲ Balthasar van Cortbemde, 「The Good Samaritan」 (1647) ⓒWikipedia

신명기는 두 번의 십계명 사건 사이에서 출애굽 이후 역사를 회고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시고 또 많은 것들을 권고하고 명령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오늘의 본문은 그 권고나 명령들을 요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약은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앞의 많은 조항들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같이 요약하는 일은 계속되고 전해지고 최종적으로는 율법사와 예수의 대화에서 성서 전체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압축되기에 이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다시 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많은 규정과 법들을 주시며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음으써 그것들의 목표와 지향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야훼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가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섬기라는 까닭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행복’(토브)을 결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훼에 대한 명령들은 야훼 경외 내지 야훼 사랑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양자는 서로를 부분적으로 포함하기는 하지만 동일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야훼의 길을 가는 것과 그를 섬기는 것은 그 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그의 나라를 세움으로 약탈적 질서를 청산하고 생명과 생명이 공생하는 창조질서를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사자가 함께 놀 수 있는 세상이고 강하다고 억누르지 않고 약하다고 주눅들지 않는 평등평화의 질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모든 창조물들이 그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마음껏 실현하게 하십니다. 창세기 1-2장이 보도하는 대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의도된 질서입니다.

이러한 질서의 회복을 시작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고 경외할 때 우리는 현재의 왜곡된 질서를 대체할 창조질서를 볼 수 있고 그 질서의 회복과 도래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질서의 모습을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통해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학연, 지연, 혈연, 재산, 신체, 능력 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고 혐오하고 배제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사람 자체가 기준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자신을 내줄 수 있고 그를 자기와 동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가 모욕당하면 자신이 모욕당하는 것으로 여기시고 그에게 선을 베풀면 자신이 갚아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곧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판단은 공정합니다. 사람의 소유나 지위 또 남녜, 노소 등은 전혀 참고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과 세계가 불의 때문에 겪는 갖가지 고통들을 해소하려 하십니다. 억울함을 덜어주고 아픔을 고쳐주고 슬픔을 씻어주고 우울함을 밀어내고 활력을 채우십니다. 울부짖음이 환호로 찬양으로 바뀔 것입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등이 하나님에게서 지지자를 발견하고 그들 위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정의와 배려를 볼 것입니다.

신명기는 사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이처럼 풀어서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라면, 그의 길을 가라는 요구는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법은 이를 지시하고 있고 이를 따라 해석되고 실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의지하십니까? 사람 사랑 없는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일 수 없습니다. 사람 사랑은 하나님의 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길 위에 있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지으신 새 존재들입니다.

바울 역시 우리를 그렇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래되고 평범한, 그러나 앞으로 되어야 할 것이란 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교회를 대상으로 할 뿐입니다.

그가 말하는 한 몸으로서의 우리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각 지체들은 기능이 다 다르지만 서로 보충하고 어느 하나 없어서도 안되고 어느 하나가 아프면 전체가 아픈 서로 연결된 존재들입니다. 창조된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는 원리가 곧 사랑입니다. 창조세계의 내적 원리도 동일합니다.

사랑하면 너에게 거짓을 말할 수 없고
사랑하면 너에게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경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차이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속에 심어진 그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에서 만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랑으로 우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같은 사랑의 훈련장이 되기를 빕니다.

창조질서가 회복되고 창조세계의 생명이 가득한 새세계로의 전환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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