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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개인화예상치 못했던 질병 일기 (1)
정리연 | 승인 2022.10.2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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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내 몸이 낯설다

지하철 환승 통로를 걸어가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서럽고 속상해서 입에서는 엉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연은 이렇다.

곧 삼각지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아뿔싸! 그제서야 깨달았다. 중간에 앉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떡한담. 뭔가를 잡고 지탱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종점까지 그냥 가야 하나? 아니면 옆 사람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내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나? 라는 웃픈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살이 5-6kg이 빠졌는데 허벅지의 근육과 지방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뛰는 건 시도조차 할 수 없었고(얼마 전, 초록 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아무 생각 없이 뛰어서 건너려다가 발이 움직이지 않아서 넘어졌다) 계단이나 보도블럭 턱 한 칸 오르는 것도 손잡이나 기둥을 잡아야만 가능했다. 그에 비해 계단을 내려가는 건 큰 힘이 들지 않았다. 다만, 다리가 풀릴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하지만. 평지를 걷는 것도 힘든 정도니,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누군가가 잡아서 도와주거나 고정되어있는 뭔가를 잡아야 했다.

그런데 지하철 의자 특성상 가장자리가 아니고서는 뭔가 잡을 게 없었다.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중간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당혹스러웠다. 내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다리와 허리에 힘을 줘도 몸이 들려지지 않았다. 두 손바닥을 의자 바닥에 대고 온 힘을 다해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휴우, 안심한 순간! 다리에 힘이 없어서 중심을 잃고 몸이 앞으로 쏠리더니 "어! 어~엄마야!!"하면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어머,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했더니 그 사람도 당황했을텐데 오히려 "아이쿠, 괜찮으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지하철역은 위험해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내리면서도 넘어질 뻔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넘어진 게 이번만이 아니다. 횡단보도 건너려다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밥 먹고 계단 오르다가, 아파트 계단 내려가다가, 집 안에서 등. 철퍼덕! 쿵! 꽈당! 다섯 번은 되는 거 같다.

내 몸을 왜 내가 조절할 수 없게 된 거지? 넘어져서 창피한 것보다 서럽고 뭔가 원망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꺼이꺼이 울면서 환승역을 향해 걸어갔다. 아마도, 이러는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실연당한 여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앗, 계단이 나왔다. 저기를 올라가야 하는데, 자신 없는 나는 계단 밑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다른 출구 쪽으로 가봤지만 허탕이었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 눈에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내가 여기저기가 아프고 좋지 않다는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었다. 나만 느끼는 거니까.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닐 수도 없잖은가. 어쩔 수 없이 계단 난간을 잡고 한 칸씩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의 힘이 아니라 팔의 힘으로 계단을 오른다고 하는 게 맞다. 얼마 전까지 성큼성큼 오르던 계단인데 너무 낯설고 높았다. 계단 오르는 게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북한산 오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튼, 무사히 계단 정상에 올랐고 거기에 집중하느라 막무가내로 흐르던 눈물이 멈췄다.

이 사건 후로 서울은 물론이고 동네 이외의 곳으로 나갈 생각을 못 했다. 거의 지하철로 움직이는데 계단도 많고 걷는 양도 상당하기 때문에 덜컥 겁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에큐메니안 식구들이 배려해주셔서 한 달간 취재 일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가뜩이나 인력이 없는 상황이라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너무 힘든데, 설명하기 힘들어

추석을 앞두고 엄마가 오셨다. 마중을 나갔는데 엄마가 나를 보시더니
“너 맞았냐?“ 물어보셨다.
"뭐? 누구한테 맞아? 얼굴에 멍들었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아니, 뭐 맞았냐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따, 얼굴에 보톡스 맞았냐고야!! 얼굴이 팅팅 부었는디?" 하시는 거였다.
"아니, 그런 적 없는데" 하면서 바로 알아듣지 못한 내가 우스워서 함께 막 웃었다.

그러고 보니, 9월이 며칠 남지 않은 때였다. 갑자기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텁텁했다. 몸 안에서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얼굴이 붓고 체력이 확 떨어졌다. 원래의 20%만 남은 느낌이었다. 뭘 먹어도 음식 맛을 잘 모르겠고 그런 종류가 아닌데도 입맛이 짰다. 며칠 사이에 체중이 확 줄더니 튼실했던 허벅지가 양손으로 잡으면 공간이 남을 정도가 되었다. 다리에 큰 돌덩어리를 묶은 것처럼 너무 무거웠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걷는 게 힘들었고 다리를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서서 한 발로 서 있을 수 없어서 바지를 입거나 벗을 때 침대에 걸터앉아서 해야 했다. 그때도 힘이 없는 다리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두손으로 들어야만 했다. 몸에서 뭔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유럽에서 너무 싸돌아다녀서 탈진한 거라고 했다. 하긴, 38도가 넘는 가장 더웠던 시기에 하루에 250만보 이상 걸어 다녔었다. 다녀와서도 엄마와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 즐겁고 낭만스러웠던 여행을 몸의 아픔과 연결하기는 싫었고 그게 이유라고 하기엔 증상이 좀 심했다. 그렇다면 뭘까? 내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네? 당, 당뇨라고요?

