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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이 만든 참상우리가 맺을 열매(요한복음 15:16-1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11.06 04:46
▲ Victor of Crete, 「Christ the Vine」 (1674) ⓒWikipedia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들어가는 말

이번 주일은 창조절 열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에 선정된 요한복음의 본문은 코로나가 재유행하던 재작년에 말씀을 전해드렸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해서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요한복음 13-17장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셨는지, 요한복음은 왜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특히나 지금까지의 교회가 잘못 생각해오고 있던 열매 맺음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매 맺지 못한 가지가 버려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서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만이 가지고 있는 이 말씀 전체의 내용보다는, 오늘 본문이 속한 요한복음 15장 1-17절의 말씀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어린이 찬송으로도 친숙한 말씀인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성찬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실제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말씀과 얼마나 유사한지, 실제로 이 말씀은 언제 선포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이 말씀을 마지막 만찬 때에 선포하신 말씀 중 하나로 엮어놓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만찬 이야기에는 공관복음서에 나타나는 떡과 포도주의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요한복음 13장의 상황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마지막 만찬의 상황과 같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공동체가 당시의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들로부터 고립된 채 신앙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면, 이들도 분명 떡과 포도주의 의식, 성찬의 예식을 알고 있었고 지켜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그 예식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의 예식에 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오늘 본문은 포도나무를 소재로 하는 비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분명 요한복음을 기록한 공동체의 의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성찬 예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간접적으로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이런 방식을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마지막 만찬의 순간을 보면,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고 나누신 이후에 이런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막14:25)

마태복음 26장 29절에는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22장 19절에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게 있어서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성찬 예식은 승천하여 떠나가신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한 예식, 또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 위한 예식으로 여겨진 듯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떠나가신 예수님을 기념할 이유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릴 이유도 없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17절의 주된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포도나무가 되시며,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그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신 분도, 다시 오실 분도 아니십니다.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 말씀을 지켜 살아간다면,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되고, 구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 있어서 성찬 예식은 예수님을 기념하는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며 고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열매 맺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열매를 맺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실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흔히 신앙의 결실을 맺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도대체 그 결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안에서 그 결실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그 사랑이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이것을 요한복음 13장에 나타난 발을 닦아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을 위해 발을 닦아 줄 수 있는 정도의 실천이 사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안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어있기도 합니다.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오늘 본문에서 제시된 가장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우리의 삶에서 쉽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뿐더러, 이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저는 여러분께 당신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분명 또다른 누군가의 슬픔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유하게 만들어본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다른 이를 도우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목숨까지도 내어줄 정도의 도움을 친구와 이웃에게 전하는 일이 사랑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삶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을 기억하기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과 지금도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며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신앙일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를 위하는 일, 누군가를 돕는 일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런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 맺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분명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천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시대의 열매 맺음

지난 한 주간 우리나라에는 큰 슬픔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할로윈데이에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비통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슬퍼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주에도 이 참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주일로 넘어가는 밤에 이 참사의 짧은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이 일이 화려함, 인싸의 삶을 쫓는 젊은이들의 문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 참사의 원인을 젊은이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 참사의 원인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대부분 지자체나 경찰의 대처가 미비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성향이나 나이에 따라 덧붙여지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도대체 할로윈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왜 젊은 아이들은 이태원이라는 그 장소에 그런 코스프레까지 하면서 나가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들이 덧붙여집니다. 그리고 참사가 일어난 순간 그 옆에서 즐기고 있던 다른 젊은이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태원에서 형성되는 문화를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문화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에게 이번 참사의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 저녁 참사에 관한 제대로 된 뉴스를 보고 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14년 세월호 사태 이후 ‘학교 안전교육 7대 표준안’이 만들어져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2016년 이후로 학교에서 51시간 이상 안전교육을 실행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아주 가끔 재난대피 상황을 묘사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때 어딘가로 대피할 때면 꼭 등장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밀지 말고 침착하게 천천히’라고 안내하는 대사가 꼭 등장합니다.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움직일 때는 뒤에서 미는 압력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2001년에 군중 밀집에 의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저의 시대에는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만, 이런 매체를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안전교육에도 당연히 이런 점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재난대피 상황 대처 매뉴얼’ 어디를 찾아봐도 ‘밀지 말고 천천히 이동하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학교 매뉴얼 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매뉴얼에도 이런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학교안전교육 7대 표준안’에 군중밀집 상황을 추가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태원에서 좁은 골목에 몰려있던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지금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를 가르치지 않았던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세월호 사태가 있었음에도 면밀한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매뉴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기보다, 그저 소 잃고 외양간에 대충 나무판을 덧대는 수준의 안전교육 매뉴얼을 만들고 실시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점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안전을 위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위급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조차 무관심했던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무관심했던 우리들로 인해서 안전이라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금의 큰 참사를 바라보며 그저 누군가의 책임인지만을 따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서로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맺을 수 있는 열매, 사랑의 열매는 사람들이 무관심해서 쉽게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또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조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일, 아직 일어나진 않았지만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들입니다.

우리가 국회의원도 아니고 이런 일을 어떻게 합니까? 시민단체 활동이라도 해야 합니까?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관심 갖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매학기 제 아이의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학교 교육에 관해서, 안전교육 시행에 관해서, 학교 방침에 관해서 조사합니다. 솔직히 귀찮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적당히 ‘그렇다’에 체크하고 끝내버립니다. 아이의 교육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더 나은 방안을 제안할 통로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귀찮음에 넘겨버렸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맺는 열매는 분명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는 사회를 향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사회,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한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를 세상에 맡겨놓고 무관심에 빠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서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안이 있을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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