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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콜로니얼 시대와 신제국주의공공신학과 인식론적 패러다임 (2)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2.10.22 02:10
▲ 1912년 콩고에서 찍은 상아 사진 ⓒWikimediaCommons
정승훈은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미네소타 루터신학대학 부교수를 역임 후 시카코 루터 신학대학원 석학교수로 임명되었다. Historians’ Debate-Public Theology 사이트 저널 편집장으로 서구 사회에서 미디아의 담론과 정치전략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공공신학은 신체정치학에 관여한다

미국의 학계에서 역사논쟁에 불을 붙인 사회철학자 토마스 맥카티에 의하면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의 신제국주의는 신-인종 차별주의로 확산된다. 이것은 이전 식민지배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인종분류와는 다르다. 신-인종차별은 권력과 구조에 의해 매개되며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다루어진다(McCarthy: Race, Empire, and the Idea of Human Development, 7).

역사의 세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본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은 아프리카 분할정책에서 볼 수 있다. 유럽열강들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충돌을 피하기위해 비스마르크 주도하에 베를린 회의(1884-85)를 주재하고 유럽중심의 자유무역과 문명선교를 기획했다. 벨기에의 레오 폴드 2세는 유럽의 열강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문명선교 프로젝트를 콩고자유 무역국가에서 시도하려고 했다. 겉으로는 콩고의 노예무역을 철폐하는 명목이지만, 결과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은 레오폴드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1885년 콩고 자유국가를 레오폴드 개인재산으로 허락했다. 이제 콩코는 모든 국가들이나 개별 자본가들을 위한 자유 무역지역으로 남게된다. 1890년 공기주입 타이어가 발명되고 거친 도로를 별다른 저항없이 갈 수 있게 되었다. 타이어를 생산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선 자연산 고무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레오폴드는 수익을 짜내기 위해 유럽의 개별회사들에게 콩코에서 자연산 고무를 추출할 수 있는 권한을 허용했다. 1891-2년 사이에 레오폴드는 콩코 자유 지역의 모든 땅과 원료들을 환수하고 세 구역으로 나누었다. 개인소유의 영역은 국가재산으로 귀속되고, 개별 자본가들의 기업투자가 허용되었다.

경제착취를 위해 무장 경비대들을 동원해서 흑인 노동자들에 대한 신체정치적 폭력이 공연시되었다. 경비대는 1885년에 조직되었고 백인 관리들과 흑인노예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모집된 군인들로 구성되었다. 콩고 상류 지역에 영국-벨기아 인디아 고무회사가 설립되면서 엄청난 자연산 고무채집이 원료가 고갈될 때까지 14년간(1892 –1906)이나 지속 되었다.

자유무역 영역에서 유럽의 개별 기업가들은 독점계약을 가지고 상아와 고무채집을 10년에서 15동안 할 수 있도록 용인되었다. 개별회사들은 부족의 지도자들의 부역을 통해 자연산 고무를 채취하고, 식민지 막사들을 설치하고 유럽의 관리자들을 파견했다. 무장 경비 대가 막사주변에 설치되고 반란이나 폭동을 진압했고 하루 고무 채집량을 검열했다.

콩고부족의 촌락들은 유럽의 관리자들과 경비대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도록 강요당했다. 비협조적인 부락의 지도자들은 고분고분한 자들로 대치되고, 이들이 부락을 지배했다. 이것은 지역문화와 지배제도를 연결짓는데, 최근까지도 콩코의 부족의 정치를 이들이 지배해왔다. 유럽의 관리자들은 무장대원들과 함께 아프리카 부락민들의 구금과 고문 그리고 심지어 살해를 마다 하지 않았다.

회사가 고무 채집량을 정하면 부락민들은 두 주 간격으로 4킬로 정도가 되는 필요한 채집량을 전달해야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처벌과 구금, 강제노역 그리고 채찍질이 뒤따르거나 폭력이나 강간 아니면 죽음을 당했다. 식민지 신체정치학은 천 만명의 콩고인을 죽음으로 몰아놓았다. 살해정치가 식민지배의 사회전체로 스며들고 공포의 확산과 함께 무제한 원료 착취시스템과 인종차별이 강화되었다(David Van Reybrouck: The Epic History of a People).

