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생활세계의 지배 계기들공공신학과 인식론적 패러다임 (3)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2.10.29 16:01
▲ 공공신학은 우리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계기들을 주목한다. ⓒGetty Image

공공신학은 계보학과 유효한 역사에 주목한다

공공신학와 포스트코로니얼 조건을 검토할 때 나는 루이 알뛰세의 접합이론에 주목한다. 알뛰세는 사회구성(사적 유물론)과 인간의 실천을 통합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효한 역사(effective history) 개념이다. 다양한 계기들(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종교, 문화, 인종, 섹슈알리트의 역사)은 경제주의나 역사블록의 계급투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느 시대에도 자본과 축적은 존재한다.

그러나 자본이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로 드러나면서 필요로 하는 것은 자유로운 임노동자의 계약이다. 이러한 노동계약은 정치적 역사의 발전경로를 통해 파악되지(예를 들어 국민주권, 보통선거권, 시민개인의 자유와 인권 등), 단순히 중상자본과 식민지배 또는 자유 방임주의 경제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근대성을 특징짖는 자유로운 노동에 대한 사회계약론은 봉건시대와 상업자본주의 시대와는 달리, 특히 영국에서 산업 자본주의와 접합이 된다.

여기서 자유 방임주의와 사회진화론을 기초로한 식민지배가 해외 시장의 획득과 불공정 무역 그리고 아편 전쟁등과 같은 폭력을 통해 세계체제론으로 구축된다.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 계보학에 속한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자유방임주의를 위해 도구적 역할을 하도록 채색된다. 공공신학은 이러한 세계지배질서를 해체하려고 한다.

이러한 근대의 발전과정에서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사회적 관계와 소유관계) 그리고 전문화와 정치적 관료지배에 단절과 파열 그리고 혁명을 가져온다. 예를 들면 산업혁명에서 드러나는 주요한 세계관의 변화는 기계론적인 접근인데, 세계에 대한 기계화를 의미한다. 기술합리성은 자본의 효율적인 방식 내지 유기적 구성에서 잘 드러나며, 세계의 혁명을 가져오는 것은 기술 합리성이다.

자연과학과 기계를 통한 생활세계의 지배가 경쟁을 통한 과잉생산으로 나타나고, 해외시장을 독점하고 민족위신과 더불어 군사력을 통해 식민주의와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가 일으킨 혁명이며,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 해보지 않은 세계체제의 혁명으로 나타난다. 산업혁명,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한 자본주의 지배는 정치구조와 사회제도 그리고 교육과 종교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자본은 식민지를 지배하면서 세계체제를 자본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간다—자본형상론.

이러한 사회구성과 합리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문적인 분화와 계층화가 일어나고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정치권력과 관료지배이며, 상품의 물신숭배는 루카치가 말한 것처럼, 사회 의 물화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역사의 진보과정에서 탈각되고 주변으로 밀려나간 것들이 시민사회와 공론장들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 순전한 희생자들이 지배역사의 진행과정에 유효한 역사의 자리로 들어온다. 이것은 징후발견적 해독을 요구하며, 또는 고고학적인 담론분석과 탈 중심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진보로서의 역사의 진행에서 무엇이 억압이 되었고, 배제되고 묻혀 버렸는가?

이 지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와 니콜라스 루만의 논쟁은 공공신학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하버마스의 소통이론에서 합리성과 보편적 규칙은 세계 체제론에서 드러나는 후기 자본 주의 복합성 내지 구조적 폭력-착취, 침투, 수평적 노동분할, 문화의 동질화, 인종의 계층화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물론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운동을 가동시키고 정치, 경제, 매스 메디어에 초점을 맞추워 신자유주의 지배질서를 폐기 시키려고 한다.

그런가하면 루만의 체계이론은 경제적 소통영역에 이미 침투하는 정치적 지배와 관료제 그리고 신체정치학을 분석하기엔 지나치게 시스템의 분화를 기능적으로만 강조하고 인식론적으로 닫혀버린 태도를 취한다. 물론 루만은 시민사회의 공론장의 다양한 분화 시스템을 정보/소통을 기초로 구조변화를 돌출한다. 예를 들어 정치시스템은 경제시스템과 소통관계를 통해 구조적으로 엮어지면서 새로운 질서와 변화가 나타난다. 루만이 공공신학에 주는 통찰은 분자생물학의 자기 조직성과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시스템적인 인식론을 제공하는데 있다. 초기 근대의 뉴톤적인 세계기계론과 자유방임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진화론은 해체된다.

자연과학과 기술공학 또는 생화학은 공론장에서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사안으로 등장 한다. 판데믹 시대에 이것은 글로벌 의학상품들의 지배권력과 연계되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 공공신학은 공중보건과 의료혜택 더 나아가 기후변화와 유전공학을 둘러싼 생명정의에 깊숙이 관여하며, 사회의료의 공공선을 통해 기술공학이 벌어들이는 의료 상품 수익의 경제주의를 비판한다.

