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우리가 하나님을 조롱하는 방법“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7-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11.14 00:17
▲ 기도와 행동이 다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원치 않는 부정적인 큰일을 겪어야 삶이 엉망이 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삶은 얼마든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외부의 상황에 우리 자신을 맡기면 늘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삶은 늘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욕망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둘러싼 상황에 기대며 살지 않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어차피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시고, 맡기시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십시오. 우리가 찬양으로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의 고백이 거짓이 아니라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대대교회 장균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서, 장애 아이가 바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달라졌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누구일지 묵상해 보셨나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셨나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분명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 양을 찾아야 합니다. 왜 찾아야 합니까? 저와 성도님들에게 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양을 찾아 돌봄으로써 하나님께 ‘명령한 것을 지켰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나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7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기를 속이지 마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시오!” 맞습니다.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에 대한 본심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와 성도님들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선적인 마음으로 예배드리거나, 하나님을 조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마음과 행위가 하나님을 조롱하려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정확하게 보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 조롱합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면서, 삶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12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31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라!”라고 하시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빌립보서 3:17)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당장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들을 짊어지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마태복음 6:7-8)

그래도 걱정할 제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셨습니다.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4a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마태복음 6:31-34a)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고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7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특히 기도할 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서 두려움을 심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습니다. 기도하면서 두려움을 심는 성도님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려움의 동기로 기도를 하게 되면, 두려움의 상황만을 거둘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서 4:6-7)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기도는 두려움을 심는 기도일 뿐입니다. “두려우니까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질문하실지 모르지만, 두려움으로 하는 기도는 믿음 없이 드리는 공허한 기도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이렇게 아뢰는 성도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자가 올바로 기도하고 있는지는 이 경험을 하고 있는지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있는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일상 속에서 두려움의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재생산하며 살아갑니다. 기도했다면, 평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한 대로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무엇을 심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평안과 감사를 심지 않고 두려움을 심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7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성도로서 마땅히 심어야 할 것을 심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을 심어야 할지를 말해주었습니다. “8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육체가 원하는 것을 심지 말고, 성령이 원하는 것을 심으라는 권면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자신의 육체를 위해 무언가를 구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기 위해 구하기 시작합니다. 육체를 위해 구하는 것은 결국 썩을 것들뿐이지만, 성령을 위해 구하는 사람은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선택권이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 살아가며, 육체를 위해 구함으로 잠시 해결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육체에 집중하는 삶은 결국 또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두려움을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조롱하지 않는 삶, 성도가 마땅히 심어야 할 것, 육체가 아닌 성령에 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9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선한 일이라고 하면, 직접적인 행동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에 앞서 선한 일을 하겠다는 의도를 먼저 가져야 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다시 삶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그리고 그 결단이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의도를 내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영생을 거둘 것이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이 땅에서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이 이 땅에서 실현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조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심지 마십시오. 결핍을 심지 마십시오. 사랑을 심고, 희망을 심고, 감사를 심으십시오. 영생을 맛보며 평화를 경험하고 또 흘려보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