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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각이 하나님의 시각과 똑같아 질 때까지하나님께 머리를 두라(여호수아기 1:9, 누가복음서 9:58)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11.01 14:26
▲ Giovanni Lanfranco, 「Moses and the Messengers from Canaan」 (1621-1624) ⓒWikipedia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여호수아기1: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누가복음서 9:58)

여호수아는 잘 아시는 대로 모세의 후계자입니다. 출애굽을 하고 광야생활 40년을 보내는 동안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모세가 인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을 앞두고 모세가 120살로 그 일생을 마감하고 죽고 모압땅에 묻힙니다. 그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을 하나하나 점령합니다. 40년 전에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보고 돌아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뭐라고 보고했습니까? ‘저들은 거인과 같아서,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가서 저들과 싸우면 다 죽습니다’ 합니다. 그리고는 벌을 받아 40년 동안 광야를 헤맸으니 이스라엘의 힘은 더 쇠약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거인 같은 가나안 사람들을 상대로 승리를 일구어낸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온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합니다.

그런 여호수아가 얼마나 용감하고, 용맹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기 맨 앞을 보면, 의외의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용감하고 용맹하기는 커녕,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벌벌 떨었던 거 같습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여호수아 본인의 말은 나오지 않지만, 여호수아 1장을 보나, 신명기 3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계속 강조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아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내라(신31:7-8).” “굳세고 용감해라. 두려워하고 낙담하지 말아라(수1:9).”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스스로를 어린애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이 많은 백성을 인도합니까? 내가 모세같이 위대한 사람도 아닌데요. 백성들이 햇병아리 같은 나를 지도자로 인정 안하면 어쪄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는 그런 영성도 없는데요.’ 하나님은 일찍부터 그를 지도자로 지목하고, 키워왔는데, 그래서 이제 ‘다 되었다’ 하고 든든하게 생각하고 맡기시는데, 정작 자기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어떡합니까?’ 하는 겁니다.

여호수아만 그렇습니까? 우리들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 만 가지 일들을 맞닥뜨립니다. 그 때마다 제일 먼저 우리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이 이렇습니다. ‘어떡하지. 큰일났다. 나 할 줄 모르는데, 잘 안 되면? 실패하면? 망하면? 아이고…’ 물론 ‘난 할수있어. 문제없어. 다 덤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걱정과 무서움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시는 손길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여호수아기 1장 5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네가 사는 날 동안 아무도 너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면,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9절에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여호수아에게만 하신 약속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아와, 내 삶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 어떻게 합니까? 나는 어립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 내 능력가지고 안 됩니다. 세상이 안 도와줍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적들이 많습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을 나한테 주십니까?’

이런 여러 가지 불평불만 앞에서, 주님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네가 사는 날 동안 아무도 너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면,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갑니다. 여리고성을 함성으로 무너뜨립니다. 앞길을 가로막는 장대와 같은, 거인과 같은 적들을 무찌르고 가나안 땅을 차지합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여호수아는 참 대단해’ 하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대단하니까, 위대하니까 그런 일을 하지, 우리랑 같나?’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의 모든 증언은 우리에게 하시는 증언입니다. 여호수아의 삶은 우리에게 하시는 예언과도 같습니다. ‘주님,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하고 엎드려진 우리에게,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하나님이 그렇게 응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위로하시고, 약속하시고, 격려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로 우리의 삶을 여호수아처럼 인도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뭘까요? 여호수아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힘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삶을 담대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인생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성경은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10:12).” 성경이 참 오묘한 것은. 절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격려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경고하십니다. 힘을 못 내는 인생에게는 힘을 주시지만, 교만하여 헛 힘쓰는 인생에게는 그 힘을 빼버리십니다.

여호수아가 참 훌륭한 것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승승장구하고 잘나갈 때 어떤 생각이 들까요? ‘역시 난 잘났어. 내가 최고야. 난 못하는 게 없어.’ 이러지 않을까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자기가 잘나서 형통한 것인 양 교만해집니다.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무서워하던 때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힘주시고 돌봐주시고 격려하시고 용감하게 해주셨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난 줄 압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러지 않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가나안 정복을 다 마치고, 그 땅을 백성들에게 다 나누어준 다음에, 온 백성을 불러서 당부합니다.

‘우리가 힘이 세서 이렇게 다 이기는 줄로 알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서 몸소 싸우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는 겁니다. 그러니 삼가 조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수23:10-11).’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떠올렸습니다. 이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구나. 내가 서 있는 것이 내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셨구나.’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힘있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 힘을 우리 자신에게서만 퍼 올리면 안 됩니다. 일차적으로는 나에게서 나오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힘 가지고 살면 그 힘은 언젠가 고갈되고 맙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무너진 것이,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니까 무너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 하나님이다. 나에게서 모든 힘이 나온다. 나를 의지해야 한다.’

똑같이 광야에서 고난 당했지만, 예수님의 광야시험은 성공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래, 세상아, 너 힘세다는 것 알겠다. 너 대단한 권세를 지녔구나. 그런데 나는 오직 하나님께 의지한다. 나는 배고프지만 괜찮다. 하나님께서 먹여주시는 걸로 족하다. 나는 권세 없지만 괜찮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권세만 의지한다.’

이제 복음서의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따라오겠다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제자가 되겠다고 결단하고 따라나서는 사람에게 이 무슨 힘 빠지는 소리입니까? ‘나 따라와 봐야 별거 없어. 머리 둘 데도 없어’ 하고서 신세 한탄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뒤 이야기를 봅시다.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 따라갈 텐데, 지금 아버지 장례가 있어서, 장례식만 치르고 가겠습니다. 집안 식구들 인사만 하고 오겠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의 대답이 이상합니다. ‘그래, 얼른 장례 잘 모시고 와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인사 잘 하고 와라’ 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맡겨라. 인사? 그런 거 필요 없다. 뒤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식의 강조법입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은 신세 한탄이 아닙니다. 결단이고 결심입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머리를 두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만 머리를 두겠다는 결단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결코 나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장례도 중요하지만, 그 중요한 것마저도 포기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작별 인사도 중요하지만, 그 중요한 것마저도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머리 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는 어떤 결단으로 인생을 살아갑니까? ‘하나님 힘주시고 도와주세요’ 하고 매달릴 줄만 알았지. 그렇게 매달려서 형통하게 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결단한 적은 있습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편안해진 내 삶을 누리기만 바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다시 힘들면 돌아와서 기도하지 않았나요? 그것으로 내 신앙 좋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과연 어디에 머리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 머리 둘 곳 없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힘들고 고된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한없이 누려가지만, 우리 영혼의 고향은, 우리의 머리가 향하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품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호수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우리를 담대하게 하시고 용감하게 하시는 은총이, 그 담대함과 용감함으로 마침내 인생을 승리하게 하시는 은총이, 우리 삶을 통해 아름답게 실현될 것입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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