헤겔의 인정투쟁은 식민지 상황에서 십자군전쟁처럼 나타나고 신체정치학은 결국 원주민 살해로 막을 내린다. 변증법적 매개가 끝나는 지역에서 식민주의 정치학이 등장한다. 변증법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식민지배가 변증법적인 현실임을 파악하는 비판이론이다. 그리고 사회안에서 매개가 사라지는 곳에서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은 대학살로 막을 내린다.

어둠의 마음은 유럽인의 마음이다

조셉 콘라드(1857-1924)의 소설 “어둠의 마음”(Heart of Darkness)은 문명선교가 식민지에서 악의 마음으로 변질되는 것을 폭로한다. 이것은 콩코의 자유국가에서 나타난 공포를 다룬다. “어둠의 마음”은 영국문학에서 위대한 작품의 하나로 꼽히며, 미국의 대학에서 식민지 문예비평을 다루는 분야에서 교과서로 꼽힌다.

그러나 1977년 나이지리아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는 콘라드의 소설이 철저한 인종차별을 담고 있고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었다고 비난했다(Achebe, “An Image of Africa” in Things Fall Apart, 169-81).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는 콘라드의 작품을 옹호했다. 인종차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이드는 콘라드의 제국주의 비판에 주목하고, 제국과 식민지의 상호관련의 네트워크를 통해 제국주의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콘라드는 다음처럼 쓴다: “아프리카인들은 이상한 큰 신음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며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을 전율하게 하는 것은—당신처럼—인간성에 대한 생각, 다시 말해 당신의 먼 조상도 이러한 거칠고 열정적인 소동과 관련 있다는 데 있다. 추함-그렇다. 그것은 정말로 추하다. 그러나 당신이 인간으로서 충분하다고 해도 당신 안에 이러한 소음의 흔적이 희미하게 있음을 인정해야한다.”(Joseph Conrad: Heart of Darkness, 36).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기인한다. 콘라드의 표현에서 인종차별적인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그는 반식민지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있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부패한 유럽의 문명 선교의 이름 아래 희생자가 되었음을 고발한다. 유럽의 악은 콘라드의 소설에서 부에 대한 탐욕과 약탈 그리고 고문에서 폭로되며 아프리카인들은 상아를 채집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당했다.

사실 위험과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공포는 아프리카 오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의 식민주의적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포스트 콜로니얼 문예비평에서 콘라드의 식민주의 비판은 여전히 중요하며 인종문제는 제국주의 비판과 맛물려 다루어진다. 여기서 백인주인은 신격화되고 흑인 노예는 이를 섬기다 사라지는 소모품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물신 숭배는 식민지배에서 백인신격화로 이행되며, 흑인 노예는 소모적인 상품으로 전락한다.

사회 진화론은 제국주의 첨병이론이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영국의 제국주의 옹호자인 시인이며 소설가인 루디야드 키플링 (Rudyard Kipling, 1865-1936)이 1899년 발표한 “백인 남성의 부담”이란 시에서 잘 표현된다. 미국의 신문에 개제되면서 미국의 필리핀 전쟁(1899-1902)을 부추겼다. 백인 우월주의는 야만인들을 교화하고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주기 위해 식민 지배라는 역사적 부담, 내지 사명을 가지고 있다.

