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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딜레마 그리고 막스 베버막스 베버와 젤렌스키 (1)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 승인 2022.11.19 15:49
▲ 우크라이나 군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Reuters
정승훈은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미네소타 루터신학대학 부교수를 역임 후 시카코 루터 신학대학원 석학교수로 임명되었다. Historians’ Debate-Public Theology 사이트 저널 편집장으로 서구 사회에서 미디아의 담론과 정치전략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막스 베버와 젤렌스키 그리고 대한민국? - 사회학적 상상력

국제 정치학 모임에서 내놓으라 하는 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푸틴이 국제적인 하층신분(pariah)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막스 베버가 힌두교와 유대교를 비교하면서 사용한 용어다. 젤렌스키는 미국 CNN 방송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푸틴과 언제든지 협상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2년 전부터 이러한 입장에 변함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협상에서 실패하고 위험한 생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푸틴은 3차 세계대전을 해야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딜레마

관록 있는 정치분석가인 피오나 힐과 앙겔라 스텐은 2022년 4월 해외관계와 이슈를 다루는 전문저널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러시아와 우쿠라이나 협상 팀은 잠정적인 합의를 했다. 러시아는 2월 24일 침략이전의 상태로 물러서고, 그 대가로 우쿠라이나는 나토가입을 철회해야 한다. 대신 우쿠라이나는 안전보장을 다른 여러 나라 국가들로부터 합의할 수가 있다. 잠정적 합의가 결렬된 것이 푸틴의 책임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영국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키이우를 방문하고 나토의 국가들은 이러한 합의를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전달했다.

미국 역시 워싱턴의 목표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며 협상 테이블이 불필요하다고 본다. 워싱톤의 목표는 러시아를 크림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국민의 77%가 이제 서방국가는 전쟁 중지를 위한 평화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오히려 푸틴이 시도한 평화협상에 젤렌스키가 원칙적으로 수긍을 했지만,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방문으로인해 휴지조각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젤렌스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푸틴은 전쟁을 그만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은 푸틴의 체제붕괴를 위해 제한 핵전이라도 불사하려고 한다. 젤렌스키는 나토 가입을 통해 안전보장을 얻어내려고 하지만 푸틴이 거절한다. 전쟁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막스 베버가 보는 젤렌스키?’, 표현이 좀 이상하다. 젤렌스키가 베버를 좋아하고 그의 정치 사회학을 공부했는지는 모르겠다. 이것은 필자가 임의대로 붙인 제목이 아니다. 영국의 버밍햄 대학의 교수인 프랭크 웨케터(Frank Uekötter)는 2022년 3월 영상 토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베버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관점에서 논의했다. 1919년 베버의 강연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검토하면서 웨케터는 정치지도자와 전쟁문제를 다루었다.

팬데믹 시대에 미디어는 공론장으로서 교육과 중요한 정치 현안에 대한 강연과 토론을 주도한다. 특히 미국에서 공공신학은 미디오 공론장의 논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정직하고 바른소리를 하는 파레시아를 소중한 담론윤리의 덕목으로 간주한다.

내가 보기에 웨케터의 논의에서 베버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은 비스마르크의 관료정치를 방어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베버가 정치인 개인의 영웅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문제로 남는다. 웨케터 교수가 젤렌스키를 카리스마적 리더쉽을 통해 윈스톤 처칠로 연결짓는 것은 바람직 해보이지 않는다.

베버는 비판적 자유주의자로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개인 영웅적인 카리스마 지도자의 모습에서 베버 비판가들은 결국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제도가 1933년 히틀러의 전제 지배로 넘어가는데 단초를 제공했다고 문제 삼는다. 물론 베버는 의회 민주주의에서 카리스마적인 민중선동을 통해 시저주의(Caesarism)로 변질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의회 민주주의를 시저주의로부터 방어하는 사회 과학적 반성이 미약한 것은 그의 아킬레스 건이기도 하다.

배버의 전쟁이론과 폭넓은 영향

막스 베버와 젤렌스키에 대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카리스마  정치 지도력보다는 베버가 전쟁을 일차적으로 어떻게 보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전쟁사회학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고 젤렌스키의 지도력을 민족주의와 근대국가와 관련해서 보게 해준다. 베버가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연구했을 때, 우크라이나 연방주의자인 드라고마노프의 영향을 받았다. 후자에 의하면 러시아 제국은 자신의 지배 블록 안에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와 같은 개별국가들에게 상당한 정도로 문화적 자율성을 허락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정치의 힘의 질서로 인해 소수의 연방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의 보호 아래서 생존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극단적인 민족 분리주의자들의 입장은 거부된다. 열강들 간의 힘의 균형만이 소수의 연약한 국가들의 자유와 주권을 보장해줄 수가 있다. 이런 국제정치 관점에서 베버는 1917년 독일의 군사적 보호 아래 폴란드의 민족국가의 설립을 지지했다. 이런 입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세계와 공산주의로 갈리는 진영 이데올로기 즉 냉전시대의 논리에 적합했다.

베버의 영향의 스텍트럼은 매우 넓다. 흔히 좌파 이론가들이 베버를 애써 폄하하고 그를 하찮은 부르주와 정치가나 아니면 히틀러에게 복무했던 법학자 칼 슈미트의 스승 격으로 비난한다. 왜냐하면 베버의 러시아 혁명 비판이 이들에겐 응어리로 남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 “프로 렐타리아트 독재?—천만에, 공산당을 통한 관료제의 독재가 러시아를 결단 내버릴 것이다.”  베버의 러시아 사회주의 비판의 골자이다. 그리고 적중했다.

베버는 칼 슈미트와 상관이 없고 오히려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헤겔과 베버를 통해 루카치는 마르크스를 새롭게 읽었다. 그리고 베버는 특히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중요한 자리를 갖는다. 더우기 하버마스가 그의 소통이론 1권에서 벌인 베버와의 이론적 대결은 볼 만한다. 그러나 베버의 국가론과 관료제 비판,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한 분석은 하버마스에게 별 다른 주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베버의 법사회학을 살펴보면 그는 사회계약론과 공화제 민주주의 전통에 서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주의와 근대국가의 문제를 다룰 때 관료제 분석은 탁견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베버는 비판적 민주주의자로 자리매김된다. 사실, 베버는 진보 좌파에게나 자유 민주주의자에게나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대에 속한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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