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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서구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공공신학과 인식론적 패러다임 (4)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2.11.05 16:06
▲ 근대는 서구에서 시작되는 시각은 신화이다. ⓒGetty Image

유효한 역사는 인정의 정치와 더불어 있다

유효한 역사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사회구성을 상징적(언어, 종교, 문화) 측면과 물질적인 이해(경제, 사회제도, 신분/계급) 그리고 권력의 지배관계(정치와 매스 미디어)의 그믈망에서 분석한다. 다차적인 공론장의 영역들에서 계급/신분은 서로 교차되며 자본은 분화되고 전문화가 된다. 경제적으로 열약해도 전문지식을 갖는 종교인은 상징적인 자본을 소유한다. 그런가하면 국가 유공자의 자녀들에겐 국가가 명예를 인정해주는 문화적 자본이 존재한다. 또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특수신분이 형성되고 사회자본이 산출된다. 권력, 특권, 위신 그리고 인정을 둘러싼 투쟁에서 자본은 다양한 형식으로 기능한다.

그람시는 시민사회를 정치사회와 구분짖고 문화적 기능의 중요성을 시민사회(가정, 교육, 사회와 종교제도 그리고 노조 등)에서 파악했다. 만일 시민사회개념이 생활세계를 통해 확장된다면, 포스트콜로니얼 조건 안에서 나타나는 글로벌 세계체제와 이민물결, 난민문제 다문화 가정과 종교 다원성이 시민사회를 매우 복합적으로 조건짖는다.

여기서 사회학적 접합이론은 종교적 담론이 물질적 이해와 권력의 지배관계와 갖는 선택적 친화력에 주목하고, 담론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이것의 사회 문화적 정당성을 유포하고 독점해가는 특정그룹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선택적 친화력은 누가 지배담론을 선택하고 발전시키며, 어떤 신분그룹이나 계급에 의해 지배력을 갖는 지가 검토된다. 시민사회는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포스트콜로니얼 조건에 의해 각인되며, 공론장은 다른 인종의 시민권 문제와 민족주의 그리고 자유주의가 접합되고 새로운 하위계급의 유효한 역사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종교와 문화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인정과 다름의 정치이며, 비교신학이 주요 의제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비교 종교연구를 통해 개념화된다

공공신학은 서구의 역사기술의 이분법 즉 교회사와 선교사의 대립을 문제틀한다. 유럽중심의 교회사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교회의 역사를 단지 선교의 관점에서만 기록한다. 예를 들어 성만찬 논쟁은 교회사 주요 논쟁으로 부각되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벌어진 제사 의례의 논쟁은 선교사로 밀려나간다. 그러나 제사의례 논쟁은 유교와 기독교가 만나는 매우 중차대한 지점이 되며 성서주석과 조직신학적인 교리체계 그리고 목회적인 돌봄으로 확장된다.

이런 점에서 에른스트 트뢸취의 역사비평과 보편 종교사 연구는 공공신학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종교이며, 사회윤리적 가르침은 다른 종교와 문화 그리고 철학과의 소통과 대립 그리고 타협을 통해 발전했다. 트뢸취는 역사사회학의 방법을 열어주고 각각의 생활세계안에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향한 종교적 아프리오리에 정당 성을 부여한다. 역사 안에 있는 종교들은 상대적이며 상호 간의 영향을 미치며 움직인다.

이러한 접근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포스트콜로니얼 접근을 도와준다. 조나단 잉글비는 하나님의 선교를 포스트콜로니얼 틀에서 개념화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드러나는 글로벌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며, 새로운 성서주석과 해석학이 요구된다. 잉글비의 포스트콜로니얼 선교론은 글로벌 제국에서 빗어지는 구조적 폭력과 헤게모니를 넘어서려고 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선교가 유럽중심주의적으로 개념화될 수 없다면 타종교와 문화에 대한 비교연구는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종교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도덕과 공공 선에 기여한다. 최근 비교사회학은 차축시대의 종교를 통해 사회비판과 윤리의 중요성을 돌출 한다. 종교적 전통 즉 생활세계는 근대성과 대립될 필요가 없다. 근대는 단절이나 파열이라 기보다는 종교적 전통이 새롭게 갱신되거나 해석되면서 (종교개혁을 통해) 근대의 삶과 정치와 문화에 저변으로 깔려있다. 동양사회의 로컬 주민들은 식민지배에 대한 이들의 비판적인 응답 을 가지고 빌전시킨다. 동양사회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윤리는 이들로부터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면서 전통적인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교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포스트콜로니얼 종교이론은 차축시대와 비판적 원리에 주목한다. 이미 차축시대(c. 700 B.C.E. to 200 B.C.E.)에 발전된 세계종교에서 우리는 정치권력과 지성적인 종교 운동 사이에 긴장이 있음을 본다. 실제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은 기존질서에 대한 비판과 대안 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해방신학의 영역에서 울리히 두크로프와 프란츠 힌켈라메르트는 차축시대의 비판적 개념을 수용하고, 종교의 예언자적인 경제윤리와 지혜 그리고 영성에 주목한다. 이것은 오히려 후기 자본주의의 질서와 돈의 탐욕으로 찌들어버린 근대성에 비판적이며, 생명문명으로 전환하는 대안적인 지평을 제시한다. 종교의 경제윤리와 영성과 지혜는 글로벌 제국에 기입되어있는 경제적 부정의와 구조적 폭력과 생명파괴를 비판하며 포스트콜로니얼 근대성을 마련한다.

