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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개인의 축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말라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는가? ⑵
랍비 데이비드 프란켈/이성훈 | 승인 2022.10.13 15:11
▲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될 때 촛불을 켜며 축복을 나눈다. ⓒDepositPhothos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나누셨다(ויבדל)

만약 바예바라크(ויבדל)라는 단어가 정말로 원문이 손상된 결과물이라면, 본래 본문은 무엇으로 읽어 왔을까? 나는 아래의 이유로 본래 동사가 바이아브델(ויבדל), “그리고 그가 나누셨다”로 제안한다.

1. 맥락에 맞다 –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몇 차례 분리하는 행동을 하셨고, 바이아브델(ויבדל)이 사용되었다(4, 7, 14, 18절). 하나님께서 일주일에서 6일과 일곱 번째 날을 분리하심으로 우주 질서를 분리하는 그의 행위를 끝마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 분리와 성별은 자연스러운 한 쌍이다 - “분리”의 개념이 “성별”과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잘 어울리는데, 어떤 것은 구별되어 그것이 성별 되기 위해 한켠에 놓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위기 20장 26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누”셨고, 따라서 그들이 “거룩”해지기를 기대하신다. 이와 비슷하게, 모세는 모든 레위인이 똑같이 “거룩”하며, 그렇기에 아론 계열 제사장의 특권을 나눠야만 한다는 고라의 요구에(민16:3) 다음과 같이 말하며(민16:9-10) 응답한다.

다시금 여기에서도, 레위인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분리됨으로 거룩해졌다.

3. 제의적 용법 –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일주일의 세속적인 날들로부터 분리하셨다는 개념은 토요일 밤에 행해지는 전통적인 유대교 하브다라 예식(Havdalah, 안식일 등의 끝에 행하는 의식)에서 강조되는데,(베라코트 33a 참고, Berakhot, 미쉬나와 탈무드의 평론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당신은 구별되었고 거룩하게 되었다(הבדלת וקדשת)”는 구문이 토요일 밤으로 넘어가는 절기를 위한 키두시 예식(Kiddush, 안식일 식사 기도)에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나뉨과 성별이 자연스러운 한 쌍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쌍은 성경 안에도 나타나고, 성경 이후의 문헌에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4. 다른 독법과 잘 맞는다 – 제안된 독법의 타당성은 사마리아 오경, 70인역, 시리아 페쉬타(시리아 성경)에 있는 창세기 2장 2절 판본의 사용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이 아닌 여섯째 날에 그의 일을 마치시며, 많은 학자가 이러한 독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 형식으로 된 구절은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그의 일을 완료) 하셨다는 점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일을 중지) 하셨다는 점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 문장은 다음의 진술로 가장 멋지게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실수가 일어나는가?

필사자들은 단어들 사이 글자 모양의 유사함 때문에, 또는 그들의 눈이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또는 유사한 구절들의 간섭/혼동으로 인해 종종 필사 오류를 낸다. 이 경우에 바이아브델(ויבדל)이 바예바라크(ויברך)로 우연히 대체된 두 가지 이유가 그들 스스로 제시된다:

1. 철자법 – 정서법(正書法)으로 말하면, 그 두 단어는 비슷해 보인다. 둘 다 ו-י-ב로 시작하고, 네 번째 글자인 달레트(ד)는 레쉬(ר)와 매우 흡사하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사본과 마찬가지로 고대 팔레오-히브리어 문자(Paleo-Hebrew, 성서 원문을 기록할 때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문자)에서도 그렇다. 사실, 성경에는 필사자의 실수로 달레트(ד)를 레쉬(ר)로 착각하거나 그 반대의 예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카프(כ,ך)와 라메드(ל)의 일반적인 혼동은 없지만, 어떤 명확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 수많은 사례의 본문 손상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필사자들은 때로 교육받은 추론을 통해 명확하지 않은 본문들을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다루는 본문의 경우에, 본래의 달레트(ד)가 한 번 레쉬(ר)로 읽히고 나면, ויברך가 불명확한 단어라고 가정하는게 타당하다.