마침 9월에 건강검진 예약이 되어 있었다. 몸의 이상 증상이 나타난 일주일 정도 후였다. 검사를 마치고 잠(수면 위내시경)에서 깨어난 후 진료실에서 원장님을 만났다. 좀 심각하게 컴퓨터 화면을 보시더니 혈액 검사를 더 정밀하게 다시 하자고 하셨다. 이유는

“당뇨 증상이 있네. 지금 혈액 검사 다시 하라고 했으니까 이십 분 후에 결과 나올 거예요. 혈압도 좀 높고. 비만도 아니고 식습관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흠... 혹시 가족력이 있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한 나는 멍..하게 있다가
“네, 아빠가 당뇨 있었고 고혈압은 부모님 모두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13년도에 임신성 당뇨가 있었어요.”
“아, 그렇군. 이런 게 유전적인 요인을 무시하지 못해요. 그리고 임신성 당뇨 후 5년 후에 당뇨가 발생할 확률이 있어요.”

‘아이쿠! 뭐라고? 왜 모르고 살았지? 이런!’

“그건 그렇고 위내시경 결과도 안 좋네. 위랑 소장이랑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위궤양이랑 역류성식도염도 너무 심하고 출혈도 많고. 위험해. 오늘 조직 검사 보내면 다음 주에 나와요. 약 먹으면서 관리 잘해야겠네. 6개월 후에 위내시경 다시 하고요. 우선 당뇨랑 혈압약 먹고 일주일 후에 오세요.”

질병이 삶 속으로 찾아오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는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안 됐다. 원장님이 말씀하시기를, 당뇨가 입을 마르게 하고 근육과 좋은 지방을 다 빠지게 한다고 한다. 내 몸에 나타난 여러 증상 중 대부분이 당뇨로 인한 증상이라는 거다. 건강이라면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체력만큼은 자신했다.

시골 출신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들이나 산에서 뛰어놀면서 나도 모르게 갈고 닦인 축복(?)이라고 생각해왔다. 특별한 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평소에 많이 걸었고 집에서도 스트레칭 정도는 했다. 그동안 별로 아픈 데도 없어서 병원 다닐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환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음식? 보통 당뇨! 하면 바로 떠올리는 게 달고 짠 음식과 탄산, 음주이다. 나는 누군가 까탈스럽다고 할 정도로 가려 먹는 편이었다. 육류는 아이들만 먹이고 나는 어쩌다가, 모임에서만 가끔 먹었고 대부분 채식이었다. 탄산이나 가공 주스, 아이스크림은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달걀프라이에 소금을 뿌리지 않을 정도로 나트륨은 멀리했다. 집에 아예 소금이 없다(라고 쓰는 동시에 과자나 빵은 좋아하는 게 생각나네). 커피도 뭔가 들어가지 않은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음주도 어쩌다가 맥주 한 잔이 전부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당뇨와 고혈압에 위 문제까지!! 한꺼번에 몇 개가 터진 거야~

“네 번재 유형은 질병의 개인화다. ‘저렇게 살았으니 아프지’라는 식의 말이 여기에 속한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에서 찾고 자기 관리의 실패로 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앞에서도 지적했듯 질병의 귀책을 철저히 개인에게 돌린다. 과거에는 질병을 신이 내린 형벌로 여겼으며, 요즘은 생활 습관이 나빠 질병이 왔다는 믿음이 강력하다. 실제로 중증 질병을 진단받을 때 노년층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라고 반응하며, 청년층은 ‘어떤 습관이 문제였을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양쪽 모두 아픈 사람이 자책감을 갖는다는 공통점이 있다(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69-70쪽)

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증상을 말하기가 두려웠다. 모두 “이제 마흔세 살인데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당뇨에 걸린거야?”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우선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괜찮아질 때까지 그냥 관리하면서 남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건 일시적인 증상일 거야. 요즘에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시간이 좀 흐르면 모든 게 정상(?) 수치로 돌아올 거야’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후로 한 달 후, 이 모든 증상을 일으키게 한 이유가 밝혀지는데!!

(마지막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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