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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꾼의 창조! 다시 일어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강하고 담대하라!(수 1:1-9 살전 3:1-10 마 9:18-26)창조절 여덟째 주일/이단경계주일(10월23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10.20 22:36

1.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다!

창조절기라 설교 제목을 계속해서 ‘새로운 창조’라는 틀에 맞춰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새로운 일꾼의 창조입니다. 먼저 구약 여호수아 말씀은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를 새로운 일꾼으로 창조하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은 이단경계주일인데, 교회는 좋은 일꾼, 참된 믿음의 일꾼, 그리스도의 일꾼을 잘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단은 결코 나 자신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의 귀한 일꾼, 그리스도의 진정한 일꾼이 되면 결코 이단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복음서 말씀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간절한 믿음이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그녀는 고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마도 주님의 새로운 일꾼이 되어 남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일꾼은 예수님을 통해 병 고침 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이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한 관리의 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권세에 눌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납니다. 새로운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혈루증을 앓는 여인과 한 관리의 어린 딸은 새로운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신서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디모데를 파견하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형편을 살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합니다. 이렇게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 아들로, 교회를 살피는 새로운 일꾼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금 새로운 일꾼으로 창조되고, 또한 창조주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다시 발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 여호수아를 후임자로 축복하는 모세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 1:1-4)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 이후,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일어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가만히 살펴보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이스라엘이 자기 능력으로 빼앗은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땅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땅과 이스라엘이 공동운명체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시작부터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과 함께 두 가지, 곧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이제 모세를 이어 새로운 일꾼인 여호수아에게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없는 땅’과 ‘땅이 없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자가 쓸모없이 버려진 ‘황무지’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민’, 혹은 ‘나그네’, ‘난민’입니다. 또한 성경은 ‘사람들이 사는 땅(Peopled Land)’을 이야기합니다. 신명기 말씀에 모세가 출애굽 2세대에게 축복의 말을 할 때, 말씀과 계명을 지키면 ‘네 몸의 소생’과 ‘토지 소산’의 축복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둘, 곧 땅과 사람이 떨어지는 것은 포로와 노예와 같이, 정상적인 삶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는 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땅 없는 이들이 땅을 갖게 될 것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5-7)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묵상하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형통할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8-9)

땅과 사람은 결국 무엇으로 연결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기초하여 새로운 일꾼은 먼저, 강하고 담대하여야 합니다. 사명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 디모데와 바울, 그리고 현재 데살로니가의 드리트리우스 교회

둘째로 새로운 일꾼은 교회의 형편을 살피는 사람입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디모데를 파견했는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 3:1-3)

새로운 일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바울이 그렇죠?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의 형편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 진정 새로운 일꾼입니다. 오늘 바울의 권면을 받은 디모데가 그렇죠?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도록 격려하러 데살로니가 교회로 갑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살전 3:4-7)

종말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바울은 장차 받을 환난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환란과 궁핍 가운데 믿음으로 잘 견디는지 걱정이 되어 디모데를 보낸 것입니다. 말씀에 보니,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시험하는 자가 있습니다. 오늘이 이단경계주일인데, 이단들이 교회 일꾼들의 수고를 헛되게 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과 사랑으로 그 위기를 잘 극복하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잘 지켰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일꾼은 믿음 안에서 굳게 서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살전 3:8-10)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서로 간에 부족한 믿음을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새로운 일꾼입니다.

3.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셋째로 새로운 일꾼은 낫겠다는 믿음과 다시 살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서 혈루증 여인과 죽었다 다시 살아난 소녀가 바로 그 예입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 알렉산드레 비다, <혈루증 여인>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 9:18-22)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라고 합니다. 어떤 말씀인가요? 바로 앞 말씀인 17절을 볼까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가죽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이 말씀을 하실 때 한 관리가 찾아오고, 또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게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일꾼은 누구냐 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 말씀에 혈루증 앓는 여인의 믿음이 그녀를 병으로부터 낫게 하고 마침내 구원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새로운 일꾼이 탄생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이번에는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소녀가 새로운 일꾼으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예수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마 9:23-26) 

사람이 자기화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화’라는 말은 사람이 소유하여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인식은 늘 대상의 차원을 하나씩 줄여서 자기화하여 이해합니다. 가령 4차원의 시간을 이해할 수 없으니, 2차원의 평면인 시곗바늘로 차원을 줄여 이해하고, 3차원의 높은 산과 무서운 짐승을 2차원 평면의 그림으로 한 차원을 줄여 인간이 이해하고 정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곧 타자와 죽음은 자기화할 수 없습니다. 곧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내 맘대로 못하기에, 또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정치와 법, 윤리와 도덕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내 뜻대로 할 수 없기에 그것을 극복하고자 ‘제사’라는 문화를 통해 나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이 나를 기념하는 것으로 죽음을 극복합니다. 유교가 그렇죠? 그러나 기독교는 부활 신앙으로 죽음을 극복합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죽었던 소녀의 손을 예수님께서 잡으시니, 소녀가 다시 자다가 다시 일어납니다. 첫 번째 사망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집니다. 기독교 신학은 사망을 둘로 나눕니다. 첫째 사망은 의학적인 죽음이며 이 땅의 사람이라면 모두 해당이 되는 죽음입니다. 두 번째 사망은 영적인 죽음, 곧 영벌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칭 유대인(그러나 실상은 로마와 결탁한 사탄의 회당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을 받던 서머나 교회 교인들에게 사도 요한은 두 번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계 2:11)이라 권면하며 용기를 주는데, 오늘 예수님은 지금 당장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립니다. 소녀는 첫 번째 사망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소녀는 부활의 증거가 되어 새로운 일꾼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새로운 일꾼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사망과 질병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 바울과 디모데처럼 교회의 형편을 살피는 새로운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새로운 일꾼이 되어 하루하루를 능력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질병이 낫겠다는 믿음, 그리고 다시 살 것이라는 부활의 소망을 갖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참다운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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