2. 앞선 구절들의 영향 – 창조 기록의 5일과 6일은 하나님께서 그가 창조하신 것에 복주셨다고 말한다. 이는 필사자가 본래의 바이아브델(ויבדל)을 필사하는 대신, 그 용어를 바예바라크(ויברך)처럼 보도록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십계명의 후대 개정본

앞서 언급했듯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신 또 다른 예가 있는데, 출애굽기 20장 11절에 나타난 십계명 본문이다. 다음과 같다.

이 전체의 문장은 신명기의 십계명 판본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부수적이다. 신명기 5장에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완전히 다른 이유를 발견한다(13-14절).

안식일 준수에 대해 갈라져 있는 이유 둘 다 안식일에 일을 삼가라는 기본 명령을 확장하고 있고, 두 개의 십계명 판본 모두에서 거의 정확히 똑같은 공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십계명의 초기 형태는 (안식일 준수) 명령만이 기록되었다고 추정해야만 한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 나오는 안식일에 첨가된, 즉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는 명백하게 제사장 문서의 창조 이야기 도입부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것과 밀접하다. 그러나 아마도 출애굽기 20장 11절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작성한 제사장 저자에 의해 기록되지 않았고, 십계명을 시내산 기사에 포함하였고, 단지 그것에 익숙했던 후대의 제사장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저자는 자신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제사장 창조 기사의 인용문에서 문구를 수정하기도 했다.

바다와 모든 피조물들

출애굽기 20장 11절의 저자가 창세기 2장 1절에 기록되어 있는 “하늘과 땅과 그들의 모든 배치가 끝났다(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 צבאם)”고 언급한 천지창조에 대해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את הים ואת כל אשר בם)”이라는 문구를 덧붙인 것은 분명히 의미심장하다. 왜 이것이 추가되었을까? 나는 그 문장은 아래와 같이 진술하는 창세기 1장 10절의 조망 아래에 추가되었다고 제안한다.

따라서 저자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싶었다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하늘과 에레쯔(마른 땅)와 그 모든 배치를 이루셨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 분명히 물과 물 속의 피조물들에 대한 언급을 추가했다. 그러나 창세기 1-2장의 저자는 분명히 이런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그의 독자들이 에레쯔는 (창1:1과 같이) “땅”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늘과 에레쯔”는 모든 피조물을 의미한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했을 것이다.

중지가 아닌 휴식 – 증가된 의인화

출애굽기 20장 11절의 저자는 “그가 일곱째 날에 쉬었다(וינח ביום השביעי)”고 진술한다. 대조적으로 창세기 2장 2-3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중지했다(שבת מכל מלאכתו)”고 진술한다. 이 차이점은 매우 중요한데, 일의 중지가 피로를 암시하는 휴식보다는 훨씬 덜 의인화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하나님께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이 의인화가 고조된 표현은 출애굽기 31장 17절에서 발견되는데, 이 구절은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일을 멈추고 숨을 돌렸다(שבת וינפש)”고 진술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로 결정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한 창세기 1-2장의 저자로부터 유래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따라서 나는 출애굽기 20장 11절이 창세기 2장 2-3절을 다시 언급하지만, 그 본문이 이전 필사자에 의해 우발적으로 손상된 후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창세기 2장 2절에 나타난 필사자의 실수, 바예바라크(ויברך)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후대의 성서 본문에 영향을 미치는 고대의 기록 오류는 드문 일은 아니다. 야이르 자코비치(Yair Zakovitch, 1945-현재)는 이미 본문 손상이 일어난 초기 성서 본문에 대한 상당한 양의 성서적 암시를 수집했다.

원본문의 중요성

여기에서 제안된 본문의 교정은 우리에게 안식일, 그리고 다른 종교 제의들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 진정으로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상기시킬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날을 다른 날과 분리하여 일상생활의 영역을 벗어나 하나님께 헌신하고 영적인 일을 하도록 하셨다. 세속적인(חול, 홀) 날들 속에 우리는 자신의 축복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안식일에 우리는 거룩의 영역에 있다. 이는 실제로 매일의 아미다(Amida, 유대교의 중심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간구(בקשות)의 전체 부분이 빠져있는 안식일 기도(Shabbat Amida)에 반영된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Abraham Joshua Heschel, 1907-1972)이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간 가운데 안식일은 하나의 섬이다. 우리는 이를 세속적인 개인의 축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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