발빠르게 일제는 영국으로부터 사회진화론을 수입하고 자신의 식민지배를 위해 무사도와 기이한 결합을 시도했다. 이른바 사무라이 진화론은 천황을 신으로 섬기는 사이비 종교 파시즘이된다. 식민지 근대성을 옹호하는 일부 학자들은 파시즘을 근대성으로 말하지만, 그러나 파시즘은 인종차별과 문명의 파괴 그리고 인류의 멸절을 가져왔지 근대성의 계몽의 측면과 비판적인 태도 또는 민족국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토마스 맥카티에 의하면, 사회진화론은 미국의 남부지역에서 인종의 카스트 제도를 설립하는 데 가장 유력한 이론이었다. 그리고 서부지역에서 인디언을 제거하는 데 이론적인 무기였고, 미국의 제국주의 팽창기에 스페인과의 전쟁과 함께 이후 동아시아 특히 중국 침투에서도 드러난다. 이것은 1845년 텍사스를 병합할 때 사용된 명백한 운명(John O’Sullivan)이라는 구호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것이 청교도와 기이한 결합이 되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된 자들이 되고 사면이 되는 신화의 나라로 등극한다. 이러한 미국의 신화는 자신의 기독교를 수출하는 지역에서 값싼 용서를 판매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영화화된 밀양에서도 잘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용서는 피해자를 회복하게 하는 정의의 차원이 실종되고 삭개오와 같은 메타노이아를 통한 배상의 정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회복과 배상의 정의를 동반하는 메타노이아가 사라지는 곳에서 용서의 은혜는 사유화되고 종교적 이기주의와 파렴치함으로 나타난다.
기묘한 식민종교의 위선이 물구나미 서기처럼 서 있다. 결국 식민지에서 자행된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되며, 문명선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한 행동으로 둔갑된다. 사회진화론의 인종주의가 은닉되어있고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용서와 배상과 회복의 정의가 아니라, 거짓과 위선을 배태한 사회 진화론이 청교도의 절대이중 예정론과 명백한 운명을 통해 쇠창살의 우리처럼 지배한다.

윌리암 그래함 숨너(W. G. Sumner, 1840-1910)는 최초로 예일대학의 사회학 교수였고 허버트 스펜서의 충실한 제자였다. 그는 사회와 문화에 대해 생물학적인 진화론과 인종 진보적인 견해를 생존투쟁과 더불어 강조했다. 적자가 생존하고, 열등한 인종을 희생시켜 패권을 쥐는 것은 역사의 명백한 운명이다. 미 원주민이나 흑인의 미래는 우월한 백인에게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

사회진화론의 원리는 남부지역에서 인종분리 정책으로 악명높은 짐 크로우(Jim Crow) 법안을 제정하는 기초가 되고 1896년부터 1965년까지 집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무에 매달아 살행당한 ‘흑인의 린칭나무’는 오늘날 여전히 ‘흑인생명 중요운동’ (Black Lives Matter)에서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게 한다. 제임스 콘의 흑인신학은 미국의 공공신학의 첫번째 예언자적 실례를 보여주고 오늘날 코넬 웨스트를 통해 이어지고 노암 촘스키의 사회주의 운동과 연대한다.

포스트 콜로니얼 해방윤리는 문화적 정의를 고려한다

필리핀 출신 아그네스 브라잘은 카톨릭 페미니스트 해방 신학자로서 포스트콜로니얼 이론을 해방윤리를 위해 매우 진지하게 취급한다.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철학가들, 예를들어 푸코, 데리다, 라캉, 그리고 인도 출신의 성서학자인 수기타라자(R. S. Sugirtharajah)의 해석학을 중요하게 수용한다. 더 나아가 아그네스는 슈트어트 홀(Stuart Hall)을 통해 보다 정교하게 해방의 윤리신학으로 다듬는다.

슈트어트 홀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을 네오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전개하는 철학자다. 곽필란과 같은 해체주의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아그네스는 코스모폴리탄의 인정과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로컬문화의 지혜와 언어는 백인남성 부담의 문명선교를 거절하며, 다문화 교류를 위해 보존되어야한다.

필리핀 전통문화의 수치(hiya)와 같은 개념은 대한민국의 한이나 민중처럼 보편적인 공공선을 증진시키위해 강조된다. 그러나 그녀는 수치개념을 민중 이념형처럼 고려하지 않고 필리핀 상황에서 소셜 메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거짓뉴스나 이데올로기 선동을 비판하는 윤리적 개념으로 유용화한다.

시민사회가 정치투쟁의 영역에서 매스 메디어에 의해 침탈당할 때 도덕성은 계급투쟁에 예속되고, 해방의 윤리적 차원은 실종된다. 특별히 아그네스는 마르크스의 “정치 경제학 강요”와 “자본론”에 기초한 슈트어트 홀의 접근에 주목하고, 해방신학과 포스트 콜로니얼 인식론을 결합한다. 더 나아가 종교와 문화의 비교연구의 중요성을 통전시키면서 필리핀 해방신학의 윤리적 차원을 보강한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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