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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성서냐 구약성서냐유대 성서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성서 이야기 (1)
이정훈 | 승인 2022.10.13 23:49
▲ 스위스 유대 박물관 모음 중 하나인 1962년에 출간된 히브리 성서 ⓒWikipedia

“Bible”(성서)라는 단어는 “책들”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biblia”에서 유래했다. 바로 이 이름에 의해 성서는 책들의 모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즉 권위를 가지고 있는 혹은 정경적인 책으로 간주되었다.

서로 다른 공동체, 서로 다른 성서

서로 다른 공동체는 서로 다른 성서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성서는 신약성서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다. 유대교 성서를 그리스도교 성서와 구별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성서를 지칭하기 위해 다양한 이름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형적으로 그 성서를 Old Testement(구약성서)라고 부르지만, 여기서 “testament”([구·신]약)는 계약(“covenant”)을 지칭하는 고대 용법이다.

이 명칭은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31,31-32)라는 예언에 기초해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구절을 예수가 중심이 된 새계약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했다. 즉 옛 모세 계약을 대치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신약”과 “구약”이라는 용어로 인도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원래 계약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여긴다.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면, 유대인들은 “구약”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유대인들은 이 문학을 단순하게 “성서”(the Bible)라고 칭한다. 종교적 유대인들에게, 이 명칭은 권위를 가진 “책들”(the books)이라는 정의가 적절할 것이다.

한편, 학계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어떤 계약이 유효한가에 대한 논쟁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학계에서는 “히브리 성서” 혹은 “유대 성서(들)”이라는 더 중립적인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분명히 첫 번째 용어는 약간 부정확한데, 왜냐하면 성서의 일부 구절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셈어 중 하나인 아람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유대적 이름들: 역사적 개관

1000년 이상 지속된 성서 시대 동안 기록된 본문에서 우리는 이 책 모음집에 대한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당시에도 성서는 권위 있는 모음집으로 여전히 형성 중에 있었다. 성서는 모음집이 완료된 후에야 명칭을 부여 받았는데, 이는 성서 이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세기 요세푸스(그리스어로 저술한 위대한 유대 역사가)는 그러한 모음집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책들을 Ta Hiera Grammata(타 히에라 그람마타, 거룩한 글들)라고 칭했다. 그는 또한 그것들을, 종종 “Scripture”(경전)로 번역되는, grammasi(그람마시, 기록된 것들)라고도 불렀지만 대문자를 쓰지 않는 것이 더 나은 “scripture”(경전)로 묘사했다.

고전 랍비 문학에서, 성서를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두 용어는 miqra(미크라, 문자 그대로 “큰 소리로 읽거나 낭독되는 것”)와 Kitvei Hakodesh(키브베이 하코데쉬, 거룩한 글들)였다. 때때로 랍비들은 성서를 “토라, 네비임, 케투빔”(Torah, Nevi’im, Kethuvim / 토라, 예언자들, 글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세 시대, 아마도 기원 후 첫 천년기 후반에, 서기관들은 “토라, 네비임, 케투빔”(Torah, Nevi’im, Kethuvim)을 두음문자어 “TANAKH(타나크)”로 축약했다. 하지만 오늘날 유대인들은 여전히 일반적으로 이 명칭을 성서에 사용한다. 유대출판협회(Jewish Publication Society)가 1985년 번역판 제목으로 “타나크”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은 다른 이름(“성서” 혹은 “거룩한 경전”)에는 없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번역자들이 히브리어(일부 그리스도교 번역본들과 같이 고대 그리스어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에서 직접 번역하고 유대 해석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본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현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히브리 성서”과 “구약성서”는 단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동일한 본문들을 담고 있지만 구성과 순서가 다르다. (순서의 문제는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는 맥락을 바꾸기 때문에 중요하다. 책의 의미는 읽고 있는 책의 전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히브리 성서”라는 용어는 자립적인 모음집을 의미한다. 반면에 “구약”은 그렇지 않다. (“옛”[舊]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에 대조되는 “새”[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에 있는 많은 구절의 의미는 신약성서를 포함하는 더 큰 전체의 일부로 볼 때 바뀐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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