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민중신학의 처음과 끝, 민중현실한국민중신학회 30년 회고
강원돈 (한신대 은퇴교수/사회윤리) | 승인 2022.10.23 05:55
▲ 일러스트=진동영,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누가 민중인지 규정하는 일이 가능할까? ⓒ서울경제

오늘 우리는 한국민중신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민중신학은 세계 신학계에서 한국 고유의 신학으로 인정받았고, 민중신학의 태동과 발전은 한국신학사를 민중신학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만큼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한 민중신학을 연구하고 형성하는 신학자들의 모임인 한국민중신학회가 30년의 역사를 거쳐왔으니, 그 신학회의 일원이었던 제게 소회가 없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한국민중신학회 30년을 회고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제게 그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

1992년 9월 중순 한국민중신학회를 세우는 날 저는 박성준 선생이 마련한 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갔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그것이 일단 만들어지면 조직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일이 따르기 마련인지라 저는 민중신학회를 만드는 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구의 틀에서 의견 분파들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경계했고, 그러한 움직임이 민중신학자들 사이의 발랄한 토론과 역사 앞에서 민중과 더불어 민중신학적 사유를 활발하게 펼치는 일을 저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중신학회가 기구적 성격을 띠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민중신학회 설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민중신학회를 꾸리는 방식에 관해 상당히 오랜 시간 논의가 거듭되면서 민중신학자들의 동인 성격의 자발적인 협동체 형태로 학회를 꾸려서 기구적 성격을 최소화하기로 의견이 모이고 나서야 저는 민중신학회 창립에 동의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민중신학회가 Korea Association of Minjung Theologians라는 영어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 1992년 12월 18일 발행한 민중신학회회보 1권 1호, 민중신학회 설립경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

1980년대는 민중운동의 시대였고, 민중운동의 전략적 목표와 운동 방식, 그리고 사상노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한 논쟁들은 민중운동 진영을 여러 분파로 나누었습니다. 민중운동을 둘러싼 논쟁들은 기독교 민중운동 세력에도 영향을 주었고, 기독교 운동의 아이덴티티를 둘러싸고 의견들이 맞섰고 분파들이 나누어졌습니다.

저는 1980년대의 민중운동 논쟁을 지켜보면서 운동이론의 도식주의가 민중운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식주의는 민중현실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분석을 통해 타파되어야 합니다. 그 당시 도식주의가 기승을 부린 것은 한국 사회와 민중 현실에 관한 사회과학적 연구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물론 컸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식민지 반봉건 사회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 등으로 도식적으로 규정하고 나서, 그러한 사회의 변혁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민중해방의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놓고 삶과 죽음을 건 듯이 논쟁을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도식주의와 분파주의를 타파하려면 실사구시적인 현실 분석과 차분하고 개방적인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함부로 꺾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자 하는 강박을 억제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제가 1980년대를 거치며 민중신학을 형성하는 데 참여했던 사람들이 동인으로서 서로 만나고 상대방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임이면 족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1980년대의 민중운동 논쟁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3.

1993년 초에 저는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5년 동안 독일에서 생태학적 노동 개념에 바탕을 두고 경제윤리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주제로 삼고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난 뒤에 1998년 초에 귀국하니 민중신학회는 민중신학회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민중신학회에 가담하지 않은 젊은 신학자들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를 꾸리고 딴집살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민중신학회 신학자들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신학자들은 민중현실을 포착하고 그러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서 민중신학 이론을 구성하는 데 서로 다른 특색을 보였습니다. 1990년을 전후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뒤에 우리 사회에 강력하게 대두한 시민사회 담론을 둘러싸고 두 모임에 속한 신학자들의 대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민중신학회 신학자들이 민중신학의 핵심 개념인 민중과 민족 개념을 1990년대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를 거듭했던 데 반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젊은 신학자들은 시민사회 담론을 수용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기독교 시민사회 담론을 형성하고자 했습니다.

현실을 보는 관점과 방법이 다르면 서로 배우면 좋을 텐데, 오랫동안 그러한 상호 접근과 대화보다는 상대방을 백안시하거나 배척하거나 상대방과 구별되는 자기 분파의 특이성을 확인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민중신학회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었던 대학교수들은 변화된 상황에서 민중신학의 핵심 모티프들을 살려 나가는 데 관심을 가졌던 데 반해, 대학교수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민중신학회에서 주변화된 젊은 신학자들은 독자적인 연구 중심을 형성해서 그들 나름대로 사고 실험을 하려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두 신학회가 계속 분립한 것을 놓고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를 더 들 수 있겠지만, 저는 민중신학의 관심을 공유하는 한국민중신학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각기 따로 모이더라도 함께 가는 지혜를 발휘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4.

지난 30년 동안 민중신학회의 틀에서 이루어진 신학담론을 되돌아보면, 민중신학을 한다는 것이 단순하지 않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이후에 1990년대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내세운 ’역사의 종말‘이라는 구호가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았습니다. 변혁의 주체인 민중은 사라졌고, 민중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힘을 얻었습니다. 신사회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운동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발상을 거부했고, 다양한 결절점들을 갖고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이루는 사회에서 다양한 분절선들에 따라 나타나는 탈중심적 운동들을 중시했습니다.