세계체제론은 이슬람의 세계를 비켜갈 수가 없다

사미르 아민은 공납제에 근거된 세계체제론을 통해 이슬람 문명에 대한 유럽 중심주의의 신화를 벗겨낸다. 그의 이론은 기원전 500년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탄생 그리고 이슬람의 시작에서부터 1500년 시기에 걸쳐 있다. 공납제의 문화에서 아민은 절대적인 진리를 향한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열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본다(Amin:  Eurocentrism, 100). 공납제 이데올로기와 문화는 고대 이집트, 헬레니즘-동방 기독교, 이슬람 문명 그리고 유럽의 기독교에서도 나타난다. 아민은 그리스적 사유와 동양적 사유의 대립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리스는 이미 비유럽적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나 또는 헬레니즘 동방 기독교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아민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더우기 아민은 유럽중심주의를 르네상스에서부터 추적한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시작되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을 예고한다. 1453년 오트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 노플의 함락된 이후 많은 동방의 그리스 학자들은 이탈리아로 도피했고, 그리스 사상에 대한 중요한 문서들과 전통을 소개했다. 아민은 콜럼부스의 신대륙 정복(1492)이 르네상스의 발전과 관련된다고 본다.

그러나 아민의 르네상스에 대한 과도한 주장은 수정되고 비판적으로 보충될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에 앞서 이슬람의 문명이 있었고 유럽의 근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는 유럽의 근대의 헤게모니를 이슬람에 대해 가지게 된 출발점으로 볼 수 없다. 르네상스에 대한 이슬람의 기여는 이미 750년부터 850년 사이에 바그다드의 아바시드 (Abbasid) 칼리프 체제에서 그리스 사상에 대한 번역사업이 시작되었다.

코스모폴리탄 바그 다드는 중요한 도서관들을 소장했고 시리아 기독교인들의 도움으로 그리스의 과학, 의학, 수학 등에 관한 저술들이 번역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랍의 번역은 문헌학적으로 볼 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 대해 매우 정확했다. 더욱이 코르도바는 스페인의 칼리프의 수도였으며 10세기와 11세기에 경제번영과 더불어 문화적 성취와 지적발전의 정점에 서 있었다. 70여개 되는 도서관들 가운데 칼리프의 개인 도서관은 심지어 400,000권의 도서를 소장했다.

시카코 대학의 이슬람 역사학자인 먀샬 핫지손(Marshall Hodgson)은 16세기에 세계는 이슬람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문명권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세계사는 다시 씌여 져야 한다. 이슬람 세계 문화권(Islamdom)은 기독교 세계 문화권(Christendom)처럼 근대의 발전에서 서로 병립되고, 인류의 보편사 안에서 에큐메니칼한 상호관계에 서 있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기독교와 이슬람을 비교연구 하는데 결정적이며, 유럽중심이론이나 오리엔탈리즘은 이슬람 문명을 삭제해버리려는 서구 학자들의 음모론으로 폭로된다.

이슬람의 사회학자인 아르만도 살바토레(Armando Salvatore)는 전통과 근대성을 다루면서, 16세기 초엽에 오토만 이슬람, 근동과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발칸지역, 북인도의 무갈 등은 이미 유럽이 동경했던 매우 중요한 문명과 경제적 반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슬람 문명 또는 이슬람돔은 유럽의 근대성의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포스트콜로니얼 근대성의 길을 예비한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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