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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하고 주목받기에는 이만한 이슈가 없었겠지”한 신생 언론의 10.29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단상
이정훈 | 승인 2022.11.17 15:49
▲ 10.29참사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들의 유실물들 ⓒ연합뉴스

158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10.29참사가 발생한지도 벌써 보름을 넘겼고 20일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보내면서 그간 한국 사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정권의 모습이 그러했다. 정부의 안일하고 무능한 모습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며 비난을 받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탄식이 저절로 여기저기서 터저 나왔다.

윤 정권은 강제적인 애도 기간 설정으로 책임 공방을 최소하는 전략을 취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조문을 며칠씩이나 해대며 자신과 현 정권의 위기감을 애둘러 온 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온갖 종교에 고개를 들이밀고 자신도 애도하고 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국무총리라는 작자는 해외 언론들도 다수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실실 웃으며 답변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며 온갖 욕을 먹었다. 고개를 숙이며 사과 한 마디 없는 정부 인사들의 행태에 비난이 아니라 분노가 차오른다고 시민들은 말했다. 누구 하나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이 없었다.

시민들은 윤 정권의 초지일관한 무책임한 모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거야?”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광화문 광장에 다시 들어선 촛불 집회가 그간 윤석열 개인에게 향하던 것이 이제 윤 정권 전체를 향해 정조준 하고 있다. ‘어게인 2016’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왜 공개했냐고 물으신다면

여기에 또 한 번 휘발유를 들이붓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신생 언론에서 10.29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이 명단 공개를 두고 소위 윤 정권에 대해 반발하는 진영 내에서도 설왕설래가 오고 갔다. 이렇게 파장이 커지자 명단을 공개한 신생 언론사에서 이에 대한 변을 내놓았다. 기자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동의할 할 수 없지만 이 신생 언론의 요는 이렇다.

“영정도 위패도 없이 얼굴과 이름을 잃어버린 채 통제된 애도, 일방적 애도에 의해 고인들은 다시 한 번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모독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공분을 우려해서 참사를 실명(失名)화하고 155이니 158이니의 숫자 속에 가두는 행태,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막고, 시민들과 유족들을 분리시키려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걸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정부와 당국의 행태는 희생자와 그 가족, 나아가 사회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이 사회적 고통과 비극 앞에서 함께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시민들은 그를 위해 울어줄 이름이 없고, 그를 위해 꽃을 바칠 얼굴이 없는 참담함과 황망함 속에서, 한편으로는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윽박지르는 모습 앞에서 국가는 대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있는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시민언론 ○○○는 죽은 이들을 위한 애도를 애도답게 하기 위한 길을 찾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가 보여줘야 할 책무이자 도리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출발은 그 잃어버린 이름을 불러 주는 것, 그것이 참된 애도의 출발점이라고 봤습니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죽은 이들의 이름을 호명해 줘야 비로소 죽음을 당한 이들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

○○○의 명단 공개 결정은 언론으로서의 할 바를 다하려는 것이었고, 동료 시민이 당한 재난에 대해 연대하려는 시민으로서의 책무였으며 또 스스로 희생자들의 부모로서 형제로서 이웃으로서, 상주 아닌 상주로서의 도리였던 것이었습니다. 언론의 책무와 함께 내면으로부터의 의무감이 우리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었다고 밝히고 싶습니다.

유족들의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기사에서 밝혔듯이 유가족협의회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죽음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 이 사회 전체가 희생자들의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개별적으로 연락, 접촉하는 것은 오히려 실정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또 민들레의 명단 공개에 대해 자신의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책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이해와 공감을 보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궁색하고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변명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이 신생 언론이 내세운 이유에 대해 어느 것 하나 동의할 수 없는 변명으로 들린다. 우선 실명을 알아야 “참다운 애도의 출발점”이라는 것과 “희생자들의 부모로서 형제로서 이웃으로서, 상주 아닌 상주로서의 도리”는 누구나 다 알 듯이 전통적인 유교식 사고(思考)이다. 물론 유교 문화권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이것이 출발점이라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두 번째는 “명단 공개 결정은 언론으로서의 할 바”라는 점 또한 궁색하기 이를데 없는 변명이다. 소위 독자들의 ‘알 권리’라는 명분에서 비롯된 논리다. 알 권리(right to know)란 “사실을 알고 있을 권리로, 자유롭게 정보를 수령(자유권), 수집(청구권)하거나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오히려 10.29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누가 알고 싶어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마지막으로 “유족들의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기사에서 밝혔듯이 유가족협의회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죽음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 이 사회 전체가 희생자들의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문구에서는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누구보다 가슴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은 유족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들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독자적인 결정을 했다는 논리는 궁색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하다. 윤 정권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싶다.

언론의 책임과 의무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고 시대에 따라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희생자들의 편에 서는 이른바 ‘당파성’이다. 이는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언론 기능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내팽게치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내몰라라는 것은 이른바 나쁜 의미에서 정치적 행보일 뿐이다. 그저 윤 정권이 옳지 않기에 이들을 악용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하나 암암리에 회자되는 말들 중에 소위 진보적 색채를 지닌 언론들도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공개했다는 말들도 돈다. 그럼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왜 이들은 공개하지 않았냐’고 말이다. 이에 대해 또 암암리에 돌고 있는 말들은 “진보 언론들은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기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개적인 답변은 아니지만 이러한 진보 언론의 입장에 대해 아주 신랄한 비난이 몰아치고 있다.

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번 신생 언론의 명단 공개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말이다. 그 친구가 속해져 있는 단체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개인적인 의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전제까지 붙여서 물었다. 친구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나는 성급했다고 생각해. 창간하고 주목받기에는 이만한 이슈가 없었겠지.”

사실 이 답변이 듣고 싶어 친구에게 물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오후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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