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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주체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 그리고 대책 (3)
이정훈 | 승인 2022.10.24 15:05
▲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지난 3월30일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홍인식
이 칼럼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서 매달 발행하는 《종교와 평화》 9월호에 게재된 것을 《종교와 평화》 편집부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 주신 《종교와 평화》 편집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이 글을 마지막으로 총 4회(3회차 글은 내용상 에큐메니안에 게재하지 않았다 - 편집자 주)로 약속되어 있던 연재를 마무리하게 된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왜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연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이랬다. 올 중반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을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강제로 생을 끝내고 그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특히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로 구성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윤종술 회장)가 5개 종교와 함께 추모기도회를 진행했고 종교계가 참여하게 되며 연재가 맡겨진 것이다.

이 연재의 취지는 분명했는데 왜 이런 참사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 글과 두 번째 글에서 문제점이자 대안에 대해 언급했던 것은 우리는 발달장애 그 자체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과 장애 가족 구성원을 장애인 거주시설에 수용시키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가족들을 위한 안전망이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삶의 한 단면이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을 가진 가족에게 부과되는 정신적·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참사는 예견된 사실이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리고 세 번째 글에서는 지난 8월 중부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장애인 가족이 왜 그런 참사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역시 앞선 두 연재에서 언급되었던 장애 가족 구성원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족에게만 맡겨 둘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데이터와 함께 제시했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점 또한 함께 기록했다.

비장애적 신체만을 생각하는 사회에서

연재 마지막 글을 또 다시 필자의 개인 경험으로 시작해 본다. 지난 며칠 전 2년에 한 번씩 국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중에 하나인 국민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은적이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전문 병원이자 국립의료기관에 속한 병원에 당도해 이런저런 문진에 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성분이 다가와 자신의 소속을 밝히며 건강검진 과정에 따라가며 이후에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고 공손히 묻는다. 별 큰 일도 아니라 그러시라고 대답했다. 모든 검진 과정을 다 마치고 인터뷰를 요청했던 여성분께 인터뷰를 해도 된다고 하니 질문지를 미쳐 가지고 오지 못했다며 이후에 전화 인터뷰가 가능하냐고 묻기에 또 다시 그러시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일주일 지나갈 즈음 그 여성분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1시간 가량 전화 인터뷰를 나누었다. 그 여성분은 공공의료분야에 종사하고 있었고 건강검진 과정에서 장애인이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보완할 부분은 없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그렇게 길게 이어진 전화 인터뷰 과정에서, 이후 서술한 부분은 그 여성분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인지해 주시길 바라며, 여느 의료계 종사자들과 같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낮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전화 인터뷰 중에 그러한 점을 인지하게 되었던터라 필자가 그 여성분께 집중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건강검진 자체가 소위 비장애인 중심의 보편적 인간을 상정하고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사건이나 사고를 당해 신체의 손실을 입은 중도장애인이 아니라면, 즉 선천적 뇌병변장애나 발달장애 혹은 어린 시절 필자와 같이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거의 다를바 없는 신체 구조를 소유하고 있기에 비록 비장애적 신체를 상정한 건강검진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부분이 겹친다. 몇 가지 검사항목만으로도 충분히 건강 상태 확인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소위 장애가 고착된 장애인들은 장애로 인해 신체 어느 부분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기능 약화가 가속화되기도 한다. 일례로 보행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다리 근육이나 소화기관의 기능이 현저히 낮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장애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에 따른 건강검진항목이 바뀌든지 보강되어야 한다. 잘못하면 수박 겉핥기에 그칠 수 있다.

장애인들의 인정을 향한 욕구와 투쟁

그럼 이런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약간은 구질구질 하게 이야기한 이유를 이제 언급할 차례이다. 현대 사회철학을 이끌어가고 있는 곳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막스 호르크하어마와 테오도르 아도르노라는 걸출한 사회철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되었고, 2대 소장으로 유르게 하버마스가 이끌었다. 이어 3대 소장은 하버마스의 제자인 악셀 호네트가 적통을 넘겨 받아 인정투쟁을 이론화시켜 현대 사회철학에 큰 기여를 했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의 뿌리는 하버마스와 프랑스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론이었다. 푸코는 평생 헤겔 변증법에 대항해 싸운 학자였다. 흥미로운 점은 호네트는 푸코에게서 ‘투쟁 모델’을 찾아냈다. 동시에 호네트는 하버마스에게서 ‘의사소통 모델’을 이어받았다. 그 두 모델을 결합해 도출한 것은 ‘인정 투쟁’이다.

호네트에게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개인들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계, 곧 긍정적 자기의식을 찾아낼 수 있는 심리적 조건으로 보았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특히 사회적으로 ‘모욕’이나 ‘무시’를 받을 경우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을 일으키고 이 분노는 사회적 투쟁에 나서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인정 욕망을 둘러싼 투쟁은 상호 인정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모욕이나 무시가 불의한 것이라면, 인정투쟁은 도덕적인 일이 된다.

이 인정투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번번히 일어난다. 호네트의 정교한 이론 언급이 없을 뿐이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의 개개인은 인정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 사람의 주체로 오롯이 인정 받기 위해서 투쟁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성취해 내기 위해 개인 대 개인, 혹은 개인 대 집단, 집단 대 집단이 갈등하고 격해질 경우 사회적 투쟁으로 이어진다. 국가나 지자체에 대해 요구하기도 한다.

장애인도 사회의 주체로 인정되는 날까지

이러한 인정투쟁은 장애인도 수행한다. 장애인도 한 사람의 주체이기 원하고 인정 받기 위해서 투쟁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투쟁도 이 인정투쟁으로 읽어도 좋겠다. 즉 장애인이 한 주체로 인정 받기까지 우리 사회에 장애인 투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어느 시점에 이르러 완전한 주체로 인정되는 날이 올지라도 또 다른 인정투쟁은 이어질 것인데 이 지점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반합의 변증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완전한 주체로서의 인정은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장애인을 완전한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얻을 수 없다. 다만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것은 시작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건강검진의 예에서 보았듯이 건강검진항목을 정하면서 장애인을 고려하는 순간 이 사회와 의료계는 장애인을 한 사람의 주체로 인정하는 첫 걸음을 떼는 것이다.

조금 과정 섞어 매해 거르지 않고 벌어지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참사, 더 넓혀 모든 장애인과 그 가족의 참사는 장애인을 한 사람의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기 시작할 때 그 해결점은 비로소 보일 것이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호해 주어야 할 사람으로 장애인을 인식하는 한 우리 사회에 이 비극과 참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장애인을 주체로 보는 눈을 가졌으면 한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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