사회학적 접합이론 - 마르크스와 니체는 서로 만난다

권력관계에서 탈락된 것들에 대한 추구는 계보학으로 나타나며, 니체와 마르크스가 이제 조우한다. 진리는 전체가 아니라 구체적이며, 보편적인 총체성을 획득할 때, 다시 말해 타자의 다름을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 문제틀적인 접합이론은 헤겔의 인정투쟁에 새롭게 착상될 수가 있다. 여기서 사적 유물론은 사회구성을 세계체제와의 총체성의 연관에서 보게 하는 사회과학의 방법론이 되며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정투쟁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알뛰세에 의하면, 푸코는 문화구성을 다루면서 서로 다른 역사적 시간들과 에피스테메에서 섹슈얼리티나 자본, 신체정치학에 대해 인식론적 단절 내지 파열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결국 일직선상으로 전개되는 역사적 시간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지속성을 통해 유지될 수 있는 진정한 역사란 없다. 실제의 역사 즉 유효한 역사는 여전히 은닉되고 징후발견적 으로만 포착된다. 후기 근대사회에서 사회시스템은 전문화되고 기능적으로 분화가 되어있고 신분/계급은 폭넓은 인정투쟁의 성격을 갖는다.

사회학적 접합이론은 사회구성의 다양한 계기들(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철학, 예술, 자연과학, 문화, 종교, 교육 등) 사이의 접합을 찾고 문제틀이다. 이러한 다차적인 계기들은 합리화 과정과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통해 전문화가 되고 분화가 되며, 각자 다른 시간들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다른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파열과 단절 그리고 쉼표나 마침표처럼 휴식과 중단이 존재한다.

현재와 부재의 공존, 또는 서로 다른 계기들의 접합은 전체 사회구조의 중요성을 드러내며, 여기서 구조적 접합은 중심성을 벗어나 탈중심성으로 전환한다. 런던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탈식민지 과정에서 제주 4.3항거에서 시민전쟁이 시작된다. 탈 군사파시즘 과정에서 광주 5.18은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과 학생, 하위계급의 연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민주화운동은 이미 1871년 프랑스 파리 꼬뮌과 연계되는 세계사적인 접합을 보인다. 이러한 구조적 접합이 제주 4.3과 광주 5.18을 신체정치학과 유효한 역사의 상징으로 파악한다. 시민사회안에서 일어나는 비판적 민주주의 운동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발생하지만, 세계사적인 보편적인 연관성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구체보편의 변증법적 일치가 사회운동의 사건을 역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하고, 미래의 사건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유효한 역사로서 현재사가 된다. 이것은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사건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구체-보편의 변증법이며, 노예가 주인을 타도하지만 주인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고 인정해주는 시민국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효한 역사개념은 서구중심의 지배역사와 진보에 쐐기를 박으며 여기에 결부된 리바이던을 해체하고 시민국가를 새롭게 구축하려고 한다.

후진성, 진보성, 생존 또는 불균형은 실제의 역사의 현재의 구조 안에서 공존한다. 중심 부안에 주변부가 존재하고 세미 중심부 안에 세미 주변부가 들어 와있다. 세미 주변부가 주변부를 착취한다. 구조적 지배와 췩취의 연쇄는 글로벌 차원의 네트워크로 그리고 시민 사회 안에서 계층화로 위계질서화된다. 이런 체제 네트워크에서 신 식민주의 자본 축적이 세계 체제 안에서 생산, 확대되며 재생산되는 권력 메커니즘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 호출과 사인이 사회전반을 통제하고 관료지배의 틀안에 가둔다.

근대성은 막스 베버가 경제적인 영역에서 목적 합리성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청교도의 윤리적 태도에서만 파악되지 않는다. 이것은 세계내적 금욕적인 태도를 말하는데, 그 귀결 은 근대성의 포로상태 즉 쇠우리에 갖혀버린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공유하는 베버의 자본주의 근대성에 속한다.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와 베버 사이에서 가치 합리성을 소통이론으로 돌출 해내고 근대성의 병리현상을 근대성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후기 자본주의론에서 신식민주의 조건을 파악하는 세계체제론은 탈각되며, 소통영역을 둘러싼 권력과 지배의 관계의 질서는 언급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소통이론과는 달리 포스트콜로니얼 근대성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라는 측면에서 다름과 차이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 문화적 계기들의 역사적 발전과 접합을 고려한다. 계급투쟁의 계보학은 인종과 식민지를 둘러싼 인정투쟁이 된다. 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존 슈트어트의 밀의 자유 방임주의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를 결합하면서 공리주의적 옷을 입은 신 자유경제 질서의 승리로 오늘날 이어지는가?

이러한 선택적 친화력은 어떤 지배그룹에 의해 주도되고 이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와 특권 그리고 인종위신과 해게모니를 대변했는가? 왜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보편의지, 분배적 정의와 공공선, 참여 민주주의, 식민지 비판 등은 근대의 발전에서 그 진의가 실종되거나 묻혀 버리는가? 부재의 역사, 다시 말해 문제틀이 되지 않는 역사는 이데올로기 호출에 의해 낫설은 것, 낙후한 것으로 단죄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참조되는 획일적인 서구의 시간표가 아니라, 유효한 역사는 어떻게 다양한 계기들이 접합의 과정으로 나타나는 지에 대해 담론분석과 권력관계로 문제틀이 된다. 그리고 한 시대의 지배 에피스테메의 형성과 지배 그리고 파열과 변형을 검토한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