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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라“내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누구입니까?”(누가복음 15:1-7)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11.06 22:05
▲ Jan Luyken, 「The triumphant return of the Shepherd」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삶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는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해서 미리 포기하거나, 가능하다고 해서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렇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기대하며 맡겨진 일,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피해 보지 않기 위해 걸어 잠근 마음의 문, 경험을 통해 닫을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문을 하나님께 열어 두어야 합니다. 어떤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던 곁을 하나님께는 내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 삶을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마음을 여십시오. 바로 그때 하나님이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계시는지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예배로 드립니다. ‘한 해의 수확을 끝내고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때에 맞추어서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다 보면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한 해 성도님들이 삶에 뿌린 씨앗이 있습니다. 자라서 열매를 맺기를 소망하며 뿌린 씨앗이 있습니다. 이 씨앗을 키우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의 힘으로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린도전서 15:10b)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도 바울의 삶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일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린도후서 11:23-27)

이 정도로 살았으면, ‘내가 주도적으로 했고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고백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오늘 주일을 추수감사예배로 드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이 예배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씨앗을 심으셨습니까? 심은 씨앗을 통해 열매를 맛보셨습니까? 씨앗을 심으셨다면 그리고 열매를 하나님께 맡긴 성도라면 내가 원한 열매가 아닐지라도 수확하는 기쁨을 반드시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이 시간 성도님들에게 목사 가족이 추수하게 된 하나의 열매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몇 달 전에 성도님들께 목사가정이 ‘SPC 기업 상품 불매’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들이 “제발, 이거 사주시면 안 돼요?”라고 간절하게 바라보며 말할지라도 “안돼”라고 말하기를 수십 번을 한 것 같습니다. 자주 사 먹던 것들 대부분이 SPC 계열사에서 나온 식품들이라 많이 불편했지만 참았습니다.

몇 달을 불매운동을 하면서 불편함을 참은 이유는,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였습니다. 기업이 이익을 보겠다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아 많은 노동자가 생명을 잃거나 상해를 당해야 했고, 노동력 착취를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틀 전,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노사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회적 합의 이행,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합의’가 대체로 이루어졌고, 산재 사망과 사고 그리고 안전대책은 이제부터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불을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부모나 자녀의 일도 아니고,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노동자들을 위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인 불매운동을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고, 환경을 바꾸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불매운동은 제 가족이 뿌린 씨앗 중 하나였습니다. 이 씨앗은 감사하게도 추수감사주일을 앞둔 이틀 전에 열매를 맺어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SPC기업의 노사가 함께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이유는, SPC계열사의 노동자들,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이 저에게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언급하고 계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이 단순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교회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리와 죄인은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작은 자’라고도 표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교차 본문이 되는 마태복음 18:10-14입니다. “10 너희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그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예수님이 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작은 자’는 오늘날의 사회적 소수자들, 약자들입니다. 성경은 늘 이런 약자들의 삶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태복음 25:34-40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야고보서 2:14-17 “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병들어 있을 때 돌보아 주고, 어려움에 있을 때 짐을 같이 짊어지는 것은 단순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을 돕는 것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놀라운 신앙의 신비입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사랑하며 도왔을 뿐이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이 알려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 두 가지를 동시에 실천한 것이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방금 읽어드린 야고보서의 권면대로라면, 사랑의 행위는 자신을 구원하는 행위도 됩니다.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까?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누구와 식사를 하고 계십니까?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당시 세리와 죄인들은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 어울려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과 어울리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상당한 비난을 받아야 했고 자신도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었기에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비판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섰을 때, 누군가를 환대하며 함께하려 할 때 우리도 이런 비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으러 왔다.”(누가복음 19:10) 그리고 오늘 말씀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교차 본문에서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복음 18:14)

오늘날의 세리와 죄인들은 누구를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 곁의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는 누구입니까? 성도님들이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누구입니까? 누구도 그들 곁에 가지 않을 때 우리가 곁에 있어야 하고,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때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얼마 전에 대대교회에서 장균 목사님과 목사님과 함께 다니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다니는 이 아이는 지적장애로 태어났습니다. 통제가 거의 불가능해서 많은 사회복지 선생님들이 힘들어서 이 아이를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 아이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주중에는 점심 이후부터 주말에는 거의 온정일 맡아 아이를 돌보고 계셨습니다. 주일예배 때도 맡으셔야 하기에 목사님은 예배를 인도하고 아이는 예배당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서 예배에 방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다참다 성도님들 가운데 지적장애 아이 맡는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권유도 듣게 되었고, 어떤 성도님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장균 목사님이 오늘 본문을 말씀하시면서 이 아이가 바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달라졌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찍 은퇴하면, 지적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님들에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누구입니까? 사실은 그 한 마리의 양 때문에 저와 성도님들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때문에 축복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치셨듯이,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신명기 26:12-15 “12 세 해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해가 되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모든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따로 떼어서, 그것을 레위 사람과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이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서 마음껏 먹게 하십시오. 13 그렇게 할 때에 당신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아뢰십시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 집에서 성물을 내어 레위 사람과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다 나누어 주어서, 주님의 명령을 잊지 않고 어김없이 다 실행하였습니다. 14 우리는 애곡하는 날에, 이 거룩한 열의 한 몫을 먹지 않았고, 부정한 몸으로 그것을 떼놓지도 않고, 죽은 자에게 그것을 제물로 바친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 우리의 하나님께 순종하여서, 십일조에 관하여 명령하신 것을 그대로 다 지켰습니다. 15 주님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주님께서 우리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주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려 주십시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양이 있어야 할 자신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바로 저와 성도님들의 씨앗입니다. 선을 행함에 좌절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을 하면 결국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더불어 하나님께 ‘명령한 것을 지켰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나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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