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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유동식 선생님을 추모하며놀라움과 아쉬움을 아우르다
이정배(감신대 은퇴교수, 현장아카데미 소장) | 승인 2022.10.26 01:19
▲ 고 소금 유동식 교수 ⓒ손원영 교수 제공

인생의 년 수가 길면 80이라는 성서말씀도 다시 쓰여져야 할 만큼 선생님은 백수를 넘겨 사셨다. 짧은 기간 동안 의식을 잃고 지내셨으나 인생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선생님만큼 또렷한 생각을 갖고 사셨던 분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간 선생님의 삶을 품위 있게 지켜준 동료 선후배 교수들에게 감사한다.

필자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과 거리를 두며 지냈기에 몇 년간 뵙지를 못했다. 이른 오후에 찾은 탓에 텅 비어있는 빈소에서 선생님께 그간의 마음을 토로하며 송구한 마음을 길게 전했다. 본래 나는 이 글을 변선환 학장 종교재판 30년 행사 이후에 쓰려 했으나 생각을 바꿨다. 우선순위를 달리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도리이자 예의라 생각한 것이다.

이글은 분명 선생님에 대한 추모의 글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밝혔듯이 아쉬운 마음도 정직하게 토로할 것이다. 학생시절부터 귀에 못 박힐 정도로 들어왔던 귀한 선생님과 솔직한 대화를 해볼 작정이다. 추앙하는 것만이 선생님을 기리는 방식은 아닐 것이기에.

지금껏 내 손으로 선생님 기념 논문집을 둬 차례 만들어 드렸다. 그런 연유로 소금 선생님의 신학 사상을 연구하여 몇 편의 논문을 썼고 그 분 신학 사상을 거지반 이해하고 있다. 무속연구를 시작으로 성서학자로서 요한복음을 좋아하셨고 최종적으로 풍류신학을 전개하신 선생님을 나는 이론과 논리가 정교한 한국 최고의 조직신학자로 평가했다. 이것은 결코 과한 이해가 아니었다. 이하에서 밝히겠으나 선생님은 자신의 풍류연구에 바탕 하여 성서학, 한국교회사, 선교학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시며 토착 조직신학의 얼개와 구조를 드러내신 것이다.

어떤 신학자도 선생님의 체계적 신학사유를 능가할 분이 없다는 것이 지금껏 내 생각이다. 허나 어느 좌담회에서 선생님께 드렸던 물음을 소환하며 다른 측면도 끄집어 내본다. 1960년대 전후로 나라가 정치적 혼동에 빠졌을 때 시대 정황에 맞지 않게 토착화 신학을 선언하신 이유를 선생님에게 여쭈었다. 나라를 빼앗긴 경험을 한 당신 세대에 있어 나라 내부적 정치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보였기에 괘념치 않고 토착화신학을 시작했다고 말씀했다.

솔깃한 답변이었으나 두고두고 당시 증언은 토착화 전통을 잇는 내게 심한 체증이 되었다. 당대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와 선생님을 견주며 이 땅의 종교들을 이해하는 방식 차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기독교를 위주로 사유했던 신학자와 한국 종교의 기초이념을 앞세운 종교학자간의 이견을 노출한 것이다.

유불선 종교의 현재적 의미를 실종시킨 선생님과 반대로 종교학자는 기독교를 외래종교로 봤던 것이다. 기독교적 실존을 우선, 절대시했던 선생님은 종교들의 현재적 다원성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상술한 두 논점은 선생님 돌아가신 지금까지 내게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1.

우선 유동식 교수님의 신학적 입장을 긍정적 입장에서 검토할 것이다. 때론 논쟁 거리가 되곤 했던 선생님의 신학적 전제는 대략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한국 기독교는 구약성서 없이도 한국사상(풍류도)을 신약성서의 그리스도와 연결시킬 수 있다. 둘째 한국 기독교는 십자가 대신 삼태극을 상징으로 삼아야 옳다. 마지막으로 삼태극은 부활을 상징하며 따라서 이 땅의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가 아니라 부활의 종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세 전제들 속에 앞서 필자가 품었던 물음의 단초가 내재되어 있다. 이 땅의 종교문화를 강조했으나 기독교(론) 중심으로 이해했고 정치적 현실, 곧 십자가 없는 부활에 강조점을 둔 까닭이다. 상세한 논의는 후술하겠고 여기서는 삼태극을 먼저 설명해야겠다. 

