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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루에디 베버와 토착화한 그리스도교 신앙 예술의 발견선교와 미술: 테오 순더마이어를 중심으로 (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2.11.15 15:56
▲ Hans-Ruedi Weber (1956) ⓒWCC archives

신학과 미술과의 관계에서 주목할 다른 신학자는 한스-루에디 베버(Hans-Ruedi Weber)이다. 오랫동안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에큐메니칼 성서연구방법론을 연구하고 실천해온 베버는 5대륙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성서신학자들과 예술가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자료를 모았고, 거기에서 선택한 작품들과 성서 택스트를 서로 대화시킨 결과를 《임마누엘: 성서와 미술에 나타난 예수의 오심》이라는 책으로 엮었다.(1)

베버는 권력정치의 잔혹한 세상 한가운데로 상처받기 쉬운 아기로 오신 하느님의 놀라운 사건에 대한 본래의 증언들을 재발견하도록 초대한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작품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마굿간 그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동방박사들과 천사들, 목자들과 양들, 반짝이는 별들, 당나귀와 낙타, 한 가운데 예쁜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 그리고 뒤쪽 어딘가에 보이지 않게 서있는 요셉이 등장하는 그런 마굿간에 대한 상상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베버가 네 복음서의 예수 탄생 이야기를 조명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들은 시대와 대륙을 넘나들면서 찾아낸 것들이다. 작품 선택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성서 이야기들에 대한 분석적이고 성찰적인 해석과 직관적이고 시각적인 해석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에 근거한다. 이런 과정에서 한편으로 예술적으로는 매우 탁월하지만 택스트 분석을 통해 얻어진 통찰을 보완하지 못하는 작품들은 배제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창조된 상황이나, 그것의 특별한 디자인이나 색깔 등이 성서의 택스트나 이야기들에 새로운 빛을 조명할 경우 채택되었다.(2) 그러므로 베버가 선택한 작품들은 3세기 초반 로마의 카타콤에 그려진 익명의 프레스코 작품과 모자이크에서부터, 중세 유럽의 그리스도교적 작품과 유명한 램브란트의 작품(목자들의 경배, 1646년) 등만이 아니라, 17세기 인도에서 힌두교도에 의해 무슬림 왕을 위해 그려진 작품, 타이완과 하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 짐바브웨에서 만들어진 목각인형, 현대 일본(사다오 와타나베의 ‘이집트로의 피난’, 1979년, 요코 그랜트의 꽃꽂이), 나이지리아, 우간다에서 만들어진 작품 등 매우 광범위하다.

▲ Paul Woelfel, 「Annonciation」 ⓒhttp://www.brewer-com.com/GodsPromise/AnnunciationArt.html

베버는 누가복음의 수태고지 사건을 성찰하기 위해 나이제리아(Nigeria) 출신 작가 폴 월휠(Paul Woelfel)의 ‘수태고지’를 선택한다.(3) 그 이유는 이 작품 가운데 성서의 수태고지 이야기의 모든 전형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먼저 주의 천사가 등장한다. 성서의 전승에 따르면 체루빔(cherubim), 세라핌(seraphim), 천군들만이 날개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천사(angeloi)는 언제나 사람의 형태를 가진다. 야곱의 꿈에 나타난 천사들은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리기 위해 사다리를 필요로 했고, 가브리엘이 다니엘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가브리엘은 ‘사람 같은 모양’(다니엘 8,15)으로 나타났다. 초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도 천사들은 사람의 형태를 가진 소식전달자로 묘사된다. 천사들이 날개를 달고 등장하는 것은 4세기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가브리엘에게 천사적 권위를 준 것은 그의 날개가 아니라, 영의 능력과 하느님의 메시지였다.

월휠의 ‘수태고지’에서 마리아는 놀라움에 감격한 모습으로 위대한 존엄성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아프리카 의자에 앉아있는데, 마리아의 오른 손은 가슴을 향하고, 왼손은 하늘을 향하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제가요?’라는 놀라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메시지에 대한 순종을 상징한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느님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전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가브리엘은 신발을 벗어 한편에 두고 있다. 월휠은 이것을 시내산에서 불붙은 가시나무 앞에서 신발을 벗은 모세(출 3,1-6)와의 연관성에서 그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느님의 구원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것을 창조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베버는 해석한다.(4)

성서의 메시지에 따르면 하느님의 놀라운 메시지에 대한 반응이 때때로 거부 혹은 표징에 대한 요구의 형태로 묘사된다. 그런데 월휠의 작품에서 마리아는 거부하거나 표징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자신의 왼손을 하늘을 향하여 펼침으로써 자신이 성령의 능력과 신적 은혜의 채널, 하느님의 도구가 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준다. 그러자 마리아를 둘러싼 주변의 사막이 점차 푸른 초원으로 변하면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은혜의 역사가 이미 사막 한 가운데서 시작된 것이다.

월휠의 작품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가브리엘은 모두 흑인으로 그려져 있다. 베버의 에큐메니칼 운동배경을 이해한다면 그가 월휠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베버는 아프리카에서 토착화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떻게 예술작품을 통해 해석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아프리카의 예술적 성서해석이 전통적인 서구의 성서해석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런 다양성과 차이가 얼마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풍부하게 하는지를 증언하려고 한다. 베버는 성서연구와 예술작품 해석을 결합시키면서 작품을 단순한 분석과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명상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미주

(1) Hans-Ruedi Weber, Immanuel: The Coming of Jesus in Art and the Bible(WCC, Geneva 1984)

(2) Hans-Ruedi Weber, 위의 책, 1.

(3) Hans-Ruedi Weber, 위의 책, 37 참조.

(4) Hans-Ruedi Weber, 위의 책, 3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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