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죄 많고 거룩한 하나의 교회를 믿습니다떨쳐 일어나 방향을 전환하고 고백하는 교회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11.05 14:55
▲ 죄인 된 무리들이 모인 거룩한 하나의 교회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거룩하게 하심을 믿는 것이다. ⓒGetty Image

전통적으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 있어서 성서에 나타난 교회의 표상들이나 은유들은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미주 1) 이에 반하여 교회의 본질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회의’(381년)가 고백하고 채택한 참된 교회의 네 가지 표지, 혹은 속성들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이것들은 신학적인 전통 속에서 흔히 참된 교회의 표지 혹은 속성으로 인정된다. 종교개혁자들도 이 네 가지 표지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교회를 결정하는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참된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했고, 복음이 순수하게 가르쳐지고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훈련이 실시되는 곳에 있다고 대답했다.(2) 우리는 여기서 교회에 대한 전통적인 네 가지 표지들 중 우선 두 개의 표지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교회의 통일성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믿는다. 그러나 교회의 통일성은 하나라는 숫자의 마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자연적 현상이나 단순한 윤리적 일치, 조화, 혹은 사회적 획일성이나 균일성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법이나 조직, 혹은 교회 행정이나 애매한 ‘사도적 계승’ 등에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하나의 영적 현상이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통일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통일성이다. 모든 장소와 모든 세대에 흩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한 분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과 영으로 그들 모두가 하나의 교제를 이루게 하신다.

그들은 하나의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하나의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통의 신앙고백, 하나님 나라를 향한 공통의 희망, 한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 세상을 위한 같은 섬김에서 교회의 통일성을 드러낸다.(3)

따라서 교회의 통일성은 우선적으로 교회 구성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통일성이 아니라 모든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그들 모두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가 이루는 통일성이다.(엡 4:4-5, 2:16이하).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의 통일성의 토대이다.(4) 그러므로 교회의 통일성은 생명이 없는 단일성이나 경직된 획일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교회의 통일성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세계 도처에 있는 교회들은 다양한 언어와 역사, 관습, 생활방식, 문화가 서로 다르고, 인적 구성이 다르다. 하나님의 부르심도 다양하고, 성령의 은사도 다양하며,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역할도 가지각색이다. 이런 의미에서 각각 다른 교회들이 있다.

이 모든 경우에 “평화의 띠”와 “성령의 일치”는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을 때”(엡 4:2이하) 보존될 수 있다.(5) 하지만 교회의 분열이 일어났고, 이것은 “하나의 걸림돌”이며 교회의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다(CDⅣ/1, 675).

그러나 우리가 구체적 교회(말하자면,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의 존재를 믿을 때에, 우리는 한 하나님과 제 교파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이 교회 안에서 성령을 믿으면, 그때 최악의 경우라도 결코 다른 교회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들 가운데 있는 다양성을 희석시켜버리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방황할 때에 진실한 에큐메니칼적인(ecumenical)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교회들 중에서 구체적인 교회에 속하는 것이 에큐메니칼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6)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마 18:20). 바로 그곳에 교회가 있다. 그래서 개별 교회의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있는 것이다.(7)

교회의 거룩성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는 죄 많은 교회이다. 교회의 역사는 모두가 참으로 인간적인 역사일 뿐 아니라 깊은 죄악의 역사였다. 그리고 교회는 처음부터 그러했다. 신약성서의 서신들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비참한 죄의 현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8)

그러나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라고 고백한다. 어째서 교회는 거룩한 교회인가?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에 의해 주어진 거룩함을 받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어 주심을 받고, 거룩하게 하여 주심을 받고,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습니다”(고전 6:11).

따라서 교회의 거룩함이란 신자들에게서, 그들의 도덕적, 윤리적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거룩함은 근본적으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죄된 인간성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버려진 자들을 받아들이시는 것으로 그의 교회를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는 동시에 ‘죄인들의 교제’(communio peccatorum)이며 ‘거룩하게 된 교회’는 동시에 ‘죄에 빠져 있는 교회’이다.(9)

이와 같이 거룩한 동시에 죄 많은 하나의 교회가 있다. 교부시대 이후 자주 일컬어지는 구약성서의 비유로 표현하면, 교회는 하나의 “순결한 창녀”(casta meretrix)이다. 거룩함과 죄성은 교회의 양면이다. 그러나 결코 동등한 양면은 아니다. 교회의 거룩함이 빛이라면 죄성은 그늘이다.(10) 바로 이 사실을 인식하고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는 바로 그곳에서 교회는 거룩하다.

그러나 이 교회의 결함이나 오류가 바로 그 중심적 교리를 간과하지 못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신조에서는 교회의 구체적 현실, 곧 죄된 모습이 아니라 한 신앙조항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교회를 믿습니다.” 이것은, 바르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11) 그러므로 “진실한” 교회, “참된” 교회를 찾으려고 구체적인 현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12)

미주

(1) Paul Minear, Images of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268-69를 보라.

(2) K. Barth, The Knowledge of God and The Service of God According to the  Teaching of The Reformation. Recalling The Scottish Confession of 1560, London: Hodder and Stoughton Publishers, 1960, 149. (이하 KGSG로 표기).

(3) H. Küng, The Church, Westminster: Burns & Oates, 1968, 273 (이하 Church로 표기).

(4) J. Moltmann, Kirche in der Kraft des Geistes(1975), 박봉랑 외 4인 역,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0), 360. 이 점은 칼 바르트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교회의 통일성은 “관념적인 혹은 조직화된 혹은 조직하는 전체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가 “그것의 전체성 속에서 언제나 개별적인 교회 공동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시는 분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CD Ⅳ/1, 673.

(5) Church, 275.

(6) 바르트는 겸손한 교파성이 세계교회일치 운동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CDⅣ/1, 681.

(7) K. Barth, 『바르트 교의학개요』, 전경연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9), 207.

(8) Church, 320-322.

(9) J. Moltmann,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376.

(10) Church, 328.

(11) K. Barth, 『바르트 교의학개요』, 207.

(12) Ibid., 209.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