2.

주지하듯 삼태극은 천지인 ‘삼재론’과 무관치 않다. 농경 문화권에서 태극양의 설을 전개시킨 중국과 달리 수렵문화인 시베리아 등지서는 천지인이 하나 되는 삼재사상을 발전시켰다. 《천부경》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삼재론은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 된다는 논거가 핵심이다. 이 삼재론이 음양론과 합하여 후일 한글창제의 원리가 되었다.

이렇듯 천지인의 조화가 인간 속에서 완성되는-인중천지일-삼태극 사상을 선생님은 풍류라 불렀고 고운 최치원의 말대로 현묘지도라 일컬었다. 녹두글자로 쓰인 《천부경》을 최초로 한문으로 풀어낸 학자가 고운이었고 순수 우리 글로 다시 엮은이가 다석 유영모인 것을 유념할 일이다. 여하튼 이 도는 유불선을 포함하는 통섭의 주체로서 사람과 사물에 접하는 순간마다 생명을 창조하는 역할을 했다. 이렇듯 포함삼교와 접화군생은 현묘지도인 삼태극을 드러내는 풍류사상의 핵심이었다.

선생님은 앞서 본대로 이 땅의 기독교는 한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풍류도에 접목될 것을 강조했다. 여기서 소위 ‘접목’이란 토착화이론이 생겨났다. 비록 고사 직전에 있지만 ‘풍류도’라는 뿌리에 생기를 흠뻑 지닌 기독교가 가지로서 접붙여져 뿌리 힘을 살려내는 것을 선교라 여긴 것이다. 이것을 성육신 종교로서 기독교가 이 땅에서 할 일이라 생각했다. 현묘지도, 포함삼교, 접화군생의 각기 다른 말인 한, 멋, 삶, 곧 ‘한 멋진 삶’을 창조하는 것을 기독교의 역할로 규정한 것이다.

여기서 선생님의 공과 화가 두루 읽혀진다. 우선 ‘접목론’이 상징하듯 한국문화와 기독교를 주체와 주체간의 만남으로 이해한 점은 앞선 씨앗/토양론(윤성범)과 비교할 때 진일보했다. 하지만 서구 기독교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 없이 낙관, 긍정 일변도로 수용한 한계 역시 없지 않다. 초월과 내재를 매개하는 성육신의 종교, 기독교를 이론(논리)적으로만 생각한 결과였다. 여하튼 선생님은 풍류의 드러남인 한, 멋, 삶, 아직 가능태로만 남아있는 풍류도를 성육신 기독론에 근거하여 완성시키려는 이론적 작업을 멋지게 수행했다.

3.

