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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심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교황을 향해 칼을 뽑아 든 루터의 논문
이정훈 | 승인 2022.10.16 15:14
▲ 의도치 않았지만 종교개혁의 시작이자 중심이 되었던 마틴 루터 ⓒGetty Image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매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이 독일 동부 지역 작센(Sachsen) 주 비텐베르그(Wittenberg) 성당문에 내걸렸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타락과 관련해 당시 수면 아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었던 종교개혁의 열망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이 반박문을 쓴 주인공이 바로 로마가톨릭 교회의 신부이자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부 교수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였다.

95개조 반박문과 종교개혁을 향한 열망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다음과 서문으로 시작하며 그 내용을 기록했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를 해명하려는 열정을 근거로 비텐베르크의 신부이며, 인문학부 및 신학부 교수 겸 비텐베르크 대학 정교수인 마르틴 루터는 다음과 같은 명제에 논쟁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인은 구두로 토론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직접 찾아오지 않더라도 서신을 통해서 토론에 참여해 주기를 당부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95개조 반박문의 내용을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다.

• 속죄에 대한 규정(1-4조)
• 교황의 사죄권의 한계(5-7조)
• 교회법이 부과한 속죄와 연옥 영혼에 대한 구원문제 취급(8-29조)
• 면죄와 참회 그리고 사죄문제(30-40조)
• 면죄부의 구입과 면죄 시행의 남용(41-52조)
• 면죄 설교와 복음 설교의 가치 비교, 교리의 보화, 면죄부 판매 설교의 과장 등(53-80조)
• 면죄부 남용에 따른 신자들의 질문과 면죄 시행에 대한 공박(81-91조)
• 십자가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의 생활(92-95조).

이 95개조 반박문 게시 사건은 당시 유럽에서 루터를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부각시켰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의 중심에 루터를 위치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예상치 않았던 유럽 사회 종교개혁에 대한 관심은 로마 교황청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 결과 한편으로 로마 교황청은 종교개혁의 중심에 서게 된 루터를 다양한 논쟁들과 인물들을 통해 회유시키기 위해 시도한다. 또 다른 한편 루터는 더욱 확고하게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붙들도록 만들었다. 루터는 자신에 대해 계속되는 공격과 논쟁들 속에서 종교개혁자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교황청의 반발과 루터의 응수

로마 교황청은 루터를 설득시켜 종교개혁의 열망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시도에 실패하면서 결국 1520년 6월 15일 교황의 파문위협교서인 “주여 일어나소서(Exsurge Domine)”를 공포하기에 이른다. 이 교서는 루터의 글에서 발췌한 41개 문장을 이단적이고 로마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모순된 것으로 정죄했다. 60일 내에 취소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파문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적인 상황 속에서도 루터는 종교개혁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변화를 열망하는 유럽 사회의 분위기와 중세 1000년이 넘는 동안 쌓여 온 엄청난 학문적 담론들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성서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교리적인 허상 뿐만 아니라, 교황제도에 대한 실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면서 교회 권력이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가를 직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멜란히톤의 학문적인 후원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거대한 교황 권력에 맞서 자신의 소명을 묵묵히 감당했다.

특별히, 이렇게 급박했던 1520년에 루터는 극심한 정신적인 갈등 속에서도 로마 교황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중심적인 원리로 인식될 수 있는 세 개의 논문을 작성한다: 루터는 독일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 der Weise)의 보호 속에서 1520년 8월 18일에 먼저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한다. 이어 1520년 10월 6일에 『교회의 바벨론 포로』 그리고 1520년 11월 20일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발표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논문들은 "철로 만든 칼과 창이 아닌 부드러운 깃펜(Schreibfeder)"으로 교황 제도에 대해 역사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글이라고 평가된다. 그에 반해 세 번째 논문은 앞선 것들과 성격이 다르게 교황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없이 매우 논리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풍성한 성서 구절들을 인용하여 매우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루터의 저작들 중에서 가장 탁월하게 평가받고 있는 평화의 문헌이다.

루터의 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작센 주의 귀족 출신이자 교황의 시종인 칼 폰 밀티츠(Karl von Miltitz) 추기경의 중재 속에서 쓰여진 것이다. 밀티츠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로마 교황청과의 갈등을 차단하기 위해 루터를 설득해 교황 레오 10세(Leo X)와 개인적인 접촉을 하도록 했다. 종교개혁을 열망했지만, 로마 교황청과 단절을 직접적으로 원치 않았던 루터 역시도 자신의 종교개혁 사상의 중요한 핵심을 교황에게 화해적인 의도를 담아 직접적으로 표명할 좋은 기회로 보았다.

부드러웠지만 칼이 숨겨져 있었다

루터는 이 논문에서 교황에게 “가장 거룩한 아버지(pater beatissime)”라는 칭호와 함께 과분할 정도의 예의를 갖춘 공개서한(Epistola Luteriana ad Leonem decimum summum pomtificem)과 라틴어로 쓰여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첨부해 로마 교황청에 전달한다. 루터는 이 논문이 교황의 파문위협교서 때문에 쓰여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저술날짜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표기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점이다. 루터는 자신의 논문이 그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기 위해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 1520년 9월 6일을 수기한 것이다: “Vuittenbergae sexta Septembris, 1520”.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라틴어판과 함께 독일어판을 동시에 출판했다. 이 논문은 교황의 대리자로서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히에로니무스 알레안더(Hieronymus Aleander)와 탁월한 언변으로 유명했던 잉골스타트(Ingolstadt) 교수인 요하네스 엑크(Johannes Eck)에 의해 1520년 9월 21일 독일에 알려졌다. 그러나 독일어 판에는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대신에 츠비카우(Zwickau)의 시장이 된 헤르만 뮬포르트(Hermann Mühlphordt)를 위한 헌사가 수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루터와 교황 레오 10세 사이에 극적인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터가 보낸 공개서한이 교황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없었지만, 성서적인 근거를 들어 교황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관련해 매우 자극적이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교회-교리사적 측면에서 교황의 수위권과 성서의 독점적 해석권을 비판하며 근본적으로 교황제도를 부정한 것이다.

루터는 레오 10세를 이리들 가운데 있는 양으로 두둔하면서도 로마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의도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에도 메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외친 것이다. 루터에게서 화해의 글이 쓰여지기를 기대했던 밀티츠는 크게 실망했다고 전해진다.

교황에게 보낸 루터의 마지막 화해의 편지가 로마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시켰기 때문이다. 아마도 루터는 처음부터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공격적이지 않고 예의를 갖추되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만족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루터의 공개서한과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레오 10세에게 직접 전달되었는가에 대한 의문도 풀린 것이 아니다. 루터의 노력은 처음부터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을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 있다면, 로마 교황청이 1521년 1월 3일에 루터에 대한 파문교서인 “로마 교황의 선언(Decet Romanum Pontificem)”을 공포했다는 점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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