시민사회 운동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생태계 위기와 기후 파국 같은 것은 계급과 계층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것이니 시민운동은 시민의 보편적 요구와 공공성을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생태계 위기와 기후 파국의 정치경제학 같은 것은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민중이 없다고 말했고 ‘유령’으로서의 민중을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상적 정세와 시민사회운동의 정세에서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민중신학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역사 앞에서 민중과 더불어 신학을 한다고 나섰던 민중신학자들은 ‘역사’와 ‘민중’의 이중적 아포리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민중신학회를 중심으로 한 신학담론이 오늘의 ‘민중’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서 던지고 민중 주체성과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 같은 주제에 과몰입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자들의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 신학자들이 푸코, 들뢰즈, 바디우, 데리다, 스피박, 레비나스, 아감벤, 라캉, 지젝 등의 주체 담론 혹은 탈주체 담론을 끌어들여 ‘민중’의 특이성을 포착하고자 노력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과몰입이 민중신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보다는 민중신학의 결정적 좌표를 놓치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의 ‘민중’이 누구인가를 직접 묻지 않고 오늘의 민중현실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언뜻 보면, 두 질문은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의 ‘민중’이 누구인가를 묻는 사람은 민중으로 직관되는 대상을 찾아 나서고, 민중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민중’으로 지칭되는 유형의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민중현실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민중’으로 한정짓고 나서 그 ‘민중’의 현실을 살피기보다는 역사적 발전 과정 가운데 있는 현실관계들로서 존재하는 민중의 현존 방식과 양태를 그때그때 분석하고, 그 현실관계들을 변화시키는 기술적, 제도적, 사회적, 정치적 동력들의 배치에 주목합니다. 그러한 현실관계들을 도외시하고 ‘민중’을 말하면, 그것은 ‘민중’에 관한 사변이거나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현실관계들의 총화로서 현존하는 민중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민중 ‘페티시즘’이 되고 말 것입니다.

5.

저는 민중신학이 민중현실로부터 출발하여 민중현실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의 진리는 실천입니다. 실천이 방법의 진리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습니다. 민중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민중현실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좋은 방법이고 옳은 방법일 것입니다.

저는 민중신학자들이 신학하는 관점과 방법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신학의 원본이나 민중신학의 고정된 방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처음 민중신학을 시도한 선배들의 관점과 방법은 오늘의 민중현실을 놓고 신학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방법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 선배들이 남긴 민중신학 담론이 담론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그 담론이 불변의 표준이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불변의 표준이나 진리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선배 민중신학자들의 담론은 그들이 직면한 민중현실을 둘러싼 인식과 실천의 맥락에서 냉정하게 분석되고 비판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신학 담론이 어떤 권력 장치들의 효과 속에서 형성되었는가를 철저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선배들의 민중신학적 성취를 계승한다는 것은, 그것이 ‘창조적 계승’의 이름을 가지든 ‘비판적 계승’의 이름을 가지든, 오늘의 민중신학자들이 신학하는 관점과 방법을 선택할 때 선배들의 신학적 성취를 단지 참고할 소재로 삼는다는 뜻에 불과할 것입니다. 민중신학은 창조적인 신학이어야 하고 비판적인 신학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창조와 비판은 과거의 업적을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평가의 등급이 아니라, 오늘의 민중현실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서 나타나는 성취의 이름이어야 합니다.

▲ 1973년 11월 15일,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지지하며 삭발한 한신대 신학과 교수들(왼쪽부터 김경재, 안병무, 박근원, 김이곤, 김정준) ⓒ한국민중신학회

민중신학은 역사 앞에서 민중과 더불어 신학하는 주체의 형성을 중시합니다. 신학의 주체성은 신학하는 주체의 자기의식이고, 신학하는 자리인 민중현실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충실성에 관련된 개념입니다. 민중신학의 주체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다른 신학들이나 다른 나라 이론가들의 성취에 무관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이 생산하는 텍스트는 그 사람 자신인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들이 서로 겹치고 침윤하면서 그때그때 새롭게 창조되는 텍스트일 것입니다. 텍스트는 텍스트들 사이에서 생성되고 유통됩니다. 따라서 그 어떤 민중신학 텍스트도 순결한 텍스트일 수 없습니다. 민중신학자들은 텍스트들 사이에서 신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텍스트 생산과 수용의 맥락 속에서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은 오늘의 민중현실을 놓고 신학하는 주체로서 거듭해서 되물어야 합니다. 예컨대, 알랭 바디우에게 그가 터득한 관점과 방법을 갖고서 오늘의 ‘민중현실’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하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저는 바디우가 그 요청을 사양하고 여러분들이 나름의 관점과 방법을 세워서 민중현실을 분석하라고 권유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바디우의 주체성 개념의 빛에서 본 민중 주체성 이해 같은 주제를 설정하고 연구를 한다면, 그러한 연구가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까요? 바디우에게서 얻는 힌트를 갖고서 민중현실을 살폈더니 그 민중현실이 적실하게 잘 보이고 민중현실을 변경하려는 실천에 관련해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려면, 그러한 평가 이전에 민중현실에 대한 어떤 인식과 실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러한 ‘어떤’ 인식과 실천을 가리키는 것이 신학의 주체성과 관련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없다면 바디우에게서 그 무엇도 제대로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적이 어디 바디우에 한정해서만 할 말이겠습니까?

6.

저는 한국민중신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민중신학이 오늘의 민중현실을 놓고 제대로 신학하는 살아있는 신학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신학의 주체성을 세우는 것은 오늘 민중신학을 살려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강원돈 (한신대 은퇴교수/사회윤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