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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것을 버릴 수 있는 신앙아브라함(창세기 17,1-8; 누가복음 3,7-14)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10.20 15:08
▲ James Tissot, 「Abraham's Counsel to Sarai」 (1900) ⓒWikipedia

아브라함은 그 큰 이름에 비해 이렇다 할 특징을 보여주지 않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는 당시 자기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 남다른 면모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를 끝까지 견지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평범해 보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 아버지 데라와 함께 이주를 한 것은 그가 효심이 상당히 컸던 사람임을 짐작케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이를 뒤집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아버지 데라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를 계속합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에도 친척인 롯을 두고 가지는 못했습니다.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함에도 다른 데 눈길을 돌리지 않았으니 사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지극했을 법합니다. 그러나 사라 때문에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 때 그는 사라를 포기할 생각을 했고 실제로 위기가 닥치자 그렇게 합니다. 사라의 청에 따라 하갈을 맞아들이기도 합니다. 롯과 헤어진 다음에도 아브라함은 롯에 대해 집착이라고 할 정도의 애정을 보입니다. 오락가락하는 일이 많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런 그에게 정말 특별한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물론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그는 크게 당황하고 고민하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멈추게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한 길로 갑니다. ‘하나님,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만한 상황인데 그러지 않았으니 여기의 그는 우유부단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었던 그 이전의 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게 그가 달라진 모습이라면, 이러한 그의 변화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너무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형태는 달라도 유사한 경우에 놓이는 경우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그와 같은 변화를 오늘의 말씀은 어쩌면 내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 사건 이후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오늘의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고 온전해라!” 무슨 말씀일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나 산 것은 아니었어도 그 앞에는 늘 다른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보통 이주자들이 꿈꾸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일까요? 롯을 떠나지도 못하고 하갈을 맞아들인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를 잇고 싶은 간절한 마음일까요? 이것들이 지금까지 그의 삶을 이끌어온 동력들일 것입니다. 이것들은 아브라함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내 앞에서 살라는 말씀은 그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명령에 이어 그에게 자손의 번성과 영원한 유산을 약속하시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은 그가 꿈과 삶의 동력으로 삼고 있던 것들을 포괄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궁극적인 것들이 아닌데 그것을 목표로 살 수는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예수의 말씀을 빌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염려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더해질 것이다.” 이렇게 해방된 삶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우리 삶의 자리가 옮겨지고 이러한 모습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명령 다음에 ‘온전하라’는 요구가 더해집니다. 하나님 앞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도 그것이 지속적이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여전히 이전의 욕구들이 크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하라는 말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라는 말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지식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자기의 영역을 확대해가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를 멈추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역사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십니다.

그 역사를 하나님 앞에 두심으로써 그 역사에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는 역사 안에는 사람이 있고 자연이 있고 평화가 있고 정의가 있을 것입니다. 미래 세대에는 새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 때문에 신음하는 세계가 그 고통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명령은 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지만 그 명령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명령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버려지고 맙니다.

세례 요한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시대의 어둠을 뚫고 큰 소리로 울려 퍼집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를 찾아와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그에게 왔습니다.

누가 봐도 그런 자들이나 하고 알 수 있는 모습의 그들도 요한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만 아브라함의 자손인양 그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독사 새끼들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회개에 걸맞는 열매뿐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살며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보장해주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는 그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돌 같은’ 사라에게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나오게 하셨고 있을 수 없는 일처러 보였지만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방인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도 받고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온전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가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이 파국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온전히 살아냄으로써 세상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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