앞서 말했듯이 풍류도는 현실 역사 속에서는 ‘한 멋진 삶’ 곧 하늘과 땅이 인간 속에서 하나(인중천지일)가 되지 못한 채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우위를 점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불교의 경우 초월, 곧 ‘한’의 종교로서, 반면 유교는 내재(세상성)를 강조하는 ‘삶’의 종교로서 한국 종교사를 구성했던 것이다. 이제 이들 종교를 앞선 역사로 삼아 이 땅에 유입된 기독교는 ‘한’과 ‘삶’을 연결 짖는 ‘멋’의 종교가 되어 풍류도를 완성시켜야 하는 바, 즉 한 멋진 삶을 창출할 책임이 있는데 이를 바로 요한복음서가 강조하는대로 ‘신이 인간이 된’ 성육신의 종교, 기독교의 몫이라 여겼다. 초월과 내재를 연결 짓는 힘으로서의 기독교를 뿌리(종교문화)를 살리는 줄기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멋’은 곧 부활을 대신하는 미학적 용어라 해도 좋다. 성육신 종교인 기독교는 멋을 창조하는 종교로서 그의 실상을 부활이라 한 것이다. 선생님이 기독교적 실존의 리얼리티로 삼는 ‘영성 우주’는 멋의 종교적 표현인 부활의 다른 이름이겠다. 하지만 여기서 삶의 현장성을 강조하는 십자가가 쉽게 탈각될 여지가 크고 많다. 이는 60년대 삶의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그를 지나쳤던 선생님의 토착화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 미학과 교수였던 김문환 선생께서 ‘십자가를 최고의 미(아름다움)’로 여겼던 철학자 아도르노를 빌어 선생님의 예술론을 비판한 적도 있었다. 본회퍼의 비종교론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서구 신학사조의 일환이라 여기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본회퍼 신학에 대해 단호하게 거리를 두신 것이다.

4.

선생님은 상술한 풍류의 세 차원인 ‘한’, ‘멋’, ‘삶’ 의 구조를 갖고 한국 내 교파적 기독교와 이 땅에서 생기한 여러 신학사조를 설명하셨다. ‘한(초월)’을 대변해온 예수교 장로회, ‘삶(역사)’을 강조한 기독교 장로회, 그리고 양자를 매개하는 감리교회의 분류가 그것이다. 한과 삶을 멋으로 통전시키는 작업이 일명 토착화신학이었고 그것은 곧 ‘멋’의 신학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논리대로라면 기독교가 여타 종교의 성취이듯 감리교가 기독교의 완성이어야 했다. 토착화는 그에게 성육신 신학의 다른 이름이었던 까닭이다.

여하튼 이들은 각기 보수신학, 진보신학, 자유주의 신학이라 불렸으며 ’자유‘란 말에 방점을 찍었다. 선생님은 이런 범주를 갖고 한국 신학의 광맥을 찾고자 했다. 여러 출중한 인물과 사조들이 이 구조 속에서 설명되었다. 하지만 정형화된 도식은 언제든 허점이 있는 법이다. 아주 중요했지만 선생님이 찾은 광맥 속에 편입되지 못한 신학 사조들도 여럿 있었다.

예컨대 기독교 사회주의, 자생적 환원운동 등이 그것이다. 선생님의 시각은 우익 민족주의 계열, 즉 기독교와 민족주의의 만남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사회주의 차원을 애시당초 담아낼 수 없었다. 더구나 잡지에 쓰인 글을 갖고 평가했기에 현실에서 벌어진 세밀한 운동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요즘은 ‘한’, ‘멋’, ‘삶’이란 단순 구조를 갖고 신학의 다양성을 분류하기는 더욱 어려울 듯싶다. 이 세 흐름이 상호 얽혀서 작동하는 경우도 많은 탓이다.

5.

선생님 신학의 백미는 멋의 실재로서의 부활, 곧 ‘영성우주’에 대한 설명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영성우주(한), 시공우주(삶) 그리고 양자가 상즉상입 된 우주(멋)를 위 구조에 따라 설명했다. 시간과 영혼이 나뉠 수 없는 불이적 상태로 엮인 상태를 멋이자 부활의 실재라 본 것이다. 이런 우주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삼태극 모양처럼 휘몰아치면서 나선형으로 발전되어 간다고 상상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영성우주와 시공우주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상태를 부활이자 종말이고 기독교의 미래인 것을 역설했다.

하지만 시공우주와 영성우주가 하나 된 우주의 미래는 과연 어떤 곳이고 어떤 상태를 적시하는 것일까? 일전 대화문화 아카데미에서 신/구교 소속 은퇴신학자들 10여명을 모시고 ‘내가 믿는 부활’이란 주제로 글을 써서 발표할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단행본 책으로도 출판되어 세인들 관심을 끌었다. 각양각색으로 부활이 설명되고 고백되었으나 선생님은 이들 중 가장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영성우주와 시공우주가 하나 된 부활의 상태에서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아내를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시공우주와 영성우주의 불이성, 삶의 세계 속으로 한의 세계의 이행, 바로 이것이 풍류(멋)의 궁극처였다. 선생님에게는 부활이 기독교적 실존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영성우주가 시공간 속에 내주하는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부활이 그가 이해하는 기독교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신학적 확신이 꼭 성사될 것을 기도하며 기대한다.

