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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거룩의 장소입니다성전을 벗어나(열왕기상 8:27-3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11.13 03:36
▲ 「Solomon dedicating the temple」, 『The story of the Bible from Genesis to Revelation』 (1873) ⓒWikimediaCommons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들어가는 말

창조절 열 한째 주일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도 기후 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되고, 교회 안에서도 기후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관한 세미나가 많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창조절 기간의 설교 본문은 자연과 세상에 관한 본문들이 지정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조절 기간이 워낙 길어서 그런지, 창조절 기간 중에 선정된 본문들은 자연과 창조에 관한 본문들이 상당히 적어 보입니다.

오늘 본문도 창조나 자연생태와는 큰 연관이 없는 본문입니다. 그래도 올 한 해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에 맞춰 말씀을 전해드리기로 했기 때문에 이번 주간에 지정된 본문으로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열왕기상 8장 본문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직후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희가 오늘 읽은 본문은 솔로몬의 기도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열왕기상 8장 12절부터 시작되는 솔로몬의 연설과 기도문은 상당히 재미있는 본문입니다. 성전에 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나타나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 이전의 신앙과 포로기 이후의 신앙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조절이라는 절기 자체에는 맞지 않는 본문일 수도 있지만, 지금 코로나 이후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기에 적절한 본문으로 보입니다. 오늘 저희는 솔로몬의 연설과 기도를 통해 성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우리의 교회는 어떤 곳인지,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며 신앙을 가꿔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

솔로몬의 연설은 자신이 하나님의 처소를 건축하였다는 선포로 시작됩니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지만’으로 시작하는데, 13절에서 그런 하나님을 위해 ‘계실 성전을 건축했다’고 말합니다. 성전이 건축된 이유는 하나님을 그곳에 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 이런 신앙은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환상 중 10-11장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동문을 열고 그곳에서 나오셨고, 성읍 동편에 있는 산에 머무셨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이들 앞에 나타나시는데, 이 환상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고 계셨다는 신앙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기에 의미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을 깨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머물고 계신 장소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패배가 되며, 극단적으로는 하나님의 죽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기를 겪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패배하실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신들에 의해 죽임당하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이에 대한 에스겔의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전에서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성전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은 파괴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패배도 죽음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시게 만든 이들의 잘못이라고 에스겔은 지적합니다.

오늘 열왕기는 에스겔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습니다. 열왕기상 8장 16절 이하로 내려가면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거처’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곳’,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으로 바뀌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둔 장소라는 표현은 신명기 사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12-16장과 26장에는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장소’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보좌에 계신 상태에서 그의 이름만을 성전에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 속에 정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27절에서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인간이 만든 성전이 어떻게 하나님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표현, 29절에서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신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계시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성전 중심의 제의중앙화 vs 이름만 두신 곳

솔로몬의 기도에 담긴 일부 내용은 분명 바벨론 포로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처음 성전 봉헌 후에 어떤 기도가 올려졌는지는 전체적인 내용을 추려보면 유추할 수 있겠지만, 몇몇 부분은 확실하게 후대에 덧붙여진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어 34절에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라는 내용이나, 46-49절에 나타난 적국에 사로잡혀간 이들이 회개할 때 그들을 돌아봐 달라는 간구는 바벨론 포로기가 전제되어 있는 표현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왕이 자신들의 신이 머물 장소를 건축하고 이를 봉헌하면서 드리는 기도로 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솔로몬의 연설과 기도 안에 포로기 전후의 신앙이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상당 부분 수정되고 편집되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구약성경의 여러 책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의 경우에는 이렇게 두 가지 신앙이 함께 놓여있음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솔로몬의 성전 봉헌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예배가 시작되는 제의 중앙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의 궁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을 갖춰가게 됩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저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나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믿는 신이 현현해 있지 않은 장소, 그 신이 존재하지 않은 장소에서 제의 또는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한정되어 계시지 않다는 점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감성 속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곳에 와 계실 것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예배를 시작할 때 우리가 성령임재의 기원을 드리는 이유도 성령께서 이곳에 함께 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이름만을 두셨다는 솔로몬의 선포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만약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하늘에 계신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굳이 성전에서 제의를 지낼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사는 장소에서 하늘을 향해 제의를 지내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도 마찬가지지만, 열왕기상의 본문도 하나님께서 이곳만을 택하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 다른 지역과 성전의 차별점을 강조하기 위해 성전에는 언약을 넣은 궤가 있다는 사실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놓인 장소이지만, 그럼에도 예루살렘 성전이 제의의 중심이 되는 장소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이름만 두셨다는 신앙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경험한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심하며 이끌어낸 결론일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이 어떤 한 공간에 한정되어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벗어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오히려 성전에 한정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보다 더 발전된 신앙 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열왕기상 8장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충돌되는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자면, 유대인들의 신앙이 어떻게 발전되어 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거룩한 장소

두 신앙이 충돌하고 있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상통하는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든,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든 그곳은 다른 장소들과 구분되어 거룩하게 여겨질 곳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장소를 주시하시며 그곳에서 들려오는 간구를 들으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우리의 생각은 더 확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만이 거룩한 곳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든 공간이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한정되지 않은 신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성도님들이 더 편한 신앙생활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교회만이 거룩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편이 신앙생활을 지켜가기에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때때로 보면,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이곳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듯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 밖,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모두가 하나님이 계신 공간이고,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지켜나가야만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그 장소들은 모두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만 하는 장소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삶의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만 하며, 삶의 모든 장소에서 선을 행하고 사랑을 전하는 데에만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교회라는 한정된 공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쳐야만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며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뜻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거룩하다 여기던 교회에서마저도 세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어쩌면 세상보다 더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 자체가 잘못된 신앙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나아간 신앙으로 변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게 교회를 택하셨지만, 또한 우리의 삶의 모든 장소에서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속적인 모습을 보일 장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할 장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모든 장소가 하나님께서 주야로 지켜보시는 택하신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거룩함을 지키는 이들의 간구를 들어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그 응답을 들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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