6.

하지만 나는 풍류에 대해 선생님과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삼태극(삼재) 사상의 핵심은 ‘인중천지일’의 ‘인’(사람)에게 있다. 아래 ‘아’의 변화에 따라 뜻과 소리가 달라지는 한글이 이를 적시한다. 그래서 ‘포함삼교’에 방점을 찍은 선생님과 달리 나는 ‘접화군생’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을 선호한다. 멋이 아니라 삶의 차원을 더 강조 할 필요에서다. 풍류는 현실을 달리 만드는 일에 관심할 뿐이다. 풍류(도)에까지 연이 닿은 동학이 바로 이점을 강조했다. 세상 안에서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개벽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기독교 실존은 유불선 종교를 더 이상 역할이 없는 과거의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종교적 실존이 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동학의 경우 유불선을 무화시키지 않았다. 개벽은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세상인 까닭이다. 이런 신학적 차이로 인해 한 순간 선생님과의 거리감이 생겼다.

어느 날 조선일보에 실린 용산 참사에 관한 기사를 보고 오신 선생님은 그 짓을 빨갱이 짓이라 여기며 분노하셨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예견했지만 선생님의 과한 표현에 동의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내 제자 중 한 사람이 목회의 길 대신 용산참사 대책위 사무를 보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지금은 도시빈민연대의 사무총장 직을 맡아 수고하는 그를 생각하니 선생님의 말씀을 수긍키 어려웠다.

언제부턴가 나는 종교 차보다 정치 견해의 다름에 주목했다. 종교란 결국 세상 보는 관점을 선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판단이 바르지 않았기에 지금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가? 이점에서 정치적 소신을 함께하는 보수신학자들의 신학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신학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보수성으로 퇴행하는 현실에 아픔을 느껴야 했다, 신학과 정치는 새의 두 날개처럼 함께 움직여야 할 것이기에 토착화신학이 이점을 간과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정치적 토착화와 문화적 토착화는 결코 나뉠 수 없는 주제여야 한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금 유동식 교수님에 대한 존경은 조금도 덜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선생님만큼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갖고 풍류신학이란 체계를 세우신 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세를 사실만큼 여유롭고 즐겁게 사셨던 선생님, 돌아가신 사모님만을 그리워하며 곧게 사셨던 선생님, 살아생전 후학들에 의해 전집 출간의 기쁨을 누리셨던 선생님은 이 땅에서 하늘 복을 충족히 받으셨다.

종종 선생님처럼 말을 천천히 하고 싶었지만 그리 할 수 없는 한계를 여실히 느낀 적도 많았다. 그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선생님 살아생전 배울 수 없었으나 이제라도 그 흐름을 좆아 볼 생각이다. 신학자들을 산봉우리에 비유하신 김경재 교수님 말씀처럼 소금 선생님 신학은 아름다운 묘향산과 견줄 수 있다. 선생님만의 특색 있는 신학을 세우신 것이다.

앞선 이야기는 선생님을 존경한 어설픈 후학의 푸념에 불과할 것이다. 한계가 바로 그의 특색인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만용을 부렸다. 살아생전 선생님도 안타깝게 생각했던 종교재판 30년 행사를 앞두고 있다. 선생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을 믿으며 선생님의 삶과 사상에 깊이 머리 조아린다. 선생님이 계셔 한국 신학계가 행복했다. 선생님의 마지막 몇 년을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할 뿐이다. 용서를 구하며 편히 쉬시기를 기도한다.

이정배(감신대 은퇴교수, 현장아카데미 소장